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푸조에서 볼 수 없었던, 개성과 매력이 넘치는 새로운 모델 RCZ를 만났다. 지난해 국내 출시된 156 마력 자동 변속기 버전이 아닌, 200마력 엔진과 수동 6단 변속기를 장착한 다이나미끄 버전이다. 독일의 잘 달리는 차와는 좀 다른, 또 다른 성격의 잘 달리는 차 RCZ에서는 프랑스의 향기가 난다. 와인 향이든, 향수의 향이든……
최근까지 우리가 만났던 푸조는 너무도 프랑스다운 패밀리카의 모습이었다. 206에서 207로, 307에서 308로, 406에서 407로, 그리고 플래그십 607을 넘어, 3008을 위시한 독특한 SUV 혹은 크로스오버차들이 모두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중에서 가장 개성 있는 모델을 꼽자면 206RC와 207RC를 들 수 있었고, 207과 308 CC 모델들은 개성이 강하긴 하지만, 그것은 구조적인 개성이었고, RC 모델과는 다른 개성이었다.
하지만 그 RC 모델들의 개성이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랜 기간 동안 푸조가 WRC와 르망 등 많은 모터 스포츠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았고, 그렇게 습득된 고도의 기술을 가장 푸조답게 녹여낸 모델이 바로 RC 모델들이었다. 어찌 보면 지극히 소극적인 일탈이었다.
그러던 푸조가 조금 더 큰 사고를 쳤다. 푸조의 레이싱 노하우를 담아 스포츠 쿠페 전용 모델 RCZ를 선보인 것이다. 최근에 이처럼 파격적인 모델을 선보인 적이 없었던 푸조 스스로는 RCZ를 만들어 낸 데 대해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고 뿌듯해 하는 눈치다. 사실 전 세계가 뜨거운 시선으로 주목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강렬했던 첫인상이 조금씩 익숙해 지기 시작하면, 아쉽게도 RC 모델들의 일탈에서 아주 조금 더 멀리 떠난 정도라는 것을 금새 눈치채게 된다. 곳곳에 양산 모델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선이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푸조가 조금 더 큰 일탈 속에 얼마나 진지한 푸조의 실력을 담아 냈는지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범생이의 일탈 수준에서 일어난 우연이든, 치밀한 계획 속에 만들어 낸 정교함이든 간에 RCZ에는 수준 높은 매력이 담겨 있다. 비록 국내 출시 가격에서 만만치 않은 저항이 있긴 하지만, RCZ 자체로만 본다면, 매력적인 스타일링, 강력한 엔진, 1.6대비로는 더욱 강력한 성능, 짜릿한 기어, 탁월한 서스펜션, 낮은 차체, 예리한 핸들링, 그리고 강력한 브레이크를 갖추었다.
외관 스타일링은 뛰어난 독창성에 약간의 소심함이 담겼다. 앞모습이 308과 너무 많이 닮은 점에서는 푸조의 소심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 각도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화끈한 변신을 만나게 된다. 그저 단순히 308의 키만 낮춰서 납작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스포츠카 이미지를 만드는 여러 요소들을 더했다.
펜더는 돌출되고, 허리는 잘록하고, A필러에서 지붕을 거쳐 C필러로 이어지는 아치는 통 알루미늄으로 짰다. 지붕은 튜너 자가토의 특허인 줄 알았던 더블 버블로 꾸몄는데, 지붕이 유리로 되어 있어 외부에서 보면 투명한 유리 지붕처럼 보이지만, 실내 천정에는 커버가 덮여 있어 푸조 특유의 글라스 루프는 아니다.
RCZ는 비례가 특이하다. 캐빈이 앞으로 많이 치우쳐 있어 트렁크가 길어 보인다. 옆모습을 보면 알루미늄 아치도 단순한 원형이 아니고 굴곡이 있는 곡선인데다 그 마저 앞 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차체가 앞으로 돌진하는 형상이고, 트렁크 부분에는 왠지 엔진이 들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난다. 하긴 이 스타일링에 MR 구조를 갖췄다면, 정통 스포츠카라는 평가를 들을 수도 있었을 거다. 어쨌든 트렁크를 열어 보면 깊이가 깊진 않지만 상당히 넓고 평평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RCZ는 옆이나 뒤에서 볼 때 훨씬 더 자극적이다. 유난히 트렁크 부분이 길면서도 이처럼 자극적인 스타일링을 만들어 낸 것이 신기하다. 가만히 보면 기본적인 비례는 308CC를 많이 닮았다. 다소 어색했던 그 비례가 제대로 된 쿠페가 되면서 이처럼 매력적으로 변신한 것이다. 깃발 타입의 사이드 미러와 뒤로 가다가 계단을 형성하는 어깨 라인에서도 개성이 묻어난다. 235/40R19 타이어를 신은 알루미늄 휠도 스타일이 멋지다. 예리한 블랙 스포크 가운데 번쩍이는 은색 사자가 자리하고 있다.
차체 사이즈는 4,270×1,845×1,360mm에 휠베이스 2,612mm다. 308 해치백의 4,276×1,815×1,498mm, 휠베이스 2,608mm와 비교하면 키가 약 14cm 정도 낮고, 나머지는 비슷비슷하다. 비슷한 성격의 모델들을 휠베이스로 비교해 보면 폭스바겐 골프 GTI 2,575mm, 아우디 TT 2,468mm, 미니 쿠퍼 S 2,467mm로 RCZ가 가장 길다. 그만큼 직진 안정성에서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현대 벨로스터는 휠베이스가 2,650mm다.
