7월부터 국내에서 시판될 예정인 푸조 308 MCP는 기존에 판매중이던 308 해치백의 2.0 디젤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1.6 디젤과 6단 ‘자동제어 수동변속기’로 대체한 버전이다. 국내에 공식 수입되는 외제차로서는 최초인 ‘1.6 디젤’이란 점도 의의가 있지만, 그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자동제어 수동변속기’ 즉, MCP라는 부분이다.
글/ 민병권 (www.rpm9.com 에디터)
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편집장)
수동변속기를 자동으로 제어한다고 하면, 아마 ‘세미오토’, 즉, 반자동 변속기라는 명칭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10년 전쯤 국산 경차들에 일부 적용됐던 클러치페달 없는 수동변속기 말이다. 이들은 운전자가 직접 레버를 움직여 변속을 해주되, 클러치 조작은 기계가 알아서 해주는 방식이었다. 푸조의 MCP는 거기서 한걸음을 더 나갔다. 수동변속기이긴 한데, 변속조작까지 완전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매니아들은 페라리의 ‘F1’이나 람보르기니의 ‘E기어’, BMW의 ‘SMG’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역시 ‘자동으로 변속되는 수동변속기’인 점은 마찬가지이나, 고성능 차량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값비싸게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MCP와는 차이가 있다. 308의 MCP는 이들에 비해 변속시간이 늦고 허용토크가 낮은대신, 구성이 간단하고 가격이 낮아 일반 승용차, 특히 소형차에 어울린다.
시트로엥의 센소드라이브
푸조 브랜드가 속한 PSA 푸조 시트로엥 그룹은 2002년부터 소형차를 위한 자동제어 5단 수동변속기를 생산해왔다. 시트로엥 C1, C2, C3등에 달린 센소드라이브(SensoDrive)와 푸조 107, 1007에 달린 2트로닉(2 tronic) 변속기가 그것이다. 소형차에서는 특히나 수동변속기가 당연시되고 있는 유럽이지만, 도심정체에 시달리는 이들이나 수동변속기 조작이 서툰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자동변속기를 갈구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작은 배기량의 엔진을 얹는 소형차에서는 자동변속기 탑재에 의한 효율저하가 더욱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수동변속기의 성능과 효율을 그대로 지키면서도 운전편의성은 자동변속기와 다름없는 이 변속기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이윽고 푸조는 308및 308SW의 유럽 출시(2007~2008)와 함께 새로운 두 가지 6단 변속기를 선보였는데, 통상적인 수동변속기인 MCM(Mechanical Compact Manual gearbox)과 자동제어 수동변속기인 MCP(Mechanical Compact Piloted gearbox)가 그것이었다. 이 신세대 변속기들은 PSA 푸조 시트로엥 그룹이 오랜 시간 공들인 기대작으로, 연료소모와 CO2배출이 기존의 수동변속기보다도 5%씩 줄었을 정도로 효율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특히 MCP는 MCM의 자동제어버전으로, 부품 일부만 바꾸면 사람이 직접 변속하는 수동변속기로 되돌릴 수 있는 정도의 구성을 가졌다.
2006년, 시트로엥 C4에 MCP를 처음 적용했던 PSA 푸조 시트로엥은 최근 이 MCP와 MCM의 일간 생산량을 2010년 초부터 50% 더 높이기 위해 프랑스 북부 발랑시엔에 있는 변속기 공장에 8천 3백만 유로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어려운 경제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투자를 결정한 것은, 그만큼 ‘효율적인 변속기’에 대한 수요가 늘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운전석에서 보기에, 변속기 조작부는 수동변속기가 아니라 자동변속기와 똑같이 생겼다. 레인지 구분에 ‘P’가 없고 ‘D’대신 ‘A’가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물론 페달도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두 개 뿐이다. 운전방법도 자동변속기와 같다. 레버를 A(자동)에 놓고 가속페달을 밟으면 1단에서 6단까지 자동으로 변속되면서 속도가 붙는다. 속도를 줄이면 알아서 기어를 낮추고, 정차할 때는 자연스럽게 클러치를 끊어 부드럽게 멈춰선다.
