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오페라단 ‘사랑의 묘약’ 앙코르 공연이 3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이번 공연은 이탈리아 원작에 한국의 풍경과 정서를 담아 독특하게 만들어졌다.
크리스티나 페쫄리는 수백 편의 연극과 오페라 작품에서 연출가로 활약했는데, 연극 연출처럼 디테일한 움직임과 동선이 돋보였으며, 이탈리아와 한국 정서를 결합해 장르와 지역, 정서를 넘나드는 복합적 매력을 이번 작품에 담았다.
◇ 이탈리아어 원작, 이탈리아어 아리아, 이탈리아어 이름, 한국적 복장, 한국적 풍경, 한국 사람의 얼굴과 움직임
오페라가 현지화할 경우 그 나라에 맞게 스토리를 변경하거나 등장인물의 이름을 변경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사랑의 묘약’은 등장인물의 복장과 배경이 우리나라 농촌의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과 이름은 모두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우리나라 자연환경, 복장, 사람이 그대로 유지된 상황에서 우리의 언어가 이탈리아어인 것 같이 연출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기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출인데, 등장인물의 동작과 움직임 또한 한국적이었다. 빨래하는 아낙네 3명은 빨래하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랑의 묘약’을 처음 관람하는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거부감이 없을 수 있지만, 기존의 원본 버전의 ‘사랑의 묘약’을 관람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어색할 수도 있고 무척 신선할 수도 있다.
아디나(소프라노 손지혜, 박하나 분), 네모리노(테너 허영훈, 진성원 분), 둘카마라 양희준, 김철준 분), 벨코레(바리톤 한규원, 석상근 분), 잔넷타(소프라노 윤성회, 장지애 분) 등의 역할을 소화한 성악가들은 작품에 임할 때 어떤 감정적 느낌을 가졌을지 궁금해진다.
‘사랑의 묘약’에 몰입해 관람하다 보면, 이번 버전의 공연처럼 우리나라의 언어가 만약 이탈리아어라면 우리의 감정과 정서는 어떻게 바뀔지 상상하게 된다. 한국인과 이탈리아인은 열정적이고 다혈질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언어가 바뀌면 사회와 문화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사랑의 묘약’은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 경사진 무대,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바닥, 나무색과 금색의 오묘한 조화
‘사랑의 묘약’의 무대는 관객석 방향으로 경사져있어 1층 관객들도 무대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경사진 바닥무대는 조명의 영향으로 일정 부분 반짝이는데, 나무색과 기둥의 금색은 오묘한 조화를 이뤘다.
흔히 ‘황금빛 들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나무색처럼 자연적인 느낌과 함께 황금빛, 그리고 반짝이는 모습으로 표현해 한국적인 배경을 만들면서도 시각적 역동성을 유지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 유럽에 붙어있는 대한민국?
‘사랑의 묘약’에는 잿빛 제복을 입은 외국 군인이 등장하는데, 중국군인지 일본군인지 복장만으로 봤을 땐 명확하게 구분되진 않는다. ‘사랑의 묘약’의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에서, 한국이 유럽에 바로 붙어있는 아시아로 설정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외국군은 유럽의 군대일 수도 있다.
‘사랑의 묘약’에서 표현된 군대는 무서운 점령군이라기보다는 마치 널널하게 진행되는 예비군 훈련 분위기를 낸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렇지만, 병사 한 명 한 명이 어수선하게 움직이지는 않고 디테일한 위치와 동작을 자연스럽게 각자 소화한다는 점은 놀랍게 보인다.
‘사랑의 묘약’의 이번 서울시오페라단 버전 공연은 정서적 갈등으로 인해 특히 기존 오페라 관객들로부터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선입견 없이 공연을 봤을 때 관객이 얼마나 더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지를 ‘사랑의 묘약’은 확인해 준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