외관에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기 딱 좋은 스타일을 자랑하지만 실내는 상대적으로 많이 덤덤하다. 그나마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도록 데시보드를 가죽으로 덮고 스티치를 돋보이게 치장한 것도 이미 CC 모델에서 만났던 터라 새롭다고 할 수는 없지는 여기 저기 가죽을 많이 사용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센터페시아 한 가운데 아날로그 시계가 더해지고, 도어 안쪽 손잡이가 알루미늄 느낌으로 비스듬히 길게 자리하고 있는 정도가 차별점이다.
시트는 예전 RC 모델의 시트랑 비슷한데, 207RC의 시트가 직물 시트였고, 볼스터 스폰지가 부드러웠다면, RCZ는 가죽으로 씌우고 상대적으로 더 단단해졌다. 시트 포지션도 낮아졌다. 뒷좌석은 거의 손가방 정도나 놓을 수준으로, 어린 자녀라면 탈 수는 있겠지만, 그마저도 장거리 여행은 힘들듯 보인다.
스티어링 휠도 일반 모델과 다르지 않은데, 수동변속기 모델임에도 스티어링 휠 칼럼 좌측에 크루즈 컨트롤 조절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우측의 오디오 리모컨이 그랬던 것처럼 크루즈 컨트롤 조절 장치도 미리 작동법을 익혀 두지 않으면 주행 중에 메뉴를 보면서 작동 시킬 수는 없다. 스티어링 휠에 가려서 버튼 메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수동 변속기 차량에 장착된 크루즈 컨트롤은 처음 사용해 봤는데, 오르막을 만나거나 해서 기어를 변속하게 되면 크루즈 컨트롤이 일시 정지 상태로 변한다. 기어 변속을 마친 후에 다시 원래 설정 속도를 유지하려면 ‘RES’ 버튼만 한번 눌러주면 된다.
어쨌든 실내에서 가장 반가운 장치는 수동 변속기 레버다. 안타깝게도 점점 희소성이 높아지는 장치다. 기어 레버는 가죽으로 감싸 그립감이 좋고, 길이도 적당히 짧고, 조작 시 스트로크도 짧은 편이어서 좋다. 변속할 때 단절감도 적당한 편이어서 기어 레버의 전반적인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기어 레버 아래쪽에는 리어 스포일러를 작동시키는 버튼이 마련되어 있다.
클러치는 답력과 스트로크가 일반적인 승용 모델과 큰 차이가 없이 가벼운데, 예전 RC 모델에서 보이던 어색함이 없이 편하게 조작할 수 있다. 풋레스트는 위치가 높아 왼발을 두기에 조금 불편하다. 브레이크 페달에 비해 엑셀 페달의 위치가 좀 더 깊어, 시내에서 달리면서 힐앤토를 사용하기는 조금 부담스럽고, 와인딩에서 강하게 브레이킹을 할 때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엔진은 잘 알려진 것처럼 BMW와 함께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다. 156마력 모델은 미니 쿠퍼, 그리고 200마력 모델은 미니 쿠퍼 S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푸조 자체적으로 튜닝을 더해 미니 쿠퍼 S의 184마력보다 조금 더 높다. 직분사 시스템에 트윈 스크롤 터보를 적용해 최고출력 200마력/5,500~6,800rpm과 최대토크 28.0kgm/1,700~4,500rpm을 발휘한다.
작동감이 좋은 기어 레버와 승용차 감각과 큰 차이가 없는 클러치 덕분에 수동변속기 조작은 처음부터 편하고 즐겁다. 금방 익숙해 질 수 있고, 즉시 시원시원한 가속력을 즐길 수 있다. RCZ 다이나미끄의 제원상 0~100km/h 가속에는 7.5초가 걸린다. 184마력의 미니 쿠퍼 S가 자동 변속기로 7.3초, 폭스바겐 골프 GTI가 210마력으로 6.9초가 걸리는 것에 비하면 가속력이 비슷한 수준이거나, 때로는 약간 아쉽게 느껴지는 정도다.
각 단에서의 최고속도를 보면 50, 90, 130, 165, 205km/h이고, 6단 225km/h 정도에서 더 이상 가속되지 않는다. 6단에서 100km/h로 주행할 때 회전수는 2,600rpm이다.
화끈한 스타일에 비해 폭발적인 가속력을 자랑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배기량 1.6리터를 감안하면 충분히 재미있는 수준이다. 특히 국내에서 만나기 힘들어진 수동 변속기가 뛰어난 조작감과 함께 운전의 재미를 더한다.
서스펜션은 앞 맥퍼슨 스트럿, 뒤 토션 빔으로 최근 현대차 소형 및 준중형 모델과 구조가 갖다. 하지만 푸조 기술진이 빚어낸 뛰어난 균형은 RCZ 다이나미끄의 최고의 매력이다. 308에 비해 차체가 낮고 서스펜션이 많이 단단해 졌지만, 미니 쿠퍼 S나 GTI에 비하면 여전히 부드러운 편이고, 그러면서도 주행 시 안정감에서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분명 서스펜션에 부드러움이 살아 있는데, 막상 코너링에 들어가 보면 롤을 억제하는 실력이 일품이다. 푸조를 탈 때 마다 신기해 하는 매력적인 서스펜션 세팅이 RCZ에서 더 빛을 발한다. 밸런스의 승리다.
만약 현대 벨로스터가 고성능 터보 모델에서 추구해야 할 서스펜션 세팅의 모범사례를 고른다면 RCZ의 이 뛰어난 밸런스가 완벽한 스승이 될 것이다.
RCZ는 개성 넘치는 외모 외에도, 파워풀한 엔진, 짜릿한 기어, 탁월한 서스펜션, 낮은 차체, 예리한 핸들링, 강력한 브레이크, 이 모든 것들을 갖춰 1.6리터 엔진의 스포츠 쿠페로서는 매우 탁월한 매력을 소유했다. 하지만 국내 시판 가격에서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해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