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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클래식] 세 명의 작곡가, 세 가지 색 연주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

발행일 : 2017-03-14 00:40:46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 ‘손끝으로 그리는 순례’가 지클레프 주최로 3월 10일 금호아트홀에서 공연됐다. 부산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메네스 음대에서 수석 졸업한 피아니스트 윤유진은, 자신이 좋아하는 세 명의 작곡가, 하이든, 드뷔시, 리스트의 작품을 통해 관객과 음악으로 소통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공연에서 윤유진은 작곡가에 따라 다른 콘셉트로 연주를 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하이든의 곡은 악장 사이에 긴 시간을 두지 않고 하나의 감정선을 이어 연주했으며, 드뷔시 곡에서는 악장 사이는 구분했지만 완급조절을 할 때도 곡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리스트 곡을 연주할 때 윤유진은 악장마다 스토리에 최선을 다하는 연주를 들려줬다.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 리허설사진. 사진=Dongwook Shin 제공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 리허설사진. 사진=Dongwook Shin 제공>

◇ 하이든, ‘Keyboard Sonata in B-flat Major, Hob. XVI:41’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의 첫 연주곡은 하이든의 ‘Keyboard Sonata in B-flat Major, Hob. XVI:41’(이하 ‘피아노 소나타 작품번호 41’)이었다. 윤유진은 상체를 건반에 가까이 가져가, 관객들과 음악으로 소통을 하기 전에 피아노에게 이야기를 듣는 듯한 모습으로 연주했다.

부드러움 속에서도 힘 있고 분명한 연주를 들려줬는데, 제1악장과 제2악장은 잠깐의 시간을 둬 악장을 구분하긴 했지만, 동작을 풀지 않고 감정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연주를 이어갔다. 마치 악장이 바뀐 것이 아니라 쉼표가 길게 있는 느낌을 줬다.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 리허설사진. 사진=Dongwook Shin 제공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 리허설사진. 사진=Dongwook Shin 제공>

윤유진은 ‘피아노 소나타 작품번호 41’의 마지막 음을 연주하고 나서도 바로 빠져나오지 않고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졌다. 강렬한 연주는 시각적인 마무리 동작과 함께 인상적으로 기억되고, 우아한 연주 후에는 서서히 돌아올 때 관객들에게 여운을 더 길게 준다는 면에서 윤유진의 마무리는 눈에 띄었다.

◇ 드뷔시, ‘Suite Bergamasque’

드뷔시의 ‘Suite Bergamasque’(이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을 연주할 때 윤유진은 완급조절을 하는 부분에서도 빠져나오지 않고 긴장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그냥 전체적으로 이어지는 연주를 하지는 않았으며, 명확하게 방점을 찍으며 연주했다.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 리허설사진. 사진=Dongwook Shin 제공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 리허설사진. 사진=Dongwook Shin 제공>

윤유진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만의 음악 철학을 묻는 질문에 “청중이 연주를 들을 때 작품의 음악적 메시지가 명확히 전달되어야 한다”라고 답한 바 있는데,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많이 알려진 곡인 ‘달빛’을 연주할 때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전달됐다.

윤유진은 ‘달빛’에서 서정성을 발휘하며 차분함과 여백의 미학을 전달했다면, ‘파스피에’는 활기찬 춤곡답게 빠르게 질주했다. 전주곡으로 시작해 미뉴에트의 춤, 달빛의 서정성을 통해 파스피에의 빠른 무곡으로 밤의 운치와 역동성을 차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 리허설사진. 사진=Dongwook Shin 제공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 리허설사진. 사진=Dongwook Shin 제공>

◇ 리스트, ‘Années de pèlerinage: 2ème Année, Italie, S. 161’

‘Années de pèlerinage: 2ème Année, Italie, S. 161’(이하 ‘순례의 해’)는 리스트가 작곡한 피아노 솔로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큰 곡으로 알려져 있다. 리스트가 작품 전체를 완성하는데 40년이 걸린 작품이기 때문에, 곡을 이해하는데도 곡을 해석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만큼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윤유진은 ‘순례의 해’를 왼손 연주로 시작했다. 긴 연주시간 동안 대장정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순례의 해’는 다양한 음악 어법이 담겼기 때문에 처음 듣는 관객에게는 익숙할 만하면 다른 음악으로 넘어가고, 이해할 만하면 새로운 것을 던져 놓는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관객이 모두 음악 전문가가 아닐 경우, 욕심을 낸다면 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곡이 ‘순례의 해’이다. 관객을 염두에 두지 않고 연주한다면 연주자의 입장에서 어려울 일이 없을 것이고, 정서의 흐름을 모두 따라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관객의 입장에서도 어려울 일이 없을 수 있다. 개별곡만 연주하고 듣는다면 ‘순례의 해’는 오히려 명쾌할 수도 있는 곡이기 때문이다.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 리허설사진. 사진=Dongwook Shin 제공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 리허설사진. 사진=Dongwook Shin 제공>

윤유진 피아노 독주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순례의 해’ 연주 후 리스트의 곡이 무척 매력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는데, 어떤 점이 구체적으로 매력적이냐고 물어보면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단 하나만 포함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음악어법과 구성, 정서, 감성을 포함한 곡이기 때문에 디테일을 표현하지 못한 관객이 오히려 솔직하고 정확하게 곡의 매력을 느낀 것일 수 있다.

55분간의 ‘순례의 해’의 대장정을 마친 후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리스트의 ‘Consolation No. 3 in D-flat major’(‘위안')는 전체적으로 느린 템포의 잔잔히 흘러가는 물과 같은 느낌으로 청중들의 마음에 깊숙이 스며들었고, 이날 공연의 여운을 한층 더 깊고 진하게 남기기에 충분했다.

지난 독주회에서 쇼팽에 집중했던 윤유진은, 이번 공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서로 다른 세 작곡가의 곡을 선뵀다. 감정과 이성의 조화를 통해 설득력 있는 음악을 완성하고 전달하려는 윤유진의 다음 공연 콘셉트는 무엇일지 기대가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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