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콘돈 감독의 ‘미녀와 야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실사영화이다. 원작에 충실해 원작의 감성을 살렸다는 점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역대급 실사화로 손꼽힐 만큼 많은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대흥행하는 대작 영화는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느낌 이외에 관객 각자가 느끼는 별도의 포인트가 있는데, ‘미녀와 야수’에 대한 SNS 후기를 보고 차례로 관람한 관객의 느낌을 공유한다.
◇ 갑자기 프랑스 요리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영화, 강동원(자유여행가/직장인)
‘미녀와 야수’는 관람하고 나면 갑자기 프랑스 요리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영화이다. 영화 '해리 포터'의 여주인공이었던 엠마 왓슨(벨 역)이 나와서 화제가 된, 한마디로 말해 무척 멋지고 아름다운 영화이다.
1991년 디즈니에서 30편째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이번에는 사람이 출연하는 판타지 영화로 만들어졌다. 엠마 왓슨은 영화 속 벨과 너무도 완벽하게 잘 어울렸고, 똑똑하고 이지적이며 무척 이쁘게 나왔다.
어릴 때부터 영화 속의 벨을 동경해 이 영화를 수십 번 보고 가사를 외울 정도로 좋아했다고 하는데 자신이 벨 역을 하게 돼 꿈을 이뤘다고 전해진다. 벨은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야수의 성에서 엄청난 책들이 있는 라이브러리에서 그 책들을 마음껏 읽어도 좋다고 야수가 말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기뻐하는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고 예쁘다.
루크 에반스(개스톤 역)도 잘 알려진 배우인데 강인한 인상과 개성 있는 연기로 이 영화의 재미난 볼거리를 더해 준다. ‘미녀와 야수’는 배우들의 캐스팅부터 영화의 촬영지, 한 곡 한 곡 삽입된 영화음악, 의상, 소품 등 그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잘 어울리는 명품 영화이다.
세대와 나이와 관계없이, 때로는 복잡하고 바쁜 꽉 짜인 세상을 떠나서, 두어 시간 동안 어릴 적 동화와 같은 세계로 아름다운 여행을 할 수 있는, 누구나 보면서 기쁘게 공감하게 하는 ‘미녀와 야수’ 같은 영화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올해는 아마 노란색 드레스가 유행할 것 같다.
◇ 가슴으로 느끼기에도 벅찬 황홀함 덕분에 머릿속에 미처 남기지 못한 대사들, 이민주(상담전공 박사과정)
눈부신 벨과 수줍던 야수(댄 스티븐슨 분)의 넋을 잃게 만드는 왈츠는 마치 언젠가 따뜻하고 마법 같던, 사랑에 빠지던 순간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한 장면이었다.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이 이야기에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감동받는 이유는 뭘까?
가슴으로 느끼기에도 벅찬 황홀함 덕분에 머릿속에 미처 남기지 못한 대사들. ‘미녀와 야수’가 내 마음의 결을 이렇게 쓸어줄 줄 미처 예상치 못했고, 훅 들어온 돌직구들에 눈물이 쏟아졌다. 이 감정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흘린 눈물이 젖어들어 말랑해진 심장의 소리를 가만히 들어봐야 알 것 같다.
◇ 벨은 심리치료사가 될 가능성과 자질을 가진 캐릭터, 신지현(신지현 힐링아트 대표, 미술치료사/임상심리사)
‘미녀와 야수’에 대한 호기심은 후기를 작성한 다른 두 분의 SNS 글을 읽고서 생겼는데, 혼자서라도 보고 와야겠다고 결심했다. “영화 본 후 프랑스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라는 글에서 프랑스 음식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고, “배고프면 짜증나겠지”라는 생각에 든든히 속을 채우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퇴근시간에 겨우 맞춘 영화 시간에 그냥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평소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그 느낌을 이해하고 싶어 음식이 나오는 장면에서 더욱 집중한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글이었다. 기억에 남는 대사를 적어놓고, 영화의 감동을 평으로 남겨두었기에 나의 마음에 와 닿는 대사를 찾으려고 참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두 사람이 느꼈던 내용을 공감할 수 없었다. 물론 책장에 책이 가득한 방을 보며 좋아했던 벨의 마음과 벨이 입은 노란색 드레스는 겨울동화와 같은 유행이 되리라는 생각에는 동의하나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는 평에 기대하고 보았던 음식을 먹는 장면이 아닌 음악과 흐름으로 그 진행만 보여, 이 영화에선 프랑스 음식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후 자유여행가의 상상력과 세계를 다니며 견문을 넓혀갔던 경험이 녹아내린 글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위의 두 사람의 글이 있었기에 서로 다른 시각으로 인해 다른 것들을 보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그래서 더 즐겁기도 했다.
