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 4는 기함을 위협하는 상품성으로 다시 나타났다. 외관이나 실내 공간에 있어 레인지로버 부럽지 않을 정도다. 서라운드 뷰는 가만히 앉아서 사방을 훤히 볼 수 있고 마치 영화와도 같은 화면을 제공한다. 새 3리터 트윈 터보의 실력은 무거운 디스커버리 4에서도 빛난다.
글 /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 / 박기돈 (rpm9.com 팀장 / 트위터 http://twitter.com/nodikar)
편집, 동영상 / 민병권 (rpm9.com 에디터)
랜드로버 디스커버리가 어느덧 4까지 나왔다. 디스커버리 3가 나온지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4다. 정확히 말한다면 2003년에 나왔으니 5년 만에 풀 모델 체인지다. 통상적으로 5년은 풀 모델 체인지 주기로 짧은 편이 아니다. 대부분은 5년 안에 새 모델이 나온다.
하지만 랜드로버는 좀 다르다. 보통 럭셔리 모델과 SUV는 모델 주기가길다. 그런데 랜드로버는 둘 모두에 해당된다. 럭셔리 SUV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확실히 개척하고 있는 랜드로버는 빠른 모델 업데이트가 없어도 꾸준한 판매를 보이는 브랜드이다. 일반 대중 브랜드와는 다른 클래스이다.
랜드로버는 2000년대 들어서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새 차가 나오는 간격이 짧아지고 있다. 디스커버리만 해도 1989년 데뷔해 10년 만에 2세대(시리즈 Ⅱ)가 나왔고 3세대는 그로부터 6년 만에 선보였다. 그리고 4세대는 5년 만이다. 점차 모델 주기가 짧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최근은 경제 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긴 하다.
한 우물만 파온 랜드로버는 트렌드에 따라 변화하기 어려운 성격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랜드로버처럼 특화된 장르의 브랜드는 타격을 받기도 쉽다. 하지만 랜드로버는 예상 외로 꿋꿋하다. 고가의 SUV임에도 다른 브랜드에 비해 판매 감소의 폭이 적다. 그만큼 고객 충성도가 매우 높은 브랜드인 것이다.
디스커버리는 라인업의 허리로 랜드로버의 전체 볼륨을 확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와 디펜더만 있었지만 디스커버리 이후 볼륨이 크게 늘었다. 지금도 전체 매출에서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디스커버리 4는 3세대만큼의 변화는 없다. 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고 편의 사양을 강화한 게 특징이다. 재규어부터 적용된 새 파워트레인의 가세도 상품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디스커버리 4는 구형 보다 더 레인지로버와 비슷해졌다. 작년 행사에서 레인지로버와 디스커버리 4, 레인지로버 스포츠를 나란히 놓고 볼 기회가 있었다. 사실 앞면 디테일만 겹쳐서 봤을 때는 모델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구분이 간다. 그 정도로 닮아져버렸다.
먼저 나온 기함과 같은 패밀리룩을 유지하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기함의 이미지를 일정 부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 4도 마찬가지다. 요즘의 랜드로버 디자인이 고급스럽기도 하지만 레인지로버 필이 물씬한 외관은 실제보다 비싸 보이는 역할을 한다. 물론 디스커버리 4라는 차 자체도 비싸긴 하다. 내가 레인지로버 오너라면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디스커버리의 구매를 고려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반가운 변화이지 않을까.
거기다 이제는 덩치 자체도 큰 차이가 없고 특정 부분에서는 더 크기까지 하다. 디스커버리 4의 전장×전폭×전고는 4,838×2,022×1,888mm, 휠베이스는 2,885mm로, 기함인 레인지로버 TDV8(4,972×2,034×1,877mm, 2,880mm)과의 차이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전고와 휠베이스는 디스커버리가 더 크다. 디스커버리 3(4,835×1915×1,887mm)와 비교하면 전폭이 늘어난 게 눈에 띈다.
