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롤스로이스 102EX는 20만 유로(약 3억 원)이상의 가격대에 놓인 ‘수퍼 럭셔리’ 차량 중 최초로 전기 구동계를 탑재한 모델이다. 기존의 최고급차인 롤스로이스 팬텀을 바탕으로 한 연구용 차량이기 때문에 ‘팬텀 EE(Experimental Electric)’이라고도 불린다.

길이 5.84미터, 폭 1.99미터의 거대한 차체를 움직이던 배기량 6.75리터의 V12 가솔린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는 리튬 이온 배터리 팩과 두 개의 전기모터로 대체 되었다. 뒷바퀴를 굴리는 두 개의 전기모터는 각각 145kW씩의 파워를 제공해 총 290kW의 힘을 낼 수 있으며, 토크는 800Nm에 이른다. 이는 일반 팬텀 모델의 338kW, 720Nm라는 성능수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제네바 모터쇼에서의 발표를 앞두고 진행된 테스트에서, 팬텀EE, 즉 102EX는 1회 충전으로 최대 200km를 주행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지상태에서 출발해 97km/h까지 가속하는 데 8초 미만이 걸린다. 몸무게가 3톤을 넘어서는 차로서는 상당한 수준이다. (일반 팬텀은 5.7초가 걸린다.) 102EX의 최고속도는 160km/h에서 제한된다.

102EX는 승용차용으로서는 사상 최대 사이즈를 자랑하는 배터리 시스템을 탑재했다. 스코틀랜드의 리튬 이온 배터리 설계 및 생산 전문업체 Axeon이 담당한 이 시스템은 96개의 리튬 이온 파우치 셀로 구성되며, 팬텀에서 엔진과 변속기를 들어낸 자리에 딱 맞게 설치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배터리 팩의 무게만 640kg이며, 이를 탑재한 팬텀은 50:50의 이상적인 앞뒤 무게 배분을 갖는다. 배터리 팩의 총 용량은 71kWh이고, 388V DC이며, 피크 전류는 850Ah에서 330kW이다.

승용차로서는 이례적으로, 이 배터리 팩에는 세 개로 분리된 충전기가 탑재되어 있다. 덕분에 20시간이 소요되는 단상 충전과 8시간이 소요되는 3상 충전이 모두 가능하다. 충전을 위한 외부 전원 연결 단자는 기존 팬텀의 주유구 위치에 마련되어 있다. 덮개의 투명창을 통해, 5개의 핀을 가진 연결 단자와 충전 중단 버튼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색을 내는 LED조명이 배치되어 충전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102EX는 무선 충전도 지원한다. 즉, 외부 전원과 직접 선을 연결하지 않고도 차체 하부, 배터리팩에 마련된 유도 패드를 통해 물리적 접속이 없는 충전이 가능하도록 했다. 102EX의 배터리 팩은 매일 사용하는 경우 3년 가량의 수명을 갖는다.

한편, 롤스로이스의 디자이너들은 102EX를 이미 45,000가지 색상의 페인트 옵션을 제공하고 있는 일반 팬텀과 차별화하기 위해 세라믹 나노 입자가 포함된 높은 반사율의 페인트를 적용했다. 아울러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환희의 여신상’도 스테인리스 스틸 대신 폴리카보네이트로 제작해 파란색 LED로 조명이 켜지도록 했다.

실내에는 천연 식물성 태닝 공법으로 만들어진 가죽 내장을 적용했고, 엔진 힘의 잔량을 보여주는 롤스로이스 특유의 계기에는 재충전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을 추가했다. 계기판의 연료계는 물론 배터리 잔량계로 교체되었다.

BMW그룹 산하에 있는 롤스로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최상의 럭셔리 자동차를 제작하는 업체이면서도 지속적인 성장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대체 구동 기술에 대해 끊임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102EX는 주주, 고객, 애호가, 미디어 등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제작되었다. 올 한해 동안 유럽, 중동, 아시아, 미국 등을 돌며 많은 이들에게 시승기회를 제공하며, 피드백을 받아 향후 연구과정에 반영할 예정이다. (아쉽지만) 당장은 상용화할 계획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