스포츠 모드도 있고, 수동 모드도 있다. 원하는 기어단수를 선택하고 싶다면, 레버를 A에서 M(수동)위치로 옮겨 +/-로 조작하거나 곧장 스티어링휠의 변속패들을 건드려주면 된다. 이때도 가속페달에서 발을 뗄 필요 없이 그대로 변속할 수 있다. 클러치가 떨어진 동안 엔진회전수의 제어가 이루어지므로,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고 해서 회전수만 치솟지는 않는다. 기어를 내릴 때는 적절한 회전수를 맞춘 뒤 클러치를 붙여주는 방법으로 어지간한 운전자들보다 매끄러운 변속솜씨를 뽐낸다.
자동변속기와 다른 점은 변속레버를 N(중립) 위치에 놓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야 시동을 걸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주차할 때는 (P가 없으므로) N에 놓고 주차브레이크를 당겨놓아야 차가 굴러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레버를 A나 R에 놓고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도, 차가 천천히 움직이는 클리핑 현상이 없는 점 또한 자동변속기와의 차이점이다. 정차 중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클러치가 완전히 떨어진 상태로 대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덕길에 섰다가 출발할 때는 뒤로 밀릴 위험이 있지 않을까? 이 문제는 경사로 출발 시 ESP시스템이 자동으로 최대 2초간 브레이크를 잡아주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는 308중에서도 MCP버전에만 적용되는 기능으로, 다른 수동변속기 차량 운전자들의 부러움을 살만하다.
하기야, 부러울 일이 그것뿐이겠는가? MCP는 자동변속기처럼 편하게 달릴 수도, 수동변속기처럼 원하는 기어단수를 선택해 신나게 달릴 수도 있으면서, 연비는 수동변속기 수준인 ‘불공평한 변속기’다. 국내 공인 연비는 무려 19.5km/L로, ‘자동으로 변속되는’ 차 중에서는 하이브리드카 빼고 국내 최고 수준이다. 1.6 디젤 엔진과 수동변속기를 얹은 국산 준중형 차의 공인연비가 20km/L 내외이니 비교가 될 것이다. 심지어, 308디젤의 유럽 공인연비를 보면 MCP버전(22.2km/L)이 수동버전(20.4km/L)보다도 나은 것으로 되어있다. 자동변속 프로그램이 그만큼 최적화된 덕분이란다. 덩달아 CO2 배출량도 아주 적어서, 국내기준으로 138g/km에 불과하다.
푸조 공식수입원인 한불모터스가 308에 굳이 MCP 버전을 추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307시절부터 써온 2.0 HDi와 6단 자동변속기(AM6)의 조합 외에는 답이 없을 듯 했지만, 푸조 디젤차의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하는 새로운 이슈로 MCP를 뽑아 든 것이다. 국내 최초로 수입디젤승용차를 선보였었고 대중차 브랜드로서는 이례적으로 수동변속기 모델의 도입도 불사했던 한불모터스다운 행보다. (MCP, MCM은 270Nm, 약 27.5kgm의 토크전달 한계를 갖고 있어서 2.0 모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308 MCP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된 1.6 HDi 엔진은 6,000rpm에서 11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고 1,750rpm에서 24.5kgm(오버부스트 상태에서는 26.5kgm)의 최대토크를 낸다. 선입견 때문인지 2.0 HDi에 비해서는 좀더 낮은 회전수에서부터 소리가 거칠어진다는 느낌이고, 시동을 걸거나 끌 때 몸부림도 심해진 듯 하지만 음량은 여전히 잘 억제되어 있다. 풀 가속시에는 확실히 최대토크 발생시점 이후부터 차가 튀어나가는 느낌으로, 수동모드에서는 공회전 상태로부터 급출발을해도 이 부근에서 휠스핀이 일어난다. (수동변속기 차에서 급출발을 할 때 엔진회전수를 높인 뒤 클러치를 미트시키는 것처럼 여기서도 N에서 회전수를 높인 뒤 A로 옮기면 급출발이 된다.)
