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꺼먼 연기를 내뿜는 디젤차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을 때는 버스, 트럭의 매연에 목이 메케해져 온다. 누구나 친환경차를 한 번쯤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다.
어느덧 우리 곁에도 전기차가 상용화되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선보인 전기차는 한 번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너무 짧았다. 지난해 가을 나온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경우 주행거리가 191㎞로 늘어났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200㎞에 못 미치는 건 그 전에 나온 전기차들과 마찬가지였다.
6일 일산 킨텍스에서 만난 쉐보레 볼트(Bolt) EV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차다. 정부에서 인증 받은 1회 충전 주행거리가 무려 383㎞에 이른다. 운전하기에 따라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논스톱으로 주행이 가능한 수준이다. 한국GM에서는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동차 담당기자들을 킨텍스로 불렀다.
볼트 EV 디자인은 한국GM이 주도했다.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전기차 전용 알루미늄 합금 차체는 차고가 높아 길이에 비해 실내가 넓다.
실내는 최근 쉐보레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전기차의 감각을 입혔다. 운전자 눈앞에는 8인치 스마트 디지털 클러스터가 정보를 제공하고, 센터페시아 쪽 10.2인치 대형 터치스크린에서 각종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쉐보레 마이링크(MyLink)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는 애플 카플레이를 포함한 첨단 커넥티비티 시스템도 포함돼 있다.
놀라운 점은 스마트폰으로 제어하는 기능이다. 브랜드 최초로 제공되는 ‘마이 쉐보레(myChevrolet)’ 앱을 활용하면 배터리 충전상태 및 타이어 공기압 등 차량의 주요 기능을 확인하고 도어 잠금 및 해제, 에어컨 및 히터 작동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으며, 차량 주차 위치 파악도 가능하다.
대시보드를 비롯한 디자인은 괜찮지만, 실내 내장재는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플라스틱으로 마감한 A필러나 딱딱한 재질이 거슬리는 도어 트림이 특히 그렇다. BMW i3의 고급스러운 실내와 비교해보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내가 GM CEO라면 인테리어 담당자가 크게 혼났을 것이다.
대신 서브우퍼 및 파워앰프가 적용된 보스의 사운드 시스템은 괜찮다. 게다가 앞뒤에 4개의 USB 포트를 갖추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시승은 일산 킨텍스에서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까지 약 45㎞에 이르는 구간에서 진행됐다. 거리는 길지 않지만, 차를 파악하는 데에는 부족하지 않다.
볼트 EV는 강력한 발진과 추월가속이 특히 돋보였다. 내연기관과 달리 초반부터 최대토크가 발휘되는 전기차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데다, 아이오닉 일렉트릭(119.7마력, 88㎾)보다 훨씬 강력한 204마력(150㎾)의 출력은 스포츠카 부럽지 않은 수준이고, 스포츠 모드도 갖췄다. 싱글 모터 전동 드라이브 유닛의 최대토크는 36.7㎏‧m, 정지에서 시속 100㎞ 가속시간은 7초 수준이다. 가상의 배기음을 더한다면 페라리 같은 느낌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차의 특징 중 하나는 스티어링 휠 후면의 패들 스위치를 통해 운전자가 능동적으로 회생 에너지 생성을 제어할 수 있는 리젠 온 디맨드 시스템(Regen on Demand)이다. BMW i3의 경우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곧바로 회생에너지 시스템이 가동되는데, 이때 감속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게 된다. 그러나 볼트 EV는 리젠드 온 디맨드 시스템 덕에 감속 충격에서 해방될 수 있다. 또 전자식 기어 시프트를 ‘L’ 모드로 변경하면 BMW i3와 마찬가지로 가속 페달 하나로 가감속과 정차까지 가능해진다. 즉, BMW i3는 감속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반면에 볼트 EV는 일반적인 주행과 연비를 우선하는 주행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게 가장 큰 차이다.
서스펜션은 전체적으로 단단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다. 앞좌석은 적당히 안락하지만, 뒷좌석은 요철을 지날 때 다소 튀는 특성이 있다. 높은 차체를 커버하기 위해 출렁임을 자제하도록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차체가 높지만 무게 중심이 낮게 느껴지는 이유는 배터리 팩을 차체 바닥에 깔았기 때문이다. 이 배터리 팩은 차체 구조를 튼튼하게 해주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전기배터리 패키지는 LG전자가 공급하는 288개의 리튬-이온 배터리 셀을 3개씩 묶은 96개의 셀 그룹을 10개의 모듈로 구성했다.