외관 디자인의 흐름은 디스커버리 3와 흡사하다. 하지만 디테일을 바꾼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요즘 랜드로버는 간결한 직선이 주류를 이루는데, 비싼 차를 더 비싸게 보이게 한다. 디자인만 봐도 비싼 차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프런트 그릴은 레인지로버와 비슷한 메시 타입으로 바뀌고 헤드램드는 슬림해졌다. 여러 램프가 겹친 디자인은 랜드로버 디자인의 특징적인 부분이다. 타이어는 255/55R/19 사이즈의 굿이어 랭글러가 장착된다.
겉을 보고 맘 상했던 레인지로버 오너가 안을 본다면 기분이 조금 풀릴지도 모르겠다. 레인지로버를 고려해 조금은 치장을 자제한 느낌이다. 물론 랜드로버의 네임밸류에 맞는 고급스러움은 충분하고 구형과 비교해서도 소재의 질감 자체가 더욱 향상됐다. 센터페시아 중앙에 박힌 아날로그 시계는 투박한 디자인인데, 어딘지 모르게 고급스러움을 풍긴다.
디스커버리 4로 오면서 센터페시아 디자인에도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특징은, 많았던 버튼들이 모니터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럼에도 기능은 더 많아졌다. 각 기능은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조작하고 인터페이스도 상당히 좋다. 모니터 하단에는 큰 메뉴들이 나열돼 있는데, 홈에서는 내비게이션과 폰, 오디오/비디오, 4×4, 세팅스 등의 메뉴가 나온다. 4×4 인포에는 앞바퀴의 정렬과 터레인 리스폰스의 작동 현황을 살필 수 있고 시스템에서는 발레 파킹과 음성 인식 등을 세팅할 수 있다.
편의 장비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서라운드 뷰이다. 서라운드 뷰는 차체 곳곳에 설치된 5개의 카메라를 이용해 사방의 상황을 앉아서 확인할 수 있다. 카메라 메뉴로 들어가서 전방과 측면, 후방의 상황을 살필 수 있다. 디스커버리 4 사이즈의 SUV에는 정말 요긴한 장비라고 할 수 있다. 차가 높고 전폭도 넓어 주정차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거기다 오프로드에서도 좋다. 오프로드를 달리다 보면 창문을 열고 내다봐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때에 따라서는 한 명이 내려 앞에서 인도해 주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서라운드 뷰가 있으면 만사 OK다.
서라운드 뷰는 기본적으로 4개 화면으로 나뉘고 각각의 창은 개별 확대가 가능하다. 한 화면을 전체 출력할 경우 상하는 4단계, 좌우로는 3단계까지 확대된다. 주행 중 앞뒤 모습을 전체 화면으로 출력할 경우 마치 영화와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진눈깨비가 뿌리는 야간에도 화질이 상당히 좋다. 밤에 보면 꼭 CCTV 같다고나 할까.
센터페시아의 모든 버튼은 큼직큼직한데 비상등 스위치는 별도의 표시가 없어 처음에는 찾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터레인 리스폰스 다이얼의 위치도 센터콘솔 앞에서 센터페시아 하단으로 이동됐다. USB와 아이팟 단자는 센터 콘솔 박스 커버의 안쪽에 마련된다.
센터 콘솔은 수납 공간과 냉장고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평소에는 수납함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냉장 버튼을 누르면 냉장고로 변한다. 암레스트도 각도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
계기판은 겉모습처럼 모던한 디자인이다. 화려한 그래픽은 없지만 시인성이 상당히 좋다. 그리고 작은 액정에는 생각 보다 많은 정보가 표시된다. 차량과 관련된 세팅의 상당수는 계기판 액정에 뜬다. 스티어링 휠에는 열선도 있다.
2열의 공간은 디스커버리 4의 덩치에 맞게 넉넉하다. 헤드룸은 말할 것도 없고 레그룸이나 좌우 공간이 모두 충분하다. 거기다 편의 장비도 많다. 2열에는 시트 열선이 있고 별도의 헤드폰 잭과 볼륨 조절 버튼 등도 있다. 또 천정에 붙은 콘솔에는 개별적인 공조장치 다이얼도 마련된다.
