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에 출시된 올 뉴 인피니티 M에 대한 이야기다. 한 달이 조금 더 된 얘기지만, 7~9월까지의 판매순위에서 인피니티 M37이 3,000cc 이상 수입차 중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잠시 놀랐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입차 판매 1위와 2위는 BMW 5시리즈와 벤츠 E클래스가 차지하고 있다. 다름아닌 인피니티 M의 경쟁모델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M37이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일까?
바로 ‘3,000cc이상’이라는 조건에 함정이 숨어있었다.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모델들은 520d(디젤), 528i, E 300등 ‘3,000cc이하’의 배기량을 가진 모델들이기 때문이다. 독일제 경쟁 모델들과 달리 3,700cc급 V6와 5,600cc급 V8, 두 가지 가솔린 엔진만을 준비한 인피니티 M은 비인기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한 셈이다. 이를 통해 인피니티 M이 가진 매력과 약점을 동시에 눈치챌 수 있다.
M37은 비슷한 가격대의 5시리즈나 E클래스보다 훨씬 강력한 성능을 제공한다. 가령 BMW 5시리즈에서 300마력 이상의 성능을 맛보려면 1억 원에 가까운 535i(306마력)를 택해야 하지만 M37(333마력)에서는 6천만 원이면 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번듯한 크기의 수입차를 고를 때도 배기량과 유지비 등 실속을 따지는 요즘 소비자들의 수요 중 상당부분을 인피니티 M은 놓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것은 비단 M뿐 아니라 이전까지 인피니티의 효자모델로 꼽혔던 G35, G37세단에도 해당되는 내용일 것이다.
다운사이징이네 CO2 감축이네 하는 화두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요즘이다. 인피니티도 해외 시장에서는 더 낮은 배기량의 모델이나 디젤 엔진을 소개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인피니티=높은 배기량을 바탕으로 한 고성능 엔진’의 이미지를 고수하려는 듯 하다. 바꿔 말하면 한국닛산은 아직까지 인피니티가 가진 카드를 다 꺼내 놓지 않은 셈이다. 한국닛산은 인피니티가 우리나라에서 향후 5년 내 3대 럭셔리 브랜드로 도약하고 판매량도 3배로 확대될 것이라며 ‘3-3’ 비전을 제시했다. 남겨진 카드의 위력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어쨌든 M56이 유야무야 사라져버린 기함 Q의 대리 겸 이미지리더로서의 역할을 하는 상징적인 모델임을 감안하면 실제 판매를 책임지는 주력은 역시 M37이다. 그리고 인피니티는 자칫 좁아 보일 수 있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한가지 배기량이더라도 다양한 트림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가령 시승차는 M37중에서도 가장 기본형인 스탠더드 모델로, 가격은 5,950만원이다. 여기에 뒷좌석 편의 사양 등이 더해진 M37 프리미엄 모델은 6,290만원이며, M56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첨단 사양을 갖춘 M37 익스클루시브 모델은 6,970만원이다. 어느 쪽을 택하건 최고출력 333마력, 최대토크 37.0kgm의 VQ엔진과 7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은 동일하다.
M56이라야 스포츠를 뜻하는 ‘S’가 꼬리표로 붙지만 M37이라도 스포츠세단다운 이미지는 물씬하다. 아니, 지나치게 부담스러웠던 M56에 비하면 M37은 오히려 다루기 쉽고 가뿐한 느낌이 좋다. 기본적으로 든든하면서도 일본차다운 섬세함이 살아있고 승차감이 차분하다. 별 생각 없이 RE050을 예상했었지만, 18인치 미쉐린 MXM4 타이어는 주행성능에만 치우치지 않은 무난한 선택이다.
변속패들은 없다. 하지만 가속페달을 놀리는 것 만으로도 스트레스 없는 가속이 가능하다. 자동모드에서는 7,230rpm정도에서 시프트업, 수동모드에서는 7,500rpm에서 회전제한이 걸린다. 자동모드에서의 변속 시점은 60/90/145/210km/h. 제한속도인 230km/h까지는 금방이다. 이때의 회전수는 5,900rpm. 저속에서도 듣기 좋은 엔진음이 살아있고 가속페달을 깊이 밟으면 소리의 템포가 빨라지면서 운전 재미를 더한다. 튀는 반응이 없는 변속기도 매력적이다. 100km/h 순항시의 엔진회전수는 2,000rpm정도로, 조용하고 매끄럽게 나간다.