“배터리를 교체할 경우에는 트렁크 쪽에 배터리가 있는 경쟁차보다 번거로울 것 같다”고 하자 GM 글로벌 전기구동 개발 담당 정영수 상무는 “좋은 질문”이라면서 “차체 아래쪽에서 배터리를 교환하도록 설계가 됐고, 차체 수명이 다할 때까지 배터리를 교체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국GM이 보증하는 배터리 및 전기차 전용 부품은 8년 또는 16만㎞까지다. 반면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배터리 평생 보증, 전기차 전용 부품 10년 또는 16만㎞ 보증을 내세운다. 현대차의 조건이 약간 유리한 편이다.
시승 코스의 반환점에서는 뒷좌석에 앉아봤다. 휠베이스는 2600㎜로 아이오닉 일렉트릭보다 100㎜나 짧지만, 실내공간은 오히려 더 넓게 느껴진다. 바닥에 깔린 배터리팩 덕에 바닥이 평평하고,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높은 전고 덕분이다. 여기에 압축형 씬 시트로 뒷좌석 레그룸을 넓힌 효과도 톡톡히 봤다.
트렁크는 하단 선반을 이용해 깊이를 조절할 수 있다. 앞뒤 길이는 준중형 세단보다 짧지만 바닥 쪽으로 깊이가 충분해 여행을 떠나기에 충분한 공간이 나온다.
퓨어 화이트, 스카이민트 블루, 메탈릭 그레이, 브릭 오렌지 총 4가지 외장 컬러로 출시되는 볼트EV는 프리미엄 천공 가죽시트와 HID 헤드램프, 자동주차 보조시스템, 스마트폰 무선 충전 기능 등 프리미엄 편의 사양을 기본으로 채택했다.
여기에 차선이탈 경고 및 차선유지 보조시스템, 저속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 전방 보행자 감지 및 제동 시스템, 스마트 하이빔 등의 예방 안전 시스템을 적용했으며, 타이어에 구멍이 생기면 내부 실링제가 자동으로 공기의 누출을 막는 미쉐린 셀프-실링 타이어를 채택했다. 이와 더불어 ABS, 급제동 시 브레이크 답력을 증가시키는 BAS, 언덕길 밀림 현상을 방지하는 HSA 기능까지 포함한 통합형 차체 자세 제어(ESC)를 기본으로 갖췄다.
쉐보레 볼트 EV의 가격은 세제 혜택 전 기준으로 세이프티 패키지 포함 4884만원이다. 반면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풀 옵션 가격이 4933만5000원이다. 미국에서 건너온 볼트 EV의 가격이 오히려 더 저렴하다. 정부 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을 합치면 200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고객 인도는 이달 하순부터다.
볼트 EV는 미국에서 ‘2017 모터트렌드 올해의 차’와 ‘2017 북미 올해의 차’를 석권하며 이미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현대차 아이오닉 운전자가 주행거리 100㎞를 넘기며 초초해할 때 볼트 EV 운전자는 느긋하게 더 운전할 수 있다. 혹시나 깜박하고 충전을 안 했더라도 하루 이틀은 더 탈 수도 있다. 이 모든 게 400㎞에 가까운 인증 주행거리 덕분이다.
다만 아이오닉은 배터리 용량이 작은 만큼 충전시간도 더 짧다. 아이오닉은 50㎾ 급속충전기로 30분이면 80% 충전이 되는데, 볼트 EV는 80㎾ 급속충전기로 1시간이 걸린다. 홈 충전기로는 아이오닉이 4시간25분, 볼트 EV는 9시간45분 만에 100% 충전된다.
볼트 EV를 시승한 많은 기자들은 입맛을 다셨지만 군침만 흘렸다. 올해 들어오는 물량이 2시간 만에 완판되어 당장은 구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GM 측에서는 전기차 수요가 이 정도일 거라고 상상을 못했다고 한다.
볼트 EV는 기존 내연기관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Yes’다. 지금 당장 구입은 어렵겠지만, 내년도 물량 계약이 시작되면 당장 전시장으로 달려가라. 머뭇거리면 또 다시 1년을 더 기다릴지도 모른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파워트레인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