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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발레] 제37회 서울무용제(2) ‘트리스티스(부제-슬픈회귀)’

발행일 : 2016-11-16 09:10:31

유장일발레단 유장일 안무의 ‘트리스티스(부제-슬픈회귀)’는 제37회 서울무용제 경연대상부문 참가작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비극적인 사랑을 모티브로 하여 인물 유형을 차용하였으나, 이야기는 원전을 따라가지 않고 현대적인 사랑의 관점에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가 공존하는 작품으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의상에 따른 안무도 볼 수 있다. 원전의 이야기를 전혀 모른 채 관람하더라도, 사랑의 애절함과 연민의 감정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작품이다.

`트리스티스`(유장일발레단) 공연사진. 사진=한국무용협회, BAKI 제공 <`트리스티스`(유장일발레단) 공연사진. 사진=한국무용협회, BAKI 제공>

◇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울무용제 프로그램북에는 ‘트리스티스’의 작품 내용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며, 트리스티스는 라틴어로 슬픔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다.

“젊은 청년 트리스탄은 백부인 콜웰의 왕 마르크의 명령으로 아일랜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왕의 신부가 될 이졸데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온다. 이 와중에 사랑이 묘약을 마시게 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트리스티스`(유장일발레단) 공연사진. 사진=한국무용협회, BAKI 제공 <`트리스티스`(유장일발레단) 공연사진. 사진=한국무용협회, BAKI 제공>

마르크와 이졸데의 결혼 후에도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사랑을 이어간다. 마르크 왕은 트리스탄에 대한 믿음과 질투로 갈등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모든 위험과 고난을 이겨내고 사랑을 지키고자 함께 생을 마감하고 마르크 왕도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용서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는 바그너의 오페라로, 케빈 레이놀즈 감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수백 년 동안 시인과 작곡가, 그 외 다른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준 이야기이다.

`트리스티스`(유장일발레단) 공연사진. 사진=한국무용협회, BAKI 제공 <`트리스티스`(유장일발레단) 공연사진. 사진=한국무용협회, BAKI 제공>

◇ 경쟁 구도라기보다는 공존의 느낌으로 표현된 안무

‘트리스티스’는 어둠 속에서 음악만으로 시작한다. 무대에 막이 오르기 전 혹은 막이 올랐더라도 무대가 밝아지기 전에 한동안 음악만으로 무대를 채우면서 시작하는 것을 최근 창작 무용 작품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어둠 속 남성 무용수는 마치 속옷을 입지 않은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괴로움과 공포를 표현한 음악은 강렬하게 전달됐는데, 음악과 함께 무대 가운데의 앞뒤로만 움직인 남성 무용수의 독무는 SF 영화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트리스티스`(유장일발레단) 공연사진. 사진=한국무용협회, BAKI 제공 <`트리스티스`(유장일발레단) 공연사진. 사진=한국무용협회, BAKI 제공>

사랑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연상된 것일 수도 있는데, 생명의 잉태와 탄생을 연상시키는 움직임도 느껴졌다. 무용수들은 서서히 움직이다가 빠른 이동을 하면서, 움직임의 완급을 조절했는데, 무대에서 아티스트의 완급조절은 관객에게 긴장과 이완을 반복시키는, 이른바 밀당의 효과를 전달한다.

트리스탄, 이졸데, 마르크의 3각 관계는 피 터지는 경쟁과 질투, 분노를 일으킬 것 같은데, 이졸데를 사이에 둔 트리스탄과 마르크, 두 남자는 경쟁 구도라기보다는 공존의 느낌을 줬다. 최소한 ‘트리스티스’에서 공연 중반 이후까지의 안무는 그런 느낌을 유지했다.

◇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의 안무를 모두 활용한 작품

‘트리스티스’는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의 동작을 모두 사용한 안무를 펼쳤다. 음악의 변화와 함께 의상의 변화도 인상적이었는데, 음악과 의상은 안무의 유형과도 연관됐다.

`트리스티스`(유장일발레단) 공연사진. 사진=한국무용협회, BAKI 제공 <`트리스티스`(유장일발레단) 공연사진. 사진=한국무용협회, BAKI 제공>

빠른 회전과 공중 동작이 돋보이는 클래식 발레 안무와 바닥을 구르는 등 전형을 벗어나는 모던 발레 안무를 ‘트리스티스’에서 모두 만날 수 있었다. 대칭이지만 완전 대칭은 아닌 무용수의 배치와 안무도 주목됐는데, 이 또한 두 장르의 만남과 연결되어 생각할 수 있다.

천정에서 샹들리에처럼 내려와 늘어뜨린 무대 장치의 변화와 함께 이어진 커플무, 그리고 3각 관계의 재현은 갈등보다는 안타까움으로 느껴졌다. 작품의 부제가 ‘슬픈회귀’인 것도 이런 느낌과 연결된다. 3각 관계의 재현시, 세 명을 제외한 다른 무용수들은 악령처럼 등장하는데, 검은색 의상도 그런 이미지에 부합된다.

공연 마지막 시간, 밝은 느낌의 조명과 밝은 느낌의 음악은 무언가에서 벗어난 느낌을 줬다. 관객석에서 봤을 때,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역광 속에서 그림자처럼 보이게 만든 것인데, 공연 시작시 1명의 남성 무용수가 표현한 착시적 의상의 안무를 군무로 펼쳤다.

‘트리스티스’(유장일발레단) 스틸사진. 사진=한국무용협회, BAKI 제공 <‘트리스티스’(유장일발레단) 스틸사진. 사진=한국무용협회, BAKI 제공>

빠른 연속 공중회전 후 이어지는 바닥을 이용한 안무를 펼친 남성 무용수들은 여성 무용수들과 함께 3단의 인간탑을 쌓아 아름다운 사진처럼 마무리했다. 경연대회에서 인상적인 마무리를 하는 느낌을 줬다.

운명적인 사랑을 하기 위해선 운명적인 만남, 마음의 깊은 움직임보다 사랑의 묘약이 더 중요한 것일까? 금방 사랑에 빠진다는 뜻의 ‘금사빠’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인스턴트 사랑이 만연해 있는 요즘 사회에서, 사랑의 묘약은 단지 판타지적인 상징이 아닌 실제적인 현실일수도 있다는 것은 많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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