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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시인의 사랑, 연인의 시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

발행일 : 2016-11-11 17:12:50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이하 ‘나나흰’)가 11월 5일부터 내년 1월 22일까지 드림아트센터 2관 더블케이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동명의 시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작품은, 시인 백석과 그의 연인 자야 김영한의 사랑 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한 뮤지컬이다.

자야가 백석을 만나 안타깝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과거로 여행하는 이야기이며, 작품 속 가사와 음악은 대부분 백석의 시를 차용해 만들었다. 우란문화재단 작품 개발,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작으로, 오세혁 연출작이다.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 스틸사진.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 스틸사진.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시 속에 묻어난 사랑, 시 같이 녹아든 사랑

백석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모던보이이자 해방 전 가장 주목받았던 시인으로 알려졌다. 깔끔하고 고지식하면서도 우유부단하고 수다스러운 다정다감함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예술가들처럼 두 가지 이상의 내면을 동시에 가진 시인이다.

시는 영혼의 깊은 울림을 집요하게 증폭하여 내적 만족을 주기도 하지만, 다소 현실과는 동떨어진 공백을 주기도 한다. ‘나나흰’에서 백석(강필석, 오종혁, 이상이 분)과 백석의 시는 자야(정인지, 최주리 분)에게 영혼을 울리면서도 오래 머물지는 않는 그리움이다.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 스틸사진.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 스틸사진.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자야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시에 내 젊고 아름다운 날들이 고스란히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한다. 시 속에 묻어난 사랑, 시 같이 녹아든 사랑은 뮤지컬이 줄 수 있는 서정성이 극대화돼 표현된다.

◇ 피아노 선율과 함께 한 소극장의 생생함

‘나나흰’은 대나무로 만든 무대가 눈에 띈다. 대나무 숲의 느낌을 주는 무대 장치는, 무대 위에 올라온 피아노가 이질적으로 거슬리게 보이지 않도록 만든다. 피아노 라이브 연주로 펼쳐지는 뮤지컬 넘버는, 음악이 흐르는 달달한 공간에서 막 시가 만들어진 것 같이 느껴진다.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 스틸사진.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 스틸사진.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대나무는 등장인물의 등퇴장을 단순하지 않게 만들며, 배우들의 움직임 속에 극장이 크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백석과 자야가 같은 공간에 있고, 사내(안재영, 유승현 분)가 떨어져 있는 상황을 소극장에서 표현하는데 효율적이다.

‘나나흰’의 대화와 넘버가 시라면, 음악은 시의 내면을 표현하는 리듬이다. 대나무 숲에서 들리는 맑은 피아노 소리는, 시를 모티브로 표현한 무대에서 다시 시를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 스틸사진.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 스틸사진.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서사보다 내면을 표현한 뮤지컬 넘버

‘나나흰’은 담담한 어조로 강렬한 사랑을 표현한다. 달달하고 서정적인 내용의 넘버는 쓸쓸하고 엄숙한 내용, 분위기와 오묘하게 맞물린다. 서사보다 내면을 표현한 넘버이기에, 백석과 자야의 이별보다 자야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백석, 백석의 시 속에 남아있는 자야를 더욱 잘 표현하고 있다.

대극장에서의 강렬한 넘버로 표현되었다면 이런 미묘한 울림이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무대와 무척 가까운 거리에서 느끼는 생동감은, 뮤지컬 넘버의 성악도, 피아노 연주도, 백석의 시도 모두, 내면의 진솔한 고백으로 전달된다.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 스틸사진.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 스틸사진.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한편의 시집을 낭송하는 느낌의 무대는 먹먹한 감정을 여운으로 남긴다. 사랑, 기다림, 그리움. 공연이 끝난 후 마음에 새겨진 이 모든 느낌은 백석의 시를 읽고 싶게 만든다. ‘나타샤’는 누구일까? 지금 당장 시를 찾아 읽기 전에, 그냥 아련한 궁금함을 가지고 ‘나나흰’을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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