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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2016 공연예술 창작산실 연극(4) ‘혈우’

발행일 : 2017-02-13 10:33:47

M.Factory가 만든 한민규 작, 이지수 연출의 ‘혈우(血雨)’가 2월 11일에서 26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2016 공연예술창작산실 연극 우수작품제작지원 선정작, 2016 공연예술창작산실 연극 시범공연지원 선정작인 이 작품은 고려 무신 정권 말기를 다룬 액션무협활극이다.

힘의 정치는 언젠가 힘으로 정복되고 반복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액션을 라이브로 연속해 관람하는듯한 화려한 액션신이 눈에 띄며, 등장인물들의 내면이 시대적 상황 속에서 처절하게 녹아있어 인터미션 없이 130분 동안 이어진 ‘혈우’는,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강렬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 예고편처럼 미리 시작한 공연, 호기심을 자극해 집중하게 만들다

‘혈우’는 공연 시작 전부터 3명의 등장인물이 무대에 올라서 실제 보초를 서며 대화를 하는 듯 이야기를 나누며 관객들의 눈길을 끈다. 관객들이 관객석으로 입장하고 있는 사이, 등장인물들은 차례로 관객석 뒷문으로 들어와 관객석 통로를 통해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배우들을 짧게나마 무척 가까운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시간으로, 호기심을 무척 자극하는 연출이었다. 미리 착석한 관객들에게는 일찍 들어오길 잘했다는 기쁨을 주며, 나중에 착석한 관객들에게는 아쉬움 속에 공연을 더욱 집중하게 만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계급에 따라 앉는 자리를 달리하며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하려다, 공연 시작 안내 방송이 이어져 관객들에게 작은 웃음을 선사했다. 공연전 예고편을 미리 본 느낌이었는데, 인터미션 없이 이어질 공연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영화의 액션을 라이브로 보는 듯한 화려한 액션무협활극

‘혈우’는 날 것 그대로의 싸움이다. ‘혈우’의 결투 장면을 보면 연극이 아닌 영화 액션을 라이브로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편집 없이 원테이크로 이어지는 무술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역동적인 동작에 영화의 카메라 워킹이 들어간 것처럼 슬로 모션와 스톱 모션, 조명의 암전이 이뤄졌고, 26명이 전체적으로 결투를 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2명 또는 4명이 집중된 결투를 보여줬다.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와이어 액션과 클로즈업 영상을 제외하고는 컷 없이 눈앞에서 진행되기에 무척 역동적인 액션은 놀라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다양한 대형에서의 액션의 합은, 복잡한 대사를 외우는 것 이상으로 반복된 연습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보인다.

‘혈우’의 액션신은 결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결투를 하면서 대사를 소화하는 장면도 많은데, 격렬한 액션신에서의 대사는 마치 댄스가수가 춤추면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혈우’는 대극장 연극이지만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육성으로 진행됐는데, 빠른 움직임 속에 육성으로 정확한 대사 전달을 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혈우’는 액션을 할 때뿐만 아니라 대형을 변경할 때도 빠른 움직임을 보여줬는데, 마치 무용 공연을 보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이지수 연출이 프레스콜 때 밝혔던 것처럼 무대 높이가 약간 더 높았으면, 공중 동작 무술이 더 화려하게 보였을 것이다.

◇ 특정 상황에서는 매우 직선적이며,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는 무척 입체적인 인물 최의를 소화한 김영민

‘혈우’에서 최의(김영민 분)은 김준(김수현 분)의 마음을 건드리면서 극을 이끌고 간다. 아버지 최항(김종구, 민병욱 분)으로부터 인정받는 김준을 미워하고 시기하지만, 김준을 버리지는 못한다.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최의는 김준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과 권위를 보이고 싶은 인물인데, 어쩌면 아버지보다 김준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수도 있다. 김준이 주군이었던 최항에게 충성했기 때문에, 김준으로부터 아버지 이상의 충성을 받는다면 서자였던 자신이 신분과 아버지의 벽을 극복하고 뛰어넘을 수 있다고 최의는 생각했을 수도 있다.

김영민은 험악한 얼굴이 아닌 꽃미남 스타일로 입체적인 최의의 성격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이다. 무신이지만 충성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며, 여자를 이용해 남자를 흔드는 인물을 김영민은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최의는 한 장면에서만 보면 가장 직선적인 인물인데, 전체적으로 보면 가장 입체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인물이다. 길향(서지유 분)의 죽음보다는 자신의 아이를 만나지 못하는 슬픔을 표현하는, 남자로서는 나쁜 성향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노래가 구슬픈 게 좋다고 말하는 것처럼 상처와 콤플렉스가 있는 인물인데, 김영민은 가졌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아픔을 처절하게 극 중에서 전달한다.

김수현이 맡은 김준은 순정파이다. 고려 말기 최고의 무신이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안심(신소현 분)을 위해서는 기존의 스타일을 버리고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할 수 있는 츤데레 캐릭터이다. 예전에도 인기 있었을 것이지만, 김준은 특히 요즘 시대에 여자들에게 인기 있을 스타일이다.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그렇지만, 관객들이 김준에게 감정이입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많이 존재한다. ‘혈우’는 절대악과 절대선의 대결이 아니라 폭력과 폭정의 반복이기 때문에, 김준 역의 김수현을 멋지게 바라볼 수는 있지만, 그에게 감정이입을 했다면 관객은 점차 내적 혼란과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 가장 가슴 아픈 사랑, 받지 못하고 주기만 하는 길향에 감정이입한 서지유

‘혈우’는 몽골의 침략과 호족의 약탈로 힘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백성들이 울부짖는 소리는 극 중에서 음향효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혈우’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힘든 인물을 뽑는다면 누구일까?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안심은 김준의 사랑을 받고 친근한 애정표현도 받는다. 길향은 어릴 적부터 봐왔던 최의를 호위하면서 사모하지만, 최의의 성적 노리개의 역할을 할 뿐 진정한 사랑을 받지는 못하는 인물이다.

서지유는 이전의 다른 작품에서는 극 중 상대방과 마음을 주고받았는데 ‘혈우’에서는 주기만 하기에 마음이 피폐해진다고 프레스콜 때 밝힌 바 있다. 만약 서지유가 길향 역을 쿨하게 소화했으면 마음의 상처는 크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길향이 돼 감정이입했기 때문에 길향의 상처를 온몸과 마음으로 받았을 것이다.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극 중에서 마음을 주고받지 못하고 주기만 하더라도, 극 중 상대방과 연기 또한 주고받지 않는다면 배역을 극에 동떨어지게 소화하게 될 것이고, 연기를 밀접하게 주고받으면 마음을 주고받지 못해 받는 상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혈우’에서 길향 그 자체가 된 서지유는, 사랑받지 못하고 주기만 해야 하는, 게다가 이용당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주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도 없는 역을 소화하면서, 온전히 슬픔에 감정을 싣지도 못하고, 충성과 연민, 실낱같은 희망을 함께 유지해야 했기에 진짜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혈우’ 공연사진. 사진=M.Factory(사진 김명집) 제공>

만약 ‘혈우’가 심리극이었다면 서지유는 자신이 연기하지 않을 때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액션무협활극이기에 감정의 점핑까지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게다가 극 중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서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은 한 명도 없고, ‘혈우’ 자체에서 제1주인공이나 제2주인공도 아니고, 관객들은 주로 액션에 몰입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관객들로부터 동정과 응원을 받아 연기를 하면서 생긴 아픔을 극복하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스스로 몰입하고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길향 역을 소화한 서지유의 연기가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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