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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갤러리] 2016 한국특별전 ‘훈데르트바서의 그린시티’ (2)

발행일 : 2016-12-15 17:49:03

‘식물적 회화법’이라는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 그린 나선형 그림들로 현대미술계 거장으로 떠오른 훈데르트바서의 작품들을 ‘훈데르트바서의 그린시티’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훈데르트바서 2016 한국특별전 전시 작품 중 태피스트리와 그래픽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자.

◇ 685A 그 들판을 건너가면 그로스바이젠바흐에 다다릅니다

태피스트리(tapestry)는 여러 가지 색깔의 씨실을 사용해 손으로 짠 회화적인 무늬를 그림으로 짜 넣어 나타낸 미술적 가치가 높은 직물을 뜻한다. 쉽게 생각하면 벽에 걸려있는 예술성 높은 양탄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685A 그 들판을 건너가면 그로스바이젠바흐에 다다릅니다’(이하 ‘685A’)는 태피스트리 작품으로, 예쁜 양탄자를 보는 것 같다. 길게 이어진 선은 직선에 가깝더라도 곡선적 느낌을 주며, 색이 번진 듯하게 표현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선으로 구분된 구역 중 어느 한 곳도 단색으로 채우지 않았다는 것이 눈에 띈다. 작품의 오른쪽 하단의 노란색 구역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비슷한 색으로 만든 도안이 그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85A 그 들판을 건너가면 그로스바이젠바흐에 다다릅니다. 사진=2016 NAMIDA AG, Glarus, Switzerland <685A 그 들판을 건너가면 그로스바이젠바흐에 다다릅니다. 사진=2016 NAMIDA AG, Glarus, Switzerland>

‘685A’를 비롯한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보면 비슷한 톤이기는 하지만, 어느 하나 겹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개개에 의미와 특징을 부여한 모습은, 산업화로 인한 획일화의 시대에서 각 개체의 존재를 존중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이런 정신세계는 우리나라 민화의 정신세계를 떠올리게 만든다. 민화는 사람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객체 하나하나에도 무척 중요한 관심과 의미를 둔다. 사람, 동물, 식물 등 생명체뿐만 아니라 무생물체에도 독립적인 의미를 두는 민화 정신과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정신세계는 통하는 면이 있다.

버섯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원의 상부 구조물 같기도 하고, 밑에 있는 얼굴을 봤을 때는 머리카락을 표현한 것 같은 그림은 구상과 추상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적 모습에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 독창적인 모습을 만든 것이다.

◇ 684 월터 캠프만과 함께 하는 비오는 날

‘684 월터 캠프만과 함께 하는 비오는 날’(이하 ‘684’)은 실크스크린으로 표현된 그래픽 작품이다. 그림의 모습도 흥미롭지만, 그림 왼쪽에 그림에 사용된 색을 표시하고, 그림 밑에는 여러 가지의 사인과 도장이 있다는 것이 시선을 끈다. 그림의 과정과 설정을 고스란히 노출시킨 점은, 실제 그림의 절단면 외부까지 표현된 듯하게 보일 수도 있다.

684 월터 캠프만과 함께 하는 비오는 날. 사진=2016 NAMIDA AG, Glarus, Switzerland <684 월터 캠프만과 함께 하는 비오는 날. 사진=2016 NAMIDA AG, Glarus, Switzerland>

‘684’를 보면 경계를 의도적으로 명확하지 않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계를 겹치게 하거나 선명도를 줄여서, 어떤 구역에서도 경계를 넘어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만든다.

모자를 쓴 두 사람의 얼굴은 떨어져 있는데 몸은 붙어있는 것 같은 모습은 작품 제목 속에 들어있는 ‘함께’라는 단어에 힘을 싣고 있다. 모자의 방향으로 봐서는 두 사람이 쳐다보는 것 같고, 모자를 돌려쓰고 뒷모습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극사실주의가 아닌 한 작가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작품을 만드는 경우도 많은데, 훈데르트바서의 ‘684’처럼 작품의 일부분을 추상화한 경우 관람객은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고, 각자 원하는 대로 다양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 860 10002 밤 부엽토 잘 지내나요

‘860 10002 밤 부엽토 잘 지내나요’(이하 ‘860’)는 혼합 매체 인쇄 작품이다. 그림 하부에 있는 얼굴은 만화의 캐릭터처럼 특징적인 면을 부각했다. 얼굴에는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라는 통념을 벗어나, 눈은 여섯 개, 입은 두 개, 그리고 콧등으로 보이는 코도 두 개다.

코가 맞다면 하나의 코는 이마까지 이어졌고, 또 다른 코는 눈에 붙어있기 때문에 굵은 눈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눈물이 콧등을 타고 흐르는 모습이라고 합쳐서 생각할 수도 있다.

860 10002 밤 부엽토 잘 지내나요. 사진=2016 NAMIDA AG, Glarus, Switzerland <860 10002 밤 부엽토 잘 지내나요. 사진=2016 NAMIDA AG, Glarus, Switzerland>

훈데르트바서의 작품들을 보면 하나의 작품에는 전체적인 테마가 있다. 색감, 질감 모두 이질적이지 않고 공통부분이 많게 만들어졌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같은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흥미롭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면이 있지만, 각 개인은 똑같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훈데르트바서가 그림 속에서 만드는 세상은 무척 현실에 가까운 세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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