이는 3열도 마찬가지다. 3열에도 헤드폰과 커다란 수납함, 컵홀더가 마련된다. SUV의 3열로서 공간이 넉넉한 것도 눈에 띈다. 성인이 앉아도 큰 불편함이 없다. 지붕 전체에 적용된 파노라마 루프와 넓은 측면 유리 때문에 3열에 앉아도 별로 답답함을 모르겠다. 2, 3열 모두 다양한 시트 배열이 가능하긴 하지만 3열 탑승 시 2열 시트의 방석까지 젖혀야 하는 건 분명 불편하다. 흔하게 있는 원터치 폴딩 기능이 없다. 그리고 3열 시트도 폴딩을 위해서는 등받이와 방석을 개별적으로 접어야 한다.
디스커버리 4는 2가지의 새 엔진이 추가됐다. 재규어에 우선적으로 선보인 5리터 V8 가솔린과 3리터 디젤이다. 시승차는 트윈 터보 사양의 3리터 디젤인 TDV6로 출력은 245마력, 최대 토크는 61.2kg.m이다. 기존의 2.7리터 보다 출력과 토크가 크게 상승했지만 연비도 5.7%가 좋아졌다.
재규어에서 느꼈던 것이지만 새 3리터 디젤은 정숙성이 정말 좋다. 디젤로서 아이들링 정숙성이 최고 수준이다. 공회전 소리는 재규어 XF 보다는 조금 다르다. 디스커버리의 엔진룸이 남아서인지 약간은 둥둥 거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느낌이 난다.
출력은 245마력에 차체 중량 2.6톤이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건 요즘 디젤을 무시하는 처사다. 큰 토크가 낮은 회전수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커다란 차체가 가볍게 움직인다. 운전의 편의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가솔린 보다 나을 수도 있다.
0→100km/h 가속 시간은 9.6초로 평범하다. 하지만 실제로 달려보면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다. 저속에서 치고 나가는 몸놀림이 기대 이상이다. 좀 지난 얘기지만 과거 4리터 V8 가솔린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TDV6는 놀라울 만큼 잘 나간다. 거기다 고회전 질감도 좋아서 가속 시 스트레스가 없다.
1~4단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각각 38, 70, 110, 145km/h로 차의 크기를 잊을 정도로 시원하게 가속된다. 최고 속도는 5단에서 나오는데 디지털 계기판 상으로 189km/h에서 멈춘다. 수동으로 기어를 조작하면 순간적으로는 190km/h을 넘을 때도 있다. 과거의 디스커버리는 이렇게 높은 속도가 어울리지 않았고 지금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너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못하는 것 보다는 안 하는 게 훨씬 낫다.
랜드로버서도 상당히 고민스러운 부분일 것이다. 오프로드의 명가지만 온로드 성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이다. 이전의 디스커버리는 온로드 성능이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단점이 더 많았다. 이런 단점이 오프로드에서는 모두 장점으로 바뀌긴 하지만.
그런데 디스커버리 4는 온로드 성능에서도 확실한 개선을 보인다. 높은 속도에서도 불안함이 적고 보디 롤 자체도 크게 줄었다. 전고가 높고 오프로드 성능이 뛰어난 차로서는 놀랄 만큼 안정적인 자세이다. 브레이크 성능도 대단히 뛰어나, 생각 보다 앞서서 차를 멈춰 세운다.
물론 디스커버리는 온로드 보다는 오프로드에서 더 강점을 보이는 차다. 하드웨어도 좋지만 터레인 리스폰스 같은 전자 장비로 누구나 손쉽게 오프로드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디스커버리 4의 터레인 리스폰스에는 새롭게 샌드 런치 컨트롤(Sand Launch Control)이 추가됐다. 한 번 빠지면 탈출하기 힘든 모랫길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기존의 HDC(Hill Descent Control)에는 GRC(Gradient Release Control) 기능도 추가됐다. GRC는 급격한 경사로를 위한 장비로,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놓았을 때 급하게 속도가 붙을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해 준다.
디스커버리는 밖에서 보나 안에서 보나 끌리는 구석이 많다. 디스커버리라는 이름만으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엔진이나 온로드 주행 성능이 모두 좋아졌다. 기함과 닮은 외모도 장점이다. 자칫하면 레인지로버를 팀킬할 기세다. 3.0 TDV6의 가격은 8,990만원으로 2.7 TD와 1,500만원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