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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2016 공연예술 창작산실 연극(8)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제2부) 심정적 살인과 실제 살인 사이에서

발행일 : 2017-03-15 09:56:57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제2부는 제1부보다 훨씬 더 과격한 감정의 질주가 이뤄진다. 사와 연기를 배우들의 움직임과 안무로 확장해 구현하는 방법인 씨어터 댄스(Theater-Dance)도 제1부와 제2부는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심정적 살인과 실제 살인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은, 누가 표도르(박윤희 분)를 죽였는지 보다 왜 그를 죽여야만 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제1부와 제2부의 총 7시간 동안의 공연을 관람하고 나면, 차이콥스키의 정신세계가 약간은 익숙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같은 사건과 다른 기억들, 예전에 내가 알던 사람이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같은 사건에 대해 전혀 다른 기억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특정한 상황에서 일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여길 수도 있지만, 실제 우리 삶에서 이런 일을 흔하게 벌어진다.

예전에 알던 사람이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다. 고요한 만족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이반(지현준 분)의 모든 것을 스메르자코프(이기돈 분)는 파악하고 있다. 이반의 오만함이 스메르자코프를 업신여기게 되는데, 이는 같은 사건에 대해 다르게 기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춘 사람들은 동물탈을 쓰고 있었는데, 동물탈을 쓴 사람일 수도 있고 연주자들은 진짜 동물 역할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됐다. 가면이 벗겨진 순간에 그들은 움직였는데, 가면을 쓴 모습이 어쩌면 진실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할 수도 있었다.

그루센카(정수영 분)는 과거의 연인에 대해 “내가 사랑한 게 그 사람이 맞는가?”라는 당황함을 느낀다.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상상하고 만들어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루센카는 보여줬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는 연극이지만 정수영은 노래를 불렀는데, 마치 대화하듯 부르는 노래는 뮤지컬 넘버와는 다른 느낌을 줬다. 드미트리 역의 김태훈 역시 대화하듯 노래를 불렀다는 점은, 리듬보다는 정서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 광기의 울부짖음을 표현한, 씨어터 댄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빨간색의 네모 모양의 큰 천은 상황에 대한 표현과 내면에 대한 표현으로 모두 해석할 수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등장인물들은 모두 모두가 탐욕으로 가득 차 먹이를 기다리는 까마귀처럼 보이기도 하고, 버려질까 봐 두려운 사람들로 비치기도 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제2부에서의 씨어터 댄스는 구체화를 넘어 또 다른 추상적 메시지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대사를 쉽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야에서 바라봄으로써 어렵고 깊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질적이고 어색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스메르자코프와 드미트리는 거의 나체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야한 느낌보다는 무엇인가 까발려졌다는 의미로 전달된다. 그 이후에 이반 또한 거의 나체로 등장하는데, 내면의 무방비한 노출, 까발려진 내면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도 있다. 이반의 보디 페인팅은 무용 공연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다른 사람의 욕구를 이용한 스메르자코프는 본인의 욕구를 다른 사람의 욕구 속에서 찾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가 대화를 할 때 무대에 놓인 2개의 빨간 의자는 크기가 다른데, 어떤 의자에 앉느냐에 따라 대화의 주종이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반이 의자 뒤로 넘어지는 연기는, 관객들을 아슬아슬함 속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했다.

◇ 심정적 살인과 실제 살인, 죽이고 싶었던 마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초반부에는 죽이고 싶었던 마음과 실제 죽음이 혼재돼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극이 진행될수록 명확하게 나눠진다. 심정적 살인은 자신이 실제로는 죽이지 않았는데 마치 자신이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현상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이반은 심정적 살인자로 나오는데, 도스토옙스키(정동환 분)는 각각의 캐릭터에 몰두하면서 어쩌면 자신이 겪은 자아분열을 등장인물에 다시 투영했을 수도 있다. 종교인 알료사(이다일 분)와 가족으로서의 알료사가 명확히 구분된다는 점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관람에 심리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작품이다. 제2부에서 다소 관객적 위치에 있는 카체리나(이승비 분)도 관객들과 같은 느낌일 수 있다. 처음에는 극의 내용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반복돼 알려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내용 파악의 어려움이 그리 크지는 않다. 대신 내면 깊숙이 파고드는 감정에 감정이입하면 할수록 내용 파악 때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누가 죽였는가도 중요하지만 왜 죽였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가 더욱더 중요하다. 제2부 마지막에는 거울과 유리창의 반반 효과를 통해 거울에 들어간 것 같이 오묘하게 표현했는데,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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