나의 관점은 주로 화면과 음악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좋은 뮤지컬 하나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디즈니 영화들의 여주인공들이 변해가고 있다.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키스에 사랑에 빠져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데요~”라며 외치던 디즈니 캐릭터들이 시대 흐름에 맞춰 첫눈에 반하는 매력 없는 캐릭터가 아니어서 멋있었고, 왕따를 견디며 꿈을 노래하는 여주의 모습 참 매력 있었다.
주인공인 벨은 참 똑똑하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벨을 따라다니며 구혼하던 개스톤은 누구나 다 생각하듯이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반사회성 인격장애가 있다. 무지함을 떠나 벨이 “당신과 내가 결혼한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라고 했던 대사는 과거 디즈니 주인공에게 볼 수 없었던, 백마 탄 왕자에 대한 판타지를 벗어난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인 야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차갑고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상처가 많아서, 저주가 아니어도 심리적인 야수였지 않을까 한다. 나는 이 야수가 요즘 흔히 말하는 츤데레 매력을 소유했다고 느꼈다. 야수의 내면은 벨을 공감할 줄 알고 이해할 줄 아는 겉모습과는 달리 여리고 섬세했다.좀 아쉽게 느껴졌던 점은 야수가 왕자가 되었을 때의 모습이다. 마법이 풀린 후 춤을 추던 왕자보다 남성적 매력을 가진 야수가 춤추는 장면이 더 멋있었고, 마법이 풀리자 여리여리 해지고 섬세해진 왕자에게서는 더 이상 야수의 매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나 할까?
벨은 동네 사람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신생아 때 엄마를 흑사병으로 잃은 상실감을 경험했기에 사실 심리치료사의 자질을 가진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버지의 지지와 사랑으로 외상 후 상처를 극복하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꿈을 꾸는 소녀로 사실 벨은 야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했다. 자신의 어릴 적 상처 덕분에 야수의 마음을 공감해 줄 줄 알았던 벨은 사실 야수가 왕자로 바뀌지 않아도 야수와 행복하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 변화하는 디즈니 여주인공의 캐릭터, 윤규빈(의료인)
잠이 오지 않는 늦은 밤들이 이어졌고, 이렇게 늦게까지 잠들지 않는 시간을 소비할 일들이 필요했다. 가까운 극장에서 마침 한참 핫한 ‘미녀와 야수’를 심야로 상영하고 있었고, 나는 페미니즘이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바른 말을 잘하는 엠마 왓슨이 나온다고 해서 호감을 갖고 극장에 들어섰다.
단지, 디즈니의 ‘공주물’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동화는 ‘정글북’,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같은 것들이었다. 그 동화 안에는 위기를 탈출하고, 지혜를 발휘하고, 용기를 시험받는 내용들이 즐비했다. 때문에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한 번의 키스로 깨우는 왕자와 유리구두 한 짝을 들고 본분을 망각한 채 스토커적으로 공주를 찾아 나서는 왕자, 그리고 자신이 살려준 왕자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인어공주 같은 이른바 ‘공주물’들의 내용은 예전에도, 지금도 동경하거나 이해해 본 적이 없었다.
다행히도 주인공 벨은 씩씩하게 말을 탈 줄 아는 여성이었고, 거대한 성과 많은 시종을 거느린 왕자의 삶보다는 책이 가득한 서재를 가진 왕자의 지식 창고에 무작정 감동해버리는, 나처럼 다소 똑똑한 듯하다가도 어느 면에서는 한없이 순진해지는 단순한 여자였다.
그래도 그녀는 아버지를 대신해 감옥에 갇힐 수도 있었고, 더럽게 무서운 야수의 얼굴 뒤에 숨은 보들보들한 마음을 눈치챌 수 있었고, 정말 느끼하고 왕자병에 걸린 개스톤을 뻥 차버릴 수 있는 당찬 여자였다. 겉모습 뒤에 숨은 것들의 진실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 그런 벨이어서 사랑스러웠다. 아마 엠마 왓슨보다 덜 아름다웠더라도 필시 나는 그 여주인공을 사랑했으리라 자신한다. 그런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니까.
야수는 이미 자신의 형벌을 통해 모든 것들의 표면에 드리워진 아름다움에 짙게 회의를 지니고 있을 것이었고, 처음에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안에 자신을 구원해줄 사람이 벨 뿐이었기에 욕심을 냈겠지만, 나중에는 그 촉박한 시간조차 느리게 느낄 만큼 진짜 그녀의 총명함과 용기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