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경차 시대가 열린 건 1991년부터다. 당시 대우자동차가 일본 스즈키 알토를 베이스로 한 ‘티코’를 시판한 게 그 시작이다.
티코는 스즈키 알토가 그랬듯이 사회 초년생이나 젊은 부부, 저소득층 등을 주 수요층으로 했기 때문에 낮은 가격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가격이 낮다보니 안전도나 실내공간, 승차감 등에서 큰 기대를 하기는 힘들었다.
현대차가 아토스를, 기아차가 비스토를 출시하면서 열린 경차의 경쟁 시대는 지난해 기아 모닝과 쉐보레 신형 스파크가 맞붙으며 절정을 이뤘다. 경차 시장 1위를 지키려는 모닝과 앞선 성능을 내세운 신형 스파크의 대결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소형차나 준중형차도 주지 않는 김치 냉장고나 TV가 사은품으로 등장할 정도였다.
기아차가 이번에 새롭게 내놓은 올 뉴 모닝은 지난해 스파크에 밀린 시장 1위 자리를 되찾기 위한 야심작이다. 전체적인 스타일은 구형 모닝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귀여운 느낌을 줬던 앞모습은 범퍼 사이즈를 키우고 좌우 코너에 컬러로 포인트를 주면서 강인한 인상으로 바뀌었다. 실내는 구형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운전자의 눈높이에 맞춘 플로팅 타입 내비게이션은 동급에서 유일하다.
엔진은 우선 1.0 가솔린 한 가지만 나온다. 최고출력은 구형보다 2마력 줄어든 76마력이고 최대토크는 0.1㎏‧m 늘어난 9.7㎏‧m다. 시동은 부드럽고 가속 때의 반응도 꽤 빠르다. 4단 자동변속기지만 가속 페달을 70~80% 정도만 밟으면 적절한 기어를 잘 찾아 바꿔준다. 다만 배기량의 한계가 있다 보니 풀 가속을 할 때는 엔진음이 급격히 커지고 반응이 더디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고급형도 수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산차는 고급형 이상에서는 자동변속기만 선택할 수 있는데, 모닝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모든 트림에서 자동변속기가 선택 사양이다. 운전 재미를 위해 수동변속기를 고집하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차체는 급격한 차선 변경에도 기대 이상의 안정감을 줬다. 앞뒤 서스펜션을 개선한 데다 195/45R16 사이즈 타이어를 장착한 덕분이다.
다만 이 사이즈의 타이어는 베이직 플러스나 디럭스 트림에서는 고를 수 없고, 럭셔리 이상에서만 선택이 가능하다. 이런 옵션은 타이어뿐만이 아니다. 기아차가 동급 유일이라고 강조하는 운전석 무릎 에어백 역시 럭셔리 트림 이상에서 선택 가능하고, 긴급 제동 보조시스템은 디럭스 이상에서 고를 수 있다.
그동안 현대차와 기아차는 가격 면에서 경쟁사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왔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최고급형을 골라야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을 펴왔다.
올 뉴 모닝도 다르지 않다. 기본형은 950만원부터 시작하지만, 쓸 만한 옵션은 럭셔리 트림 이상에 몰려 있다. 럭셔리(1180만원)에 4단 자동변속기와 스타일, 컨비니언스, 스마트 내비게이션, 운전석 무릎 에어백, 드라이브 와이즈, 광폭 타이어, 아트 컬렉션 등을 모두 고르면 1590만원이 된다. 그러나 상위 트림인 프레스티지에 같은 옵션을 장착할 경우 1570만원이다. 게다가 선루프는 프레스티지 트림만 선택이 가능하다.
물론 자동차업체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게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운전석 무릎 에어백이나 긴급 제동 보조시스템 같은 안전사양은 모든 모델에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가진 돈이 적다고 안전도에서 차별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아차 서보원 이사는 기자단 대상 시승회에서 “현재까지 판매 분석 결과 프레스티지 트림이 37.8%로 가장 높다”고 했다. 기아차의 전략이 일단 성공한 셈이다. 향후 옵션 선택이 더욱 다양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