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M9

문화예술
HOME > 문화예술 > ET-ENT국악

[ET-ENT 국악] 판소리에 충실한 미니멀리즘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2)

발행일 : 2016-11-14 09:40:03

◇ 총출동한 국립창극단 간판 여배우들

‘트로이의 여인들’에 국립창극단의 간판 여배우들이 총출동했다. 트로이의 여신들이 아닌 트로이의 여인들로 등장한 국립창극단의 간판 주역들 못지않게 8명의 코러스(정미정, 허애선, 나윤영, 서정금, 김미진, 이연주, 민은경, 조유아)도 개별 배역 못지않은 실력파들로 구성됐다. 8명이 함께 부르는 합창 판소리의 전율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공연 시작 전부터 헤큐바(김금미 분)와 8명의 코러스는 무대에 등장해 있었는데, 헤큐바는 무대 정면 맨 앞 맨 가운데에 엎드리는 듯 누워 있었다. 시작시 무대 위에는 여인들만 있었는데, 관객들에게 공연의 제목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고, 조용히 무대에 집중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게 만들기도 했다.

‘트로이의 여인들’ 스틸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트로이의 여인들’ 스틸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불길 영상과 함께 등장한 저주받은 공주 키산드라(이소연 분)는 그녀가 처한 상황과는 달리 무척 시적이었는데, 가슴에 타는 불을 부드러운 꽃으로 표현했다. 공연 시작시 미리 나와있던 배역이 아닌 키산드라를 포함한 다른 배역들은 관객석 뒤쪽 출입문을 통해 등퇴장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헥토르의 부인 안드로마케(김지숙 분)는 날카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격한 분노에 찬 고음의 소리를 완급조절 없이 소화하는 김지숙의 소리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는데 효과적이었다.

◇ 김준수와 유태평양, 그리고 정재일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헬레네는 그리스인과 트로이인 사이에서의 모호한 인물로 설정됐다. 헬레네 역은 국악 아이돌로 불리는 김준수가 맡았다. 여성 역을 맡은 남성 소리꾼은 색다른 매력을 발산했는데, 헬레나를 김준수가 맡은 것은 헬레나의 모호함을 강조하기 위함도 포함됐을 것이다.

‘트로이의 여인들’ 스틸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트로이의 여인들’ 스틸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김준수는 국악기가 아닌 무대에 등장한 피아노에 맞춰 소리를 했다. 판소리와 피아노의 조화는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음악감독이기도 한 정재일은 연기하듯 격정적으로 무대에서 피아노를 쳤다.

정재일은 피아노 연주자로만 무대에 오른 것이 아니라, 헬레네가 잊지 못하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역으로 등장하여 헬레네의 파트너 악기인 피아노를 연주한 것이다. 김준수와 정재일의 오묘한 케미는 색다른 볼거리를 안겨줬다.

또 다른 판소리 스타인 유태평양은 고혼 역을 맡았는데,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안숙선 대명창이 유태평양과 함께 더블 캐스팅되어 고혼 역을 소화했다는 점도 기억된다. 메넬라우스 역의 최호성도 관객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트로이의 여인들’ 스틸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트로이의 여인들’ 스틸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탈튀비오스(이광복 분)는 주로 1층 관객석 뒷문을 통해 등장했는데, 그의 등장 때는 관객석까지 조명이 밝아졌다. 관객석을 통하여 새로운 등장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 시간 관객석 전면에 조명을 밝게 비추는데, 갑자기 밝아진 관객석의 조명은 관객들을 긴장시키는 역할도 했다.

이광복은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똑같지는 않지만 마치 도창의 이미지가 보였다. 원래 도창은 창극에서 극중 인물이 아닌 창자로 판소리의 소리나 아니리로 관객의 흥을 돋우고, 이야기가 난해할 경우 중간에 해설자의 역할을 한다.

탈튀비오스는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고, 극의 마디를 집어주어 중심을 잡도록 하는 역할을 했기에, 도창의 이미지와 겹쳐서 보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광복은 주연 이상의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트로이의 여인들’ 스틸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트로이의 여인들’ 스틸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 풍요와 번영이 떠오르는 아이러니한 무대, 시간 이동을 연상시키는 영상

무대 위에는 풍요와 번영의 상징인 것 같은 무대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면 시간 이동하거나, 뭔가 변화와 반전을 만들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신비로운 공간의 이미지를 가진 것이다.

무대 구조물 안쪽에는 흑백 영상이 상영됐는데, 처음에는 흘러가는 물로 시작하여 타오르는 불을 보여줬고, 영상은 구조물 뒤쪽 벽면에서 구조물 전체로 확장되고, 무대 뒤편 벽으로까지 추가로 넓혀졌다.

‘트로이의 여인들’ 스틸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트로이의 여인들’ 스틸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무대 위 구조물이 아닌 무대 뒤편 벽의 영상은 정사각형의 영상이 아니었는데, 정사각형의 영상에서 의도적인 왜곡과 생략이 취해진 것이다. 무대장치 안의 영상은 사각의 영상일 때도 있고 구조물 내부 전체를 스크린으로 사용한 영상일 때도 있는데, 내부 전체의 영상은 마치 영화에서 시간 이동을 하는 통로 같은 느낌을 줬다. 구조물의 모양과 영상의 느낌의 결합이 만들어낸 판타지적 느낌이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연출, 무대디자인, 의상, 장신구 등 분장디자인, 조명디자인, 영상디자인에서 모두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 가장 매력적인 점은 새로 만들어진 판소리가, 판소리 고유의 매력을 십분 발휘했다는 것이었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내년에 싱가포르예술축제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국립창극단과 연출가 옹켕센이 합작한 창작 창극이 전 세계적인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말도 안되는 가격!! 골프 풀세트가 드라이버 하나 값~~ 598,000원”

최신포토뉴스

위방향 화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