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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2016 공연예술 창작산실 연극(3) ‘소나기마차’

발행일 : 2017-02-12 10:43:16

공상집단 뚱딴지가 만든 신채경 작, 문삼화 연출의 ‘소나기마차’가 2월 10일부터 26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되고 있다. 2016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우수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무엇이 진실한 이야기를 외면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녹이는 ‘소나기’가 세상을 잠식해 가는데, 정체도 목적도 알 수 없다. 사람들이 내는 웃음소리가 위협적인 소나기를 멀리 쫓아버릴 것이라며 극 중 극은 시작하는데, 진실인지의 여부와 함께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진실을 외면한다. 이야기로 누굴 구한다고 믿어?

‘소나기마차’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소나기마차 공연단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다. 사람들은 두려운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고, 소나기의 공포는 밀려오며, 목마름과 굶주림은 눈앞에 닥쳐있다.

공연을 통해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다고 믿는 사람이 ‘소나기마차’에는 공존한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공연하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연극을 하는 것 자체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람도 있고, 단지 먹을 것과 마실 술을 벌기 위해 공연을 하는 사람도 있다.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소나기마차’가 반복해 던지는 질문은, 사실과 믿음, 의지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여섯 명의 등장인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공통적으로 해당될 수 있다.

◇ 여섯 대의 자전거가 끄는 소나기마차

‘소나기마차’는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 위에 올려진 6대의 자전거가 눈에 띈다. 앞줄에 두 대의 자전거가 있고 뒷줄에 네 대가 있는데, 앞줄 두 대의 자전거에는 말 가면이 씌워져 있다.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공연의 제목이 ‘소나기마차’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자전거가 마차를 대신해 스토리를 만드는 것인지, 자전거가 마차를 상징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혹시 자전거의 이름이 ‘마차’인지, 소나기로 녹아내려 말조차 없어진 시대에 자전거가 마차를 끄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소나기마차’의 무대장치가 말에서 자전거로 변경된 것은 시각적인 활동감, 실제 무대에서의 구현의 용이성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빠른 말에서 상대적으로 느린 자전거로 변경됐다는 것은 그만큼 소나기를 피해 달아나기가 쉽지 않게 절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소나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생명체의 숫자가 12가 아닌 6으로 집중감 속의 압박감을 전달할 수도 있다.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소나기마차’에서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속도와 그때의 표정을 보면 캐릭터의 성격 혹은 해당 배우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소나기가 오기 전과 후, 모자를 쓰기 전과 후에 달라지는 그들의 행동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말위에 올라타고 달렸더라면, 이런 뉘앙스는 다른 방법으로 전달됐어야 할 것이다.

◇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디테일이 보완된다면

‘소나기마차’에서 소나기는 모든 것을 녹여버린다. 공연을 계속 따라가려면 관객은 이것을 믿거나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소나기마차’에서는 이 전제를 받아들이기에 관객들은 매우 불편할 수 있다.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소나기가 마을을 다 녹여버리는데, 공연단 사람들이 입은 우비와 자전거, 마차는 소나기에 녹지 않는다. 개연성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고, 어차피 소나기를 맞아도 녹아내리지 않는데 꼭 소나기를 피해 달아나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연극적 환상으로 넘어가기에는 공연 초반부터의 설정이기에 받아들여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심지어는 비를 맞았는데 안 맞았다고 하는 장면도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관객들은 소나기를 무서운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소나기마차’에서 말 대신 자전거로 바뀐 점에서 착안해, 자전거는 소나기에 녹지 않는다는 설정을 넣으면 어떨까? 이것 자체도 개연성이 부족할 수는 있는데, 사람들을 살리고자 하는 말들의 영혼이 들어가서 소나기가 올 때마다 자전거가 녹아내리지 않게 말들이 노력하는 중이라면, 소나기를 피해 자전거 페달을 빨리 밟아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퍼그(오민석 분)에게 소나기를 잠시 막을 수 있는 우비가 단 여섯 벌 있다는 가정을 할 수도 있다. 다만, 그 우비는 오랜 시간 소나기를 버티지는 못하고 비가 온 후 바로 우비를 말리고 손질해야만 하는 과정을 넣어서 우비의 존귀함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마차의 천정은 우비를 만들고 남은 천으로 소나기를 겨우 막을 수 있도록 했다고 가정하면, 소나기를 막을 수 있는 우비가 단 여섯 개이기에 퍼그에게 선택된 사람들과 버려진 사람들의 절박함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

또한, 마차의 천정을 막고 있는 남은 천으로 우비를 더 만들어 다른 사람도 입게 해줄 수 있다는 사람과 마차가 없으면 공연을 할 수 없다는 사람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요소를 만들 수도 있다.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소나기마차’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소나기마차’에서 창출해낸 소나기의 개념과 아이디어에 관객이 어느 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이 추가된다면, ‘소나기마차’는 충분히 재공연도 가능한 작품이라고 사료된다.

‘소나기마차’에서 퍼그를 욕하며 퍼그를 닮아가는 애꾸(김영택 분), 다른 사람이 볼 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둘 사이에서는 민감한 이야기로 논쟁을 벌이는 다다(구도균 분)와 멸치(문병주 분), 극한의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제인(김지원 분)과 루비(나하연 분)은 모두 겉으로 볼 때는 이상한 사람들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면에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소나기’는 무엇이며 ‘소나기마차’는 또 무엇일까?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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