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현대차는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론칭했다. 브랜드 론칭에 이어 등장한 EQ900(해외에서는 G90)는 대기업의 법인차 교체 시기와 맞물려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기존에 ‘제네시스’로 팔리던 차는 G80으로 개명했다.
G80은 제네시스 브랜드 론칭과 함께 큰 변화를 줄 것으로 기대됐으나, 내외관은 페이스 리프트 수준에 그쳤다. 올해 부산모터쇼에 등장한 G80 스포츠 역시 기존 G80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지난 1일에는 모처럼만에 현대차가 G80 스포츠 시승회를 마련했다. 시승코스는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 호텔에서 파주 헤이리를 왕복하는 것으로, 왕복 코스가 100㎞ 정도다.
외관에서 기존 G80과 가장 큰 차이는 앞 범퍼다. 메르세데스-AMG의 것을 연상케 하는 범퍼는 좀 더 많은 공기를 흡입하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이다.
실내에서는 리얼 카본 내장재와 스포츠 시트가 눈에 띈다. 탄소섬유로 직조한 리얼 카본 내장재는 지나치게 번쩍이지 않고 질감도 우수하다. 스포츠 시트는 날씬하지 않은 이라면 허리에 압박을 느낄 정도로 탄탄하게 몸을 감싼다.
파워트레인의 성능만 보면 합격점을 줄 수 있다.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의 반응은 국산차 최고 수준이고, 비슷한 가격대의 수입차보다 낫다. 특히 1300rpm부터 4500rpm까지 일관되게 뿜어내는 최대토크가 매력적이다.
다만 제네시스 EQ900에 적용된 370마력 3.3 터보 엔진을 그대로 얹은 탓에 제원상의 차이점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가속 때의 사운드가 너무 평범하다. 적어도 ‘스포츠’라는 닉네임을 붙이려면 좀 더 강력한 사운드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인위적인 사운드 제네레이터보다는 배기 시스템에서 자체적인 사운드를 완성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드라이브 모드의 경우 3단계로 설정이 가능하다. 에코와 스포츠는 엔진 반응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서스펜션 반응은 기대보다 크지 않다. 스포츠 모드에서 좀 더 확실하게 노면을 제압하는 반응이 나오면 좋겠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제네시스의 브랜드 밸류와 제품에 대한 정체성 확보다. 제네시스가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렉서스보다 브랜드 가치 면에서 확실하게 우월하냐고 할 때 아직은 물음표가 달린다. 미국에서 팔리는 가격을 보면 경쟁사에 비해 최소 1만 달러 정도 싸게 책정돼 있는 게 그 방증이다. 같은 가격으로 경쟁하기에는 아직 버겁다는 의미다.
단일 트림으로 나오는 G80 스포츠의 가격은 6650만원이고 시승차인 풀 옵션 모델은 7700만원이다. 과거 1세대 제네시스의 다이내믹 에디션의 경우 3.3 모델이 5126만원, 3.8 모델이 5273만원인 것에 비하면 가격이 많이 올랐다.
G80 스포츠의 정체성은 대항마가 무엇이냐에 따라 갈릴 수 있다. 일부에서는 메르세데스-AMG나 BMW M을 꼽기도 하지만, 아직은 그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두 브랜드는 스포츠 드라이빙에 특화되어 개발이 따로 진행된 것이라면, G80은 기존 모델의 스포츠 버전 정도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승부는 제네시스 라인업에 N 버전이 등장한 이후에야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제네시스 G80 스포츠의 등장은 국내 완성차업체가 본격적인 스포츠 세단을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앞서 등장한 제네시스(BH) 다이내믹 에디션이 ‘스포츠’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모자랐다면, G80 스포츠는 확실히 진일보했다. 이제 본격적인 스포츠 라인업을 만들어가야 하는 현대차로서는 이 차에 대한 여론을 수렴해 G70을 만드는 데 든든한 밑거름을 만들어야 한다. G70의 성공이 향후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을 가늠하는 실질적인 잣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