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M9

문화예술
HOME > 문화예술 > ET-ENT오페라

[ET-ENT 오페라] 국립오페라단 ‘보리스 고두노프’ 감정 폭발을 억제하는 무소륵스키의 비범함과 사색적 연극 같은 진지함

발행일 : 2017-04-22 10:15:04

국립오페라단의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가 4월 20일부터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러시아를 지배했던 실존 인물 보리스 고두노프의 비극적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푸시킨 동명의 희곡을 기초로 작곡가 무소륵스키(M. Mussorgsky)가 유일하게 완성한 오페라이다.

대한민국 오페라 역사상 최초로 국내 프로덕션으로 만나는 러시아의 대작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보리스 고두노프’는 국내 아티스트들과 관객들에게 모두 익숙하지 않다는 점, 문학으로는 큰 공감을 주지만 무대 공연에서 러시아적 정서는 아직 우리에게 생소하다는 점에서 보면 우려되는 면도 있던 작품으로, 실제 본 공연에 대한 관객의 평도 나뉘고 있다.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그렇지만 김학민 예술감독 취임 후 시즌 레퍼토리 제도를 시행한 국립오페라단이 원래 잘하고 익숙하고 편안한 작품만 선택한다면, 새로운 오페라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 위해서는 외국 공연장으로 찾아가거나 외국 공연 실황을 영상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립오페라단은 ‘국립’이라는 타이틀을 단 우리나라 최고의 오페라단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가장 엄격한 잣대로 국립오페라단의 작품을 관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번 ‘보리스 고두노프’ 같이 국내 최초 프로덕션으로 만나는 작품과 신규 창작 작품의 경우 유연한 잣대로 긍정적인 면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우리가 오페라를 관람하는 이유는 숙제를 하고 시험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즐기며 느끼며 예술적 행복감을 만끽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만약 러시아에 가서 ‘보리스 고두노프’를 봤으면 내 마음에 안 드는 면이 있더라도 내가 러시아적 정서를 제대로 이해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 ‘보리스 고두노프’가 생애 첫 오페라 관람이라면?

‘보리스 고두노프’는 기존 오페라 마니아들과 신규 관객들에게 모두 어려운 작품이다. 오페라는 사고를 치는 테너와 소프라노를 바리톤이 조율하는 삼각구도로 이루어진 작품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테너와 소프라노의 고음, 바리톤의 장악력에 관객들은 절절한 감동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보리스 고두노프’는 베이스와 메조소프라노가 무척 중요한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최전성기의 베이스 6명과 메조소프라노 5명을 한 무대에서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지고 있다.

테너, 소프라노, 바리톤의 절절한 현장감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베이스와 메조소프라노의 장엄하면서도 숙연한 아리아는 환호를 할 수도 박수를 크게 치며 열광할 수도 없도록 만든다.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치 진지한 연극을 볼 때 아무 소리 내지 않고 그냥 몰두해야 하는 가장 잘 몰입할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받을 수도 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가득 메운 많은 사람들과 같이 공연을 보고 있지만, 관객 개인은 무대 전체와 자신의 소통으로만 공연을 느끼게 될 수 있다.

라이브인 무대 공연에서는 무대 위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같이 관람하는 관객들이 주고받는 에너지도 중요한데,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그런 면을 기대하다 보면 무대에 대한 집중력이 줄어들 수 있다. 나 혼자만을 위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관람하면 ‘보리스 고두노프’는 정말 내면을 흔드는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러시아적 정서를 오롯이 느끼게 만드는 웅장하면서도 압도적인 공간 연출법

국립오페라단 김학민 예술감독은 ‘보리스 고두노프’에 대해 러시아 오페라의 정수를 확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감성적인 면에서 아직 러시아적 정서를 느끼지 못한 관객일지라도, 엄청난 무대 장치를 보면 대륙의 스케일에 빠져들게 된다.

이번 ‘보리스 고두노프’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 연출법이 집대성됐다고 볼 수 있다. 관객석에서 바라본 무대 상단이 공연장 천정으로 활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더 윗부분 공간까지 무대로 사용하기도 해 높이에 대한 제한을 넘었다.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무대 천정에서 내려온 14개의 종 모양 구조물은 크기가 작지 않은데 높이의 변화에도 답답하기보다는 더욱 웅장하게