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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2016 공연예술 창작산실 연극(1)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

발행일 : 2016-12-19 16:33:48

서종현 작, 박정희 연출, 창작집단 꼴의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이하 ‘인어’)이 12월 16일부터 3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 작품은 2016 공연예술 창작산실 우수신작 릴레이 공연 연극분야 선정작으로, 독특한 상상력, 치밀한 내면묘사, 극적 구성력 등에서 여타의 작품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 문학작품으로의 깊이와 철학을 갖춘 이야기

‘인어’는 영상으로 시작한다. 파도가 심하게 치는 바다 영상은 실제보다는 이미지적으로 전달된다. 무대공연에서 영상이 가질 수 있는 괴리감을 축소하고, 영상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한 방법이다. 바다의 모습이 사라지면 영상으로 창문과 창문 밖 모습이 나타난다.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만약 창문이 영상이 아닌 소품으로 표현됐으면 창문의 존재가 관객들에게 잘 인식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관객석의 규모로 볼 때는 소극장이지만, 무대의 규모는 중극장 이상의 크기이기 때문에, 객석에서 가까운 곳의 소품은 직접 변화를 주고 먼 곳은 영상으로 변화를 준 것은 좋은 선택으로 생각된다.

‘인어’는 2015 창작산실 대본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공연을 직접 보면 소설을 읽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대성을 강조한 요즘 연극들과는 달리 문학성이 강조된 정통 연극의 향기가 전달된다.

생각하기 전에 바로 받아들이는 요즘 무대 공연에서, 문학적 사색을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렇지만, 감각적인 무대 공연에 익숙해진 관객에게는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감성적이고 이상적인 여배우 리브(이지하 분)와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작가 그릭(최광일 분) 부부는, 외부 세계에 대한 동경과 환상으로 현실도피를 원하는 어부 하르데(신용진 분)와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여인 숄(주인영 분) 부부가 사는 어촌 마을로 이사 온다.

이웃이 된 하르데는 그릭과 리브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그들의 감정은 서로 엇갈리게 된다. ‘인어’는 1999년 아이슬란드, 바닷가 마을 두 부부의 이야기로, 인간 내면의 욕망과 연민 그리고 갈등을 담고 있다.

◇ 내면 심리에 대한 적나라한 노출

‘인어’에서 숄은 말을 못한다. 막연히 추측하면 말을 안 하는 연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말없이 하는 연기는 대사가 있는 연기보다 훨씬 어렵다고 생각된다. 대화는 주로 음악 없이 적막 속에서 이뤄진다. 공연에는 피아노가 라이브 연주되는데, 장면전환이 이뤄질 때 주로 어둠 속에서 연주되고, 음악이 없이 진행되는 시간이 많다는 점은 특이하게 생각된다.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인어’는 솔직한 감정 표현과 감정의 스와핑이 눈에 띈다. 감정의 스와핑에서 감정은 사랑의 감정뿐만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솔직한 마음이다. 감정과 공감을 나눠야 할 상대방이 바뀐다. 극적인 설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무척 현실적인 상황이다.

남편 그릭은 리브의 마음보다 이젠 작가로 쓰는 글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바다 옆에 살면 자살하고 싶어진다고 말하는 리브는 촌구석에 와서 불안을 느낀다. 리브 역의 이지하는 배우이면서 극 중 배우 역할을 맡았는데, 리브가 배우보다는 여자로 보이길 바란다고 이지하는 밝힌 바 있다.

극 중에 배우 역할이 한 명 더 있다. 리브는 대사와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이름이 명명되지 않은 배우(김록원 분)는 무대에서 몸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배우 리브의 복잡다단한 마음은 남녀 간의 복잡한 관계와 심리로 연결된다.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말을 못하는 여인 숄과 말을 하지만 무대에서나 현실에서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여인 리브는 서로 다른 부류의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면을 주변 사람에게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극 중에서 그녀들의 심리는 관객들에게 더욱 노골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 수상가옥을 연상하는 목재 구조물

‘인어’의 목재 구조물은 작은 기둥을 사용해 바닥에서 약간 떨어지게 설치됐다. 바닷가 집인데 수상 가옥 같은 느낌도 준다. 내부의 모습은 정사각형이 아닌 변형을 줬고, 2단으로 높이차를 줌과 동시에 배의 선수나 선미처럼 곡선의 경사도 줘, 집은 배의 느낌도 주고 있다.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바닷가의 집인데, 수상에 떠 있는 느낌, 배의 느낌을 주는 것은 육지보다는 바다에 가깝다는 정서적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극에서 누군가에게 바다는 떠날 수 없는 운명이고 누군가에게 바다는 지긋지긋한 대상인데, 집은 바다와 육지의 이중적 느낌을 동시에 표현해 양쪽의 해석을 모두 가능하게 만든다.

‘인어’는 사랑하지만 미워하고, 안쓰럽게 여기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헤겔의 집이라는 상징성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닥치면 자신을 먼저 원망한다는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다시 한 번 더 관람하고 싶은 마음과, 대본을 소설처럼 음미하여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여운으로 남는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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