주행모드는 스노우, 에코, 노멀, 스포츠 등 주행환경 또는 기분에 따라 원하는 스타일로 선택할 수 있다. 에코모드에서는 최대 10%의 연비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380km 거리를 밟고 다닌 평균연비는 7.6km/L. 차에 기록된 연비이력들도 대체로 비슷했다.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채우면 벤츠처럼 벨트가 팽팽하게 한번 당겨졌다가 풀린다. 첨단 안전기능에 대한 암시. 아니나다를까, 코너에 조금 과속으로 진입했다가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자 안전벨트가 몸통을 조여온다. 혹시나 사고로 이어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미리 대비를 하는 것이다. 아랑곳 않고 못된 운전을 더 해봤더니 손오공의 머리띠처럼 몸을 더 죄어오는 것이 마치 훈계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이외에도 통풍시트나 운전대 위치 전동조절, 스티어링 컬럼과 시트가 연동된 이지액세스 기능 등 기본형답지 않은 사양들이 이어진다. 유리창은 네 개 모두 원터치로 여닫을 수 있고 사이드미러도 눈부심 방지 기능을 제공한다. 대신 여성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포레스트 에어 시스템이나 M의 특징인 어깨 스피커는 찾아볼 수 없다.
운전대는 주차장을 도는 정도에서는 가볍게 느껴지지만 정지상태에서 좌우로 빠르게 돌려보면 묵직하다. 록투록은 3턴이 넘는다. 주차브레이크는 전동식이 아닌 족동식. 물론 경사로 밀림방지 기능은 제공한다.
치타를 연상시키는 근육질, 그리고 후륜구동차로서의 프로포션을 강조한 차체는 겉보기에 꽤 덩치가 크지만 막상 운전할 때는 그 크기를 그리 의식하지 않게 되는 것은 장점이다. 휀더와 보닛의 굴곡이 넘실넘실 현란하지만 시야는 좋은 편이고 전방 주차센서까지 달려 더욱 안심이 된다. 센서의 감도는 모서리 부분과 중앙 부분을 따로 조절할 수 있고 후방카메라 화면에 표시할지의 여부도 설정 가능하다.
국내에서 장착한 내비게이션은 어떻게 켜는지를 몰라서 한참 헤맸다. (결국 물어서) 알고 보니 센터페시아 상단의 BACK버튼을 길게 누르면 바뀌는 방식이다. 전체적인 화질이나 해상도는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다. 화면 속의 한글 메뉴는 반갑지만 한국형 내비게이션을 덧입히느라 순정 인포메이션 화면까지 시인성을 떨어뜨린 모양이다.
화면 전환도 완벽하지는 못하다. 가령 내비게이션을 띄워 놓은 상태에서는 오디오 관련 화면을 볼 수 없게 된다. 어떤 차들처럼 계기판에라도 오디오 관련 정보를 띄울 수 있었으면 좀 나았을 것이다. 센터페시아에 다이얼이나 버튼들이 쓰기 좋게 노출되어 있는데, 정작 이 조작부들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화면을 터치해야만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뒷좌석은 대형차 부럽지 않게 넓은 무릎공간을 확보했다. 지지부가 푹신하고 앉은 자세도 안락하다. 시각적으로는 지붕이 낮아 보이지만 특별히 머리공간이 좁은 것 같지는 않고 대신 폭은 여유가 적은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차폭은 기함이었던 Q만큼 넓어진 것이다. 하기야 휠베이스는 M이 더 길지만.
스탠더드 모델은 아무래도 뒷좌석이 허전하다. 편의 장비라야 중앙 송풍구와 문짝 재떨이 정도가 전부. 뒷좌석의 사용 비중이 높은 구매자라면 프리미엄 모델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스탠더드는 기름 쫙 빼고 담백하게 M37의 근육질을 즐길 수 있는 버전이다.
인피니티의 뉴M37을 보고 있자면 그 동안 동생 G37에게 뒤졌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와신상담해온 게 여실히 나타난다. 맏형 Q의 유명무실로 인해 더욱 무거워졌을 어깨의 짐도 무시할 수 없겠다. 큰 형의 부재가 아쉽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M은 인피니티 브랜드의 효자상품 타이틀을 당장이라도 가로챌 기세다.
글,사진/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주행사진/ 박기돈 (rpm9.com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