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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나의 집’ 실제로 살고 있는 나의 집에서 리얼한 공연을 하다

발행일 : 2017-02-20 22:22:12

극단 파문의 두 번째 월간낭독 ‘나의 집’이 2월 19일 종로1번가오피스텔의 실제 집에서 공연됐다. 월간낭독 시리즈는 리딩 공연으로 정식 공연 전 대사를 위주로 이뤄진 공연인데, 이번 ‘나의 집’은 연기, 조명, 음악, 음향 등이 함께 해 정식 공연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층간 소음을 소재로 다루는 연극에서 층간 소음이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실제 오피스텔을 공연장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공연을 관람한 소수의 관객들은 관람을 넘어서, 무대 안으로 직접 들어가 체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시간이었다.

‘나의 집’ 공연사진. 사진=파문 제공 <‘나의 집’ 공연사진. 사진=파문 제공>

◇ 법정의 배심원처럼, 관객들에게 극 중 논쟁을 판단하는 주도권을 주다

인현진 작/연출의 ‘나의 집’의 원작은 에드거 앨런 포의 ‘배반하는 심장’이다. 원작은 ‘나’의 독백 형식으로 이뤄진 짧은 소설로 자신의 성격을 밝히며 그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의 집’은 301호에 사는 구청 사회복지과 노인복지팀 직원(고서정 분)과 401호로 새로 이사 온 미대를 졸업하고 클럽 DJ로도 일하는 자유분방한 예술가(하승연 분)은 서로 대화를 하기도 하지만, 관객을 향해 방백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한다.

연극에서 독백은 혼자 하는 말이고, 방백은 관객에게 하는 이야기로 극 중 상대방은 듣지 못한다. 원작의 독백은 ‘나의 집’의 방백으로 변화돼 고서정과 하승연은 각각 관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주기를 요청한다.

‘나의 집’ 공연사진. 사진=파문 제공 <‘나의 집’ 공연사진. 사진=파문 제공>

연극에서 관객은 보통 관찰자의 입장으로 시작해 공연에 몰입하면서 감정이입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의 집’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방백을 통해 관객들에게 판단의 주도권을 줘 공연 처음부터 공연 당사자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나의 집’의 관객은 마치 법정에서의 배심원처럼 고서정과 하승연의 이야기를 들으며 판단하는 주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새롭지 않을 수도 있는 층간 소음이라는 소재에도 몰입된 재미를 느끼게 됐다. 어떤 소극장보다도 밀착된 공간에서 생생하게 전달된 고서정과 하승연의 연기력은 극의 몰입도를 더욱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본 공연의 기획을 맡은 김보연은 공연 마지막에 201호에 거주하는 주민으로 목소리로만 등장하는데, 반전의 마무리를 완벽히 해내는 카메오처럼 느껴졌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사만 들려준 김보연은 어쩌면 가장 리딩 공연의 취지에 맞는 연기를 보여줬다고 볼 수도 있다.

‘나의 집’ 공연사진. 사진=파문 제공 <‘나의 집’ 공연사진. 사진=파문 제공>

◇ 서로 다른 캐릭터의 매력을 보여준 고서정과 하승연

‘나의 집’은 낭독극이지만 연기를 모두 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배우들은 대본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대본을 거의 외운 상태에서 공연했다고 추측되는데, 공연의 조명은 거의 어두운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에 대본을 외우지 않은 상태에서 일기(리딩)은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집’이 공연된 복층 구조 오피스텔은 밑층이 301호가 되고 위층이 401호가 됐으며 복층 사이의 계단은 301호와 401호를 연결하는 계산으로 활용됐다. 301호 고서정과 401호 하승연이 서 있는 공간, 말하는 공간은 높이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바닥에 앉은 관객들은 실제 윗집을 쳐다보는 것처럼 401호의 공간을 바라보며, 좁은 공간에서의 입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집’ 공연사진. 사진=파문 제공 <‘나의 집’ 공연사진. 사진=파문 제공>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한 고서정은 공연 중반부까지 눈은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하나, 입술은 흥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401호 여자는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여자라고 말하는 고서정을 보며, 관객들은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왜 401호 여자에게 자격지심을 가질까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이런 미묘한 감정의 차이는 무척 심각한데, 자신의 노력을 이해받고 싶은 마음을 고서정은 실감 나게 표현했다.

‘나의 집’ 공연사진. 사진=파문 제공 <‘나의 집’ 공연사진. 사진=파문 제공>

하승연은 자신감 있는 표정과 목소리로 당당한 401호 여자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401호 여자를 언뜻 보면 밑의 집에 민폐를 끼친 사람이지만, 자세히 보면 처음에 이사 왔을 때 먼저 인사를 했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301호 여자에게 친절한 평정심을 보이는 자신감과 예의를 가진 인물이다.

하승연은 완전히 민폐녀도 아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눈치만 보며 사는 사람도 아닌, 말 그대로 당당한 청춘의 모습을 균형감 있게 소화했다. 진짜 어이없다는 표정은 연기가 아닌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것처럼 리얼함을 표현했는데, 관객석과 무대가 밀착해있기에 하승연이 보여준 움직임의 디테일이 더욱 살아있게 전달됐다.

‘나의 집’은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해 관객들이 생각할 시간을 공연 후에 마련해줬는데, 누구의 잘못인가에 대한 설문조사는 ‘나의 집’의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부여한 배심원의 지위를 재확인하며 공연을 마무리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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