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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훔쳐보는 사람을 또다시 훔쳐보는 연극 ‘인간’(1)

발행일 : 2016-12-23 18:51:58

프랑스 천재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유일한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연극 ‘인간’이 12월 17일부터 내년 3월 5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이번 작품은 드라마 제작사로 유명한 크리에이티브리더스그룹에이트(이하 그룹에이트)가 공연사업본부를 신설해 제작한 첫 작품이다.

문삼화 연출이 직접 각색을 했고, 인류 마지막 생존자 화장품 연구원 라울 역에는 고명환, 오용, 박광현, 전병욱이, 호랑이 조련사 사만타 역은 안유진, 김나미, 스테파니가 캐스팅돼 신선한 조합의 매력을 발휘하고 있는 작품이다. 본지는 ‘인간’을 2회에 걸쳐 독자들과 공유한다.

‘인간’ 공연사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공연사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 한정된 공간, 한정된 사람, 한정된 자원

‘인간’에서 라울과 사만타는 우주 어딘가에 있는 유리 감옥에 갇혀 있다. 그들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왜 그곳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퍼즐을 맞추듯 조합해 보니 리얼리티쇼 같기도 하고, 대본 없이 상황극에 즉흥적으로 투입된 것 같기도 하다.

‘인간’에서 비현실적인 상황에서의 비현실적인 공간이,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으로 표현돼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의 블랙박스 무대는 그들이 있는 공간이 열린 공간이 아닌 한정돼 갇힌 공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인간’ 공연사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공연사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한정된 공간, 한정된 사람, 한정된 자원, 그리고 어딘지 모르는 우주 어느 곳으로의 이동. 라울과 사만타가 신체 접촉을 할 때마다 알림음 같은 음향과 함께 음식이 투여된다.

‘인간’은 지구가 한정된 자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측면도 있다. 이 작품은 공간과 사람, 자원의 한정을 언어적 메시지로만 전달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시각적으로 확실하게 각인시킨다는 점이 주목된다. 무대 공연에서 보여주는 바로 눈앞에서의 시각화는 효과가 크다.

‘인간’ 공연사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공연사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 상황과 입장 변화, 극한 상황에서 인간 심리

좋아하는 것이 많은 여자와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가 폐쇄된 공간에 같이 있다. 화장품의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해 동물 실험을 했던 남자와 동물과 사람을 모두 사랑하는 동물 조련사 여자, 단 두 명만 있다.

남자는 존댓말을 하고 여자는 반말을 한다. 찌질한 남자는 열렬한 사랑도 해봤고 결혼과 이혼의 경험도 있는데, 매력적인 여자는 꿈꾸는 이상형의 남자만 기다리며 살아왔다.

‘인간’ 공연사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공연사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갇힌 공간에서 남자는 담배가 피우고 싶다. 일반적으로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를 잘 참지 못하는 남자의 모습을 라울은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여자들이 일반적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를 숨기기도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인간’은 인간의, 인류의 생존이냐, 멸종이냐를 다루면서, 상황과 입장의 변화에 따라 인간 심리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이번 공연은 대사와 장면 전환이 무척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데, 관객들은 라울과 사만타의 마음과 생각이 서로 교체된 것은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다.

대사도 변화하고, 영역에 대한 집착도 변화한다. 스킨십에 대한 필요성과 욕구 또한 변화한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어느 순간에 시작된 것인지는 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몰입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인간’ 출연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출연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 인간은, 인류는 이 우주에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가? 재판신이 주는 메시지

‘인간’은 재판신을 통해 개인적 이야기에서 철학적, 인간 본연의 사고적인 메시지의 전달로 변화한다. 사만타는 인간의 입장에서 당당하게 말하며, 인간이 얼마나 훌륭한지 말하려고 한다. 인간에 대한 항변이자, 사만타의 변화이다.

재판신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가장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데, 유럽인 특유의 토론 문화가 들어가 있는 원작의 무거운 이야기는 이번 공연에서 영상을 통한 시각화로 쉽고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인간’ 출연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출연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를 표현한 영상과 내레이션은 인상적이었다. 무대 양쪽에 관객석이 배치됐기 때문에 영상은 무대 뒷면 벽에 상영될 수 없었고, 직사각형의 영상이 아닌 무대 속 구조물의 모양에 맞춰 상영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인류라는 역사의 마지막 에피소드일 수도 있다는 극 중 대사는 관객들로 하여금 실제로 그런 가정을 하도록 만든다. ‘인간’의 재판신은 몰입한 관객들에게 자신들이 재판의 당사자로도, 재판의 대상으로도 느끼게 만든다.

소설과 희곡의 경계가 원작에 비해 명확해졌다는 점도 이번 작품에서 돋보인다. 영화로 표현됐을 경우 모호한 경계는 판타지적인 신비감을 줄 수도 있지만, 연극에서의 모호한 경계는 감정이입을 방해할 수 있다. 눈앞에서 직접 느끼며 받아들이는 장르인 무대 공연에서 이번 작품의 훌륭한 각색과 설정 선택이 돋보인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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