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수입차 시장 선두를 질주하던 BMW가 올해 메르세데스-벤츠의 공세에 다소 주춤거리고 있다. 이는 BMW가 못해서라기보다는 벤츠가 최근 좋은 모델들을 많이 내놓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UV시장에서 BMW의 인기는 여전하다. X1, X3, X4, X5, X6로 이뤄진 BMW 라인업은 고객으로부터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다. BMW가 현재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는 차량 가운데 X드라이브(xDrive)가 결합된 모델은 총 12개 시리즈에 110종 이상이고, 국내에도 총 11개 모델 35종이 판매되고 있다.
BMW 코리아는 한겨울을 앞둔 지난 11월 초, X드라이브 모델 시승회를 열고 자사의 최신 기술력과 모델을 자랑했다.
시승은 BMW 삼성전시장에서 가평까지 가는 1코스와 오프로드 체험코스, 다시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2코스로 구성됐다. 처음 탄 차는 BMW SUV 라인업의 핵심 모델인 X5다.
X5는 1999년 탄생할 때부터 라이벌인 벤츠 M클래스를 여러 면에서 압도한 SAV(Sports Activity Vehicle)의 원조다. 당시 앞뒤 구동력은 플래니터리 기어 시스템으로 38:62의 비율로 배분되었고, DSC(다이내믹 스태빌리티 컨트롤), ADB-X(오토매틱 디퍼렌셜 브레이크), HDC(힐 디센트 컨트롤) 등 전자제어 시스템이 장착돼 온‧오프로드를 가리지 않는 주행안전성을 보여줬다. 2003년에 나온 후속 모델은 멀티 플레이트 클러치 구조의 X드라이브가 DSC와 함께 작동해 주행상황에 알맞게 구동력 배분을 연속적으로 조절하도록 진화했다.
사실 이런 복잡한 메커니즘을 모르더라도 X5를 타면 든든한 느낌이 있다. 대형차 수준의 넉넉한 차체와 좋은 승차감, 험로에서의 주행안전성은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시승에서도 X5는 매우 편안했다. 특히 차체가 높은 SUV임에도 고속도로에서 매우 안정감 있는 느낌을 줬다.
오프로드 코스에서 고른 차는 X1이다. 타고 싶은 차를 먼저 고르게 했는데 의외로 X1은 인기가 없었다. 기자는 X1에 오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하, 이 사람들이 X1의 매력을 모르네.”
선택은 탁월했다.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을 연상케 하는 박진감 넘치는 구간으로 구성된 코스에다 선도차가 꽤 속도를 낸 덕에 시승이 한결 즐거웠다. 시승 초반, 바로 앞에 달리는 운전자가 속도를 너무 안 내는 걸 발견하고 추월한 게 ‘신의 한수’였다. 이런 코스에서 속도를 내지 않는 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X시리즈에 비해 차고가 낮은 X1의 장점은 이번 시승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고속에서 방향 전환할 경우 차체 뒤쪽이 살짝 밀리면서 느껴지는 스릴은 덩치 큰 SUV에서는 맛보기 힘든 주행감각이다.
X1의 드라이빙이 극적인 이유는 독특한 장점 덕분이다. BMW는 노면 상황에 따라 앞뒤 구동력을 100:0에서 0:100으로 나눠주는 X드라이브를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오갈 때 두루 빛난다. 온로드에서는 필요한 쪽으로 구동력을 몰아줘 연비를 높일 수 있고, 오프로드에서는 접지력을 최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퍼포먼스 컨트롤도 돋보인다. 이 장비는 코너를 돌 때 바깥쪽 바퀴에 더 큰 구동력을 배분함으로써 방향 전환을 더욱 민첩하게 이끈다.
2009년 처음 등장한 X1은 올해 2세대로 진화하면서 덩치가 커졌다. 3시리즈 투어링을 약간 키운 듯했던 초대 모델에 비해 2세대 모델은 X3에 가까울 정도로 차체를 키우면서 본격적인 SUV를 지향했다.
차체가 커지면서 거주공간이 넉넉해졌고, 트렁크 공간에도 한층 여유가 생겼다. 또한 시트 포지션이 높아져 시야가 넓어지면서 운전이 한결 편해졌다.
이렇게 다양한 장점을 갖췄으면서도 X1은 라인업 중 가격이 가장 착하다. 150마력 18d는 5120만원, 190마력 20d는 5610만원이고 20d M 스포츠 패키지는 5790만원이다.
메르세데스-벤츠에서 X1과 비슷한 가격의 모델은 GLA로 5010만~5300만원이다. 전체적인 차의 활용성과 성능을 본다면 X1의 상품 가치가 더 높다.
X1은 비록 이날 시승회에서 크게 돋보이진 않았지만, X3에 버금가는 판매량을 보이면서 높은 인기를 입증하고 있는 모델이다. BMW SUV 라인업에 입문하는 모델로 충실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BMW의 비선 실세’라고 할 만하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