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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미지의 세계에서 온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 (1)

발행일 : 2016-11-16 13:33:28

국립오페라단의 ‘로엔그린(Lohengrin)’ 전막 드레스 리허설이 11월 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됐다. 본 공연은 16일, 18일, 20일 무대에 오른다. 독일어 원어로 공연되는 최초의 국내 프로덕션으로 사실상 국내 초연 공연이다.

김학민 예술감독과 카를로스 바그너 연출의 ‘로엔그린’은 필립 오갱의 지휘 하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했고, 국립합창단, 전주시립합창단, 진아트 컴퍼니가 함께 했다. 본지는 ‘로엔그린’을 2회에 걸쳐 독자들과 공유한다.

◇ 21세기 동시대인의 삶을 투영한 작품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로엔그린’은 연출을 맡은 카를로스 바그너 콘셉트로 제작됐다. 21세기 동시대인의 삶을 투영하여 만들어졌다. 엘자(소프라노 서선영 분)는 동생을 죽인 죄목으로 고소를 당하는데, 작곡가인 바그너는 엘자가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로엔그린’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로엔그린’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로엔그린’은 연출하기에 어려운 작품인데, 동화처럼 해석하느냐, 현실에 가깝게 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카를로스 콘셉트는 현실에 가깝게 가는 방향을 선택했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혼돈의 세상으로 재현되는데, 사회, 문화적 상황도 포함된다.

바그너는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성배의 기사가 고통을 겪는 여인을 구출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번 공연은 혼돈의 세계 재현하면서, 종교를 넘어선 해석에 주안점을 뒀다. 동시대적인 해석은, 오페라의 노래인 아리아보다 스토리에 더욱 집중하도록 만드는데, 천재적인 작곡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오페라를 만들 때 스토리를 무척 중요하게 여겼던 바그너의 정신세계와 맞닿아있다.

‘로엔그린’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로엔그린’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반지 시리즈와는 다른 음악적 특성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는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의 4부작 오페라로 반지 시리즈로 알려져 있다. 이들 작품에는 합창이 없는데, ‘로엔그린’은 웅장한 합창을 들을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88명이 합창을 하며, 무대 뒤의 연주자를 포함하여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110명이 참여한다. 이 작품에서 대규모의 합창은 웅장하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

‘로엔그린’은 똑같은 멜로디가 2가지의 다른 상황을 표현하기도 한다고 지휘자 필립 오갱이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 있다. 실제 공연을 관람하면 반복되면서 변형되는 선율을 경험할 수 있고, 악기를 미묘하게 섞어 쓴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필립 오갱은 지휘를 하면서 손으로 하는 지휘 외에도 입모양으로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부드럽지만 명확한 신호를 주는 지휘였다.

‘로엔그린’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로엔그린’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공연은 무대의 막이 오르기 전 서곡이 연주되면서, 바그너가 주는 긴장감과 기대감을 전달했다. 바그너의 오케스트레이션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는데, 끊지 않고 자유롭게 이어가는 무한선율은 서곡에서부터 시작됐다.

무한선율은 음악이 멈춰 서지 않고 이어지는 것으로 바그너 오페라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이다. 오페라에서 감동적인 아리아가 끝난 후, 발레에서 환상적인 동작이 펼쳐진 후 관객석으로부터 환호와 박수가 이어지면, 잠시 공연을 멈추고 박수를 받으며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일반적인데, 바그너의 오페라는 관객들이 환호하고 박수칠 시간을 중간에 주지 않는다. 인터미션 직전 또는 커튼콜에 가야 관객들은 내면의 감동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바그너의 무한선율은 익숙하지 않고 잘 모를 경우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알면 알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바그너는 직접 오페라 대본을 썼는데, 노래의 아름다움보다는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로엔그린’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로엔그린’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로엔그린’에는 성악과 기악이 같이 가지 않고, 기악이 연주되지 않거나 약한 소리로 연주되는 시간에 성악이 불리기도 한다. 이런 점은 바로크 오페라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른 작곡가의 오페라에 비해 동적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작은 바그너의 오페라는, 오페라 극장에서 눈을 가리고 음악만 들었을 때 가장 감미롭게 느껴질 수 있다. 베르디, 모차르트 등의 오페라에서 무대를 없앤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는 가능하다.

주요 아리아만 부르는 갈라 콘서트는 어느 작곡가의 작품과도 잘 부합된다. 그러나, 무대 장치와 연극적 요소를 축소시키고, 음악과 아리아에 집중하여 전막을 공연하는 오페라 콘체르탄테 형식의 공연은 바그너의 오페라가 가장 적합하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그만큼 음악에 집중한다.

‘로엔그린’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로엔그린’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결혼행진곡은 바그너의 선율인지 모르는, ‘로엔그린’에 나온 노래인지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곡이다. 유명하지만 출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 공연을 관람하면, 무대 앞이 아닌 백스테이지에서의 결혼행진곡 합창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보통 결혼행진곡을 피아노 연주곡으로만 알수도 있는데, 오페라를 관람하면 이 곡이 합창으로 들었을 때의 더 진한 감동을 몸소 느낄 수 있다. 피아노로 연주되는 결혼행진곡이 남을 축하하는 노래라면, 오페라에서 합창으로 듣는 결혼행진곡은 감정이입하여 관람하는 나를 위해 부르는 노래이다.

◇ 안정성이 사라진 혼돈의 공간을 재현한 무대

‘로엔그린’의 막이 오르면 국회의사당 같은 역할을 하는 세트장과 그 안을 메운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의회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취재를 위해 모인 기자단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노트북과 스마트폰, 카메라는 무대가 현대적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로엔그린’은 혼돈에 빠진 사회의 모습을 무대에 표현했다. 안정성이 사라진 공간, 위험이 느껴지는 공간, 불안정한 상황에 로엔그린(테너 김석철 분)이라는 마술적인 존재가 나타난다.

‘로엔그린’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로엔그린’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무대는 2층과 3층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3개의 높이로 구성됐다. 무대 2층은 관객석 2층의 중간 높이와 비슷하고, 무대 3층은 관객석 3층의 앞 열 높이와 비슷하게 설치되어, 높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비교적 단조로운 무대지만, 공간적인 측면에서는 높이를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대 1층은 바닥과 계단형 좌석으로 설치됐는데, 등장인물들은 테이블 위에 올라가기도 하며 입체감을 나타냈는데 조명과 밀접한 호흡을 맞추어 움직인다는 것이 주목됐다. 단조로움을 피하고, 무대가 정지해 있는 느낌을 덜 갖게 만든 무대였는데, 엘자가 노래를 부를 때 무대 위의 사람들은 정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집중하여, 추상적 공간에서 정지된 시간을 느끼게 만들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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