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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2) 잔혹동화에서 가족 오페라까지

발행일 : 2016-12-27 17:29:58

◇ 오케스트라가 주인공인가? 성악가가 주인공인가?

성남문화재단의 ‘헨젤과 그레텔’ 공연은 메인이 오페라가 아닌 메인이 연주회인 느낌을 줬다. 오페라 전막이 아닌 갈라 콘서트 같게 느껴지도 하는 것은, 오케스트라의 배치, 마이크를 사용한 연주, 성악과 기악의 소리 크기 등에 기인한다.

이번 공연에는 무대 위에 오케스트라를 배치했다. 무대 위 2층 구조물이 설치됐고, 연주자들은 1층과 2층에 나눠 자리 잡고, 지휘자는 무대 구조물 2층에서 지휘했다.

‘헨젤과 그레텔’ 공연사진.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공연사진.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일반적으로 오페라에서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를 모두 보면서 지휘한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지휘자가 성악가들을 직접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지휘할 수밖에 없었다. 지휘자는 성악가의 뒤쪽에서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지휘했다. 성악가들은 작은 모니터의 화면을 통해 지휘자의 모습을 볼 수는 있지만, 지휘자와 실시간으로 생생한 호흡을 주고받기는 무리가 따랐다.

무대 위에 오케스트라를 올렸다는 것만 생각하면, 기악 연주 소리는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올라오는 소리보다 훨씬 더 살아 숨 쉴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가 라이브 연주를 하면서도 마이크를 사용했다. 오페라 연주는 자연음향의 라이브 연주이기에 정말 진한 감동의 전율을 준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안타깝다.

‘헨젤과 그레텔’ 공연사진.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공연사진.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연주자들 앞에 플라스틱 나무가 배치된다는 현실적인 면을 고려해 마이크를 설치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볼륨을 키우는 방식이 아닌 연주자 2명 당 1개의 마이크로 합성해서 소리를 만들었어야 했을까라는 의문을 남긴다.

이번 공연은 자연음향 연주가 아니었기에, 연주자들의 연주를 조율해 최종적으로 소리로 만드는 사람은 지휘자가 아닌 음향 엔지니어라고 볼 수 있다. 국악 관현악이 연주 후 서양 관현악 연주보다 환호와 박수가 적은 이유는, 국악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마이킹을 통해 재생산된 음악이 관객들의 마음을 크게 흔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리톤 김재섭(‘헨젤과 그레텔’ 아버지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바리톤 김재섭(‘헨젤과 그레텔’ 아버지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연주에 참여한 코리안 피스 오케스트라는 연주 실력이 좋은 단체로 알려져 있는데, 오페라에서 마이크를 사용해 연주했기 때문에 코리안 피스 오케스트라를 ‘헨젤과 그레텔’을 통해 처음 접한 관객은 훌륭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성악가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통해 올라오는 기악 소리를 뚫고 관객석에 아리아가 전달되도록 노래하고, 그렇기에 성량이 좋은 성악가가 대극장 오페라에서 더욱 각광받는다.

바리톤 왕광열(‘헨젤과 그레텔’ 아버지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바리톤 왕광열(‘헨젤과 그레텔’ 아버지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오케스트라 피트에서의 연주가 아닌 무대 위 연주였지만, 오케스트라에 마이크를 사용했고 스피커는 무대 앞에 위치하기 때문에, 성악가의 아리아 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확성된 기악 소리를 뒤에서 따라가는 느낌을 줬다. 이런 구조라면 아리아가 감동적으로 들린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성남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합창을 할 때는, 확성된 기악 소리 때문에 합창이 잘 들리지 않았다. 일부 합창단원은 합창 소리를 키우기 위해 소리를 크게 냈기에, 합창 화음의 매력과 감동은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점을 보완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설정의 디테일만 조정했어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합성돼 확장됐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정말 실력 없는 연주자, 성악가로 인해 공연이 빛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기획력 부족으로 공연의 질이 떨어졌다는 점은 너무 아쉽게 생각된다.

테너 김동섭(‘헨젤과 그레텔’ 마녀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테너 김동섭(‘헨젤과 그레텔’ 마녀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 정말 멋진 무대디자인, 홀로그램 스크린을 통한 놀라운 시각적 효과

‘헨젤과 그레텔’에서 대나무를 연상하는 플라스틱 나무에 조명을 비춘 것은 환상적인 분위기 연출했다. 플라스틱 나무와 조명 뒤 오케스트라를 배치한 아이디어는 무척 훌륭했다. 환상의 세계, 환상이 가득한 숲의 세계에서의 연주 같은 판타지를 전달했다.

영상 또한 무척 감각적으로 잘 만들었다.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사용된 반가림막에 띄운 영상은 내면의 세계, 상상의 세계를 이미지적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함을 발휘했다. 성악가의 손짓으로 영상이 바뀌는 장면은 신비감을 더했고, 극장 뒤편에 흑색 커튼을 내려 영상에 집중하도록 만든 디테일은 훌륭했다.

소프라노 윤서현(‘헨젤과 그레텔’ 잠의 요정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소프라노 윤서현(‘헨젤과 그레텔’ 잠의 요정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뛰어난 아이디어를 활용한 새로운 시도는 멋질수록 안타까움을 남겼는데, 이런 특수효과는 ‘헨젤과 그레텔’이 오페라의 기본에 충실했다면 감동받은 관객들에게 정말 오랜 기간 회자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 오페라답게 만들었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디테일을 챙겼더라면?

성남문화재단의 ‘헨젤과 그레텔’은 작년에 이어 재공연된 작품이다. 대부분의 배역은 더블 캐스팅으로 진행됐는데, 성남아트센터 홈페이지와 인터파크 티켓 예매 사이트, 어디에서도 캐스팅 정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회차에 누가 캐스팅됐는지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지하지도 않고, 공연 당일에 안내를 붙여놓지도 않고, 심지어는 문의를 해도 모른다는 답변만 반복됐고, 마지막에 들은 리플릿에 쓰여있다는 안내는 진실이 아니었다. 더블 캐스팅에 대한 안내는 관객들에 대한 기본이다. 더블 캐스팅으로 참여하는 성악가를 배려하지 못한 점 또한 안타깝다.

소프라노 이경은(‘헨젤과 그레텔’ 이슬요정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소프라노 이경은(‘헨젤과 그레텔’ 이슬요정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가 오페라 전용극장은 아니더라도 공연을 좀 더 오페라답게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헨젤과 그레텔’은 국립오페라단에서 디테일 높은 연출을 선보였던 이의주 연출의 작품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

‘헨젤과 그레텔’은 장점이 무척 많은 공연이다. 그런데, 기획에 있어서 좀 더 오페라의 본질에 충실했고, 관객의 입장을 약간만이라도 생각해 디테일을 챙겼으면 얼마나 좋은 공연이 됐을 수 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너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성남아트센터가 성남에서는 좋은 공연을 하는 장소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을 올리는 명소가 되길 바란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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