자동모드, 스포츠모드에서는 4,400rpm에서 변속이 이루어져 40/ 75/ 105km/h에서 시프트업이 이루어지고, 수동모드에서는 4,500~5,000rpm에서 자동변속이 이루어져 45/ 85 /115/ 150km/h에서 한 단씩 올라간다. 제원상 0-100km/h 가속에 걸리는 시간은 11.3초이고 최고속도는 190km/h인데, 5단으로 바뀐 뒤부터는 가속이 더뎌져 180km/h에서 한계를 보인다. 저속에서의 반응이나 150km/h까지 가속되는 보폭을 봐서는 실용적으로 충분하달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수동변속기를 기반으로 한 덕분에 쓸데없이 허비하는 힘이 적고, 그만큼 주어진 힘을 알차게 사용하는 셈이다. 스포츠모드를 쓰면 확실히 더 공격적이 되지만 엔진 특성상 높은 회전수가 피곤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자동모드에서 필요할 때만 패들을 건드려 변속하는 편이 나을 듯 하다. 바이킹 뿔 모양으로 생긴 변속패들은 은색부분만 버튼처럼 조작되고 검정색 부분은 고정되어 있다. 현재의 기어단수는 설정에 따라 계기판에 크거나 작게 표시된다.
정차 중에는 클러치가 떨어져있으므로 실내진동이 더욱 적고, R-N-D레인지를 오가는 변속레버는 움직임이 너무 가볍고 부드러워 이상할 정도다. 6단 순항시 엔진회전수는 80km/h에서 1,400rpm, 100km/h에서 1,800rpm. 시승차는 자동모드에서 천천히 가속하면 대체로 2,000rpm을 넘긴 뒤 변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80km/h에서는 5단 1,850rpm으로 물고 있을 때가 잦았는데, 여느 자동변속기와 마찬가지로 학습기능이 있기 때문에 이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자동으로 변속이 이루어지는 만큼 기존의 308처럼 크루즈컨트롤 기능도 쓸 수 있다. 킥 다운 시에는 100km/h일 때 6단에서 4단으로, 80km/h일 때 6단에서 3단으로 떨어지며, 역시 회전수를 보정해주기 때문에 반응은 거칠지 않다.
가속페달을 아주 살짝 밟아 출발할 때라던지, 가다서다가 반복되는 상황등, 대부분의 조건에서 클러치의 단속은 흠 잡을 데가 없이 부드럽게 이루어져서 신기할 정도이다. 다만 조금 걱정되는 부분은, 가속중 변속이 일어날 때 부드러운 지연 현상이 있다는 점이다. 일반 자동변속기의 울컥거림이나 변속충격과는 달리, 차의 앞부분이 쓰윽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는 피칭이 동반되고, 덩달아 운전자는 가속중 변속이 될때마다 몸이 앞으로 살짝 쏠렸다가 다시 원위치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전날 술이 과했던 필자는 이로 인한 멀미에 시달려야 했다.
이쯤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사항은 MCP의 변속시간이다. 엔진부하등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자동모드에서는 0.5~1.2초, 수동모드에서는 0.4~0.8초가 걸리는 것으로 되어있다. 앞서도 고성능 차량용의 변속기와는 다르다고 언급했지만, 예를들어 페라리의 F1 변속기는 0.15~0.22초, 애스톤마틴 뱅퀴시의 ASM(Auto Shift Manual)은 0.25초가 걸린다. 개중 빠른 페라리 430스쿠데리아의 ‘F1 수퍼패스트’는 0.06초, BMW의 SMG는 0.08초까지 단축시키기도 한다.
사실, 사람이 직접 수동변속기를 조작하는 경우에도 대개 0.5~1초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일반 승용차에서는 MCP의 변속시간도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여기에 클러치가 떨어졌다가 붙는 과정에서의 승차감을 우선시한 설정이 더해지면서 약간의 위화감을 주고 있는 것 같다. MCP에서 가장 빠른 0.4초의 변속반응을 얻으려면 스포츠버튼을 눌러놓고 수동모드로 변속조작을 해줘야 하는데, 애초에 자동변속기로 알고 접근한 일반 소비자에게 이런 운전법을 권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품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므로 어떻게 알리고 설득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국내시판용의 308 MCP는 기존 2.0 HDi 대비 약간의 사양 차이를 갖고 있는데, 가죽이 섞여있었던 시트와 도어트림이 직물 재질로 바뀐 점, 그리고 16인치 휠과 미쉐린 에너지세이버 타이어가 끼워지는 것이 눈에 띄는 차이점이다. (변속패들은 2.0 HDi에 없는 내용이다.) 비록 시승차는 컨티넨탈 타이어를 끼우고 있었지만 시판차에 달릴 에너지세이버는 연비향상과 CO2 저감에 무시못할 효과를 보이는 제품이다.
시승차도 사이즈는 시판차와 동일한 205/55R16을 끼웠는데, 겉보기가 빈약해서 그렇지 17인치 사양 대비 유연한 승차감이 만족스러웠다. 어지간한 코너링도 잘 소화해내고 고속에서도 불안감이 없다. 하체 세팅이 워낙 좋은 탓도 있을 것이다. 특정조건에서는 바퀴 부분이 통통튀는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타이어의 공기압을 따로 측정해보지는 않았던 관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브레이크 페달 반응은 저속에서 예민한 편이라 처음엔 당황스럽지만 익숙해지면 꽂히다시피 하는 조작감이 믿음직스럽다. 급제동시에는 자동으로 비상등이 켜지고, 주차브레이크가 채워진 상태로 움직이면 경고음이 울린다. 일반 자동변속기 차량과 달리 주차브레이크의 사용빈도가 높으므로 요긴한 기능이다.
나머지 사양은 여전히 풍부하다. 전동식 햇빛가리개가 달린 파노라마 루프도 그대로이고, 오토헤드램프, ECM룸미러, 전동접이 사이드미러, 그래픽으로 거리가 표시되는 후방주차센서, 좌우개별온도조절 장치, 크루즈컨트롤이 포함되어 있다. 유리창은 네 개 모두 원터치로 여닫히며, 상급모델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조명장치들을 갖추었다. 파노라마 루프등 일부 사양을 정리해서라도 가격을 더 낮출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잠시 순진한 생각을 해봤지만, 본사에서 패키지로 묶어놓은 옵션들로 인해 구미에 맞는 스펙을 뽑아내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308 출시 때 들은 바 있다. 다른 사양은 좋은데 시트 열선이 빠진 것도 그래서다. (푸조 308 MCP의 가격은 3,410만원으로, 기존 2.0 HDi 대비 250만원 가까이 저렴하다.)
지난 번 308의 시승때는 앞유리에 붙이는 거치식 내비게이션이 딸려왔었는데, 이번에는 대시보드위로 제대로 틀을 갖춘 터치스크린 내비게이션(지니 맵)이 자리 잡았다. 307때는 위치가 깊숙해서 보기는 좋았던 반면 조작이 불편했는데, 이번 것은 양쪽이 다 만족스러웠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양면에서 환영받으리라 생각된다.
총 주행거리가 8,000km 미만인 시승차는 216km를 주행한 후 18.1km/L의 평균연비를 보였고, 트립컴퓨터에 남겨진 485km 구간의 평균연비는 16.9km/L였다. 2.0 HDi때는 12km/L의 연비가 나왔었다.
▶ [rpm9] 푸조 308 MCP 시승사진 갤러리
RPM9 [ http://www.rpm9.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