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 감독의 ‘노후 대책 없다(No Money, No Future)’는 2015년 3월부터 8월까지 서울에서 ‘하드코어 펑크’ 음악을 하는 밴드들의 모습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울독립영화제2016) 본선경쟁 섹션의 장편 영화이다.
서울독립영화제2016은 12월 1일부터 9일까지 CGV아트하우스 압구정,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되며, 공모작 1,039편 중 총 114편이 영화제 기간에 상영된다.
◇ 살아있는 그들의 펑크, 아니 우리의 펑크
‘노후 대책 없다’는 펑크 음악을 무지하게 화가 나서 발산하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과잉된 감정의 표출은 불편함을 줄 수도 있고, 카타르시스를 남길 수도 있다. 무식하게 표현하자면, 펑크는 누군가에겐 그냥 매우 시끄러운 음악이고, 누군가에겐 내면의 에너지를 다 발산시키는 살아있는 음악이다.
우리 내면에는 억눌린 광기가 있다. 억눌린 광기라는 표현이 불편하다면, 억눌린 마음으로 완화시킬 수도 있다. 주부들의 우울증도 감정이 억눌린 시간이 오래 지속됐기 때문에 생긴다.
정형화된 안정감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하드코어 펑크 음악처럼 과도하게 질주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다큐멘터리의 톤을 잘 살리고 있다. 과도하게 포장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미화하지도 않는다. 감추고 싶을 수도 있는 현실을 자막을 통하여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솔직한 해학과 장난기도 발휘한다.
‘노후 대책 없다’는 영화적 가치와 함께 기록적 가치도 가진다. 흥미롭게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인데, 영화와 음악을 모두 아는 관계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막 들이댄 카메라에 대본 없이 그냥 말하는 느낌을 준다. ‘노후 대책 없다’의 카메라는 제3자가 되어 관찰하기보다는, 등장인물의 상대가 되어 밀접하게 그들의 삶, 음악과 소통한다.
◇ 멀리서 바라보기, 안으로 들어가기
개인적으로 올해 9월에 국내 최대 무형문화재 축제인 ‘제11회 대한민국 무형문화재 축제’를 관람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농악은, 다른 일을 하면서 떨어져서 들으면 업무를 방해하는 시끄러운 음악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이것만큼 사람을 흥분시키는 재미있는 음악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음악이라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
음악은 그대로 있더라도 그 대상을 멀리서 바라보기와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느끼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펑크 또한 제3자로 멀리서 바라볼 때와 소속감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서 일원이 될 때 전혀 상반되는 느낌을 주는 장르이다.
‘노후 대책 없다’는 펑크 음악을 일부러 듣지 않던 관객도 영화를 통해 음악 내부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노래와 대사는 자막으로도 표현됐는데, 자막은 가사를 알아듣기 힘든 펑크 음악 안으로 관객이 들어갈 수 있도록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했다.
‘노후 대책 없다’의 자막을 보며 관람하니, 펑크는 가사를 알고 들으니 더 와 닿는 음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스토리텔링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가사전달력은 감정이입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 음악 이야기, 밴드 이야기, 결국은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영화의 제목은 밴드 ‘파인더스팟(FIND THE SPOT)’의 노래 제목에서 가져왔다. 송창근(보컬), 심지훈(기타), 이동혁(베이스) 그리고 밴드 ‘밤섬해적단’의 보컬, 베이스이기도 한 장성건(드럼)은 카메라를 향해 음악 이야기, 밴드 이야기를 한다. 송창근의 모습은 마치 인간극장을 보는 듯 생각되기도 한다.
‘노후 대책 없다’를 만든 이동우(베이스, 보컬)는 한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밴드 ‘스컴레이드(SCUMRAID)’의 보컬이자 베이스 연주자이다. 드러머 이주영은 펑크 공연 사진집을 발간했고, 이요잉(드럼, 보컬), 류지환(보컬, 기타)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노후 대책 없다’에는 밴드 ‘반란’의 마애노(베이스), 강용준(보컬), 밴드 ‘크라이스트퍽’의 정진용(보컬),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의 단편선(보컬, 기타), 그리고 한 때 밴드 ‘데드버튼즈’ 멤버였던 이평안(베이스)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그들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이 속한 밴드에 대해 말한다. 음악을 하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뛰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특정 장르에 있는 아티스트들의 이야기이면서도, 결국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믿음, 이성에 대한 믿음을 믿는 그들은 펑크 음악과 투쟁 등 돈 안되는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이다. 음악 안에서만 머무르지는 않는 그들의 저항정신은 영화 후반부에서 구체화된다.
스컴레이드와 파운더스팟이 외국에서는 인기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외면 받는다는 것은, 밖에서는 팬들이 따라다니는데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들에게 구박받는 아티스트 같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펑크 공연을 보다가 나가 버린 관객처럼, 이 영화를 보다 나가버리는 관객이 있을 수도 있다. 끝까지 관람하고 공감을 느낀다면, 그들의 솔직함과 진정성이 가진 보편성이 공유됐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관객의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게 될지, 호불호가 미리 정해진 관객들 위주로 관람이 이뤄질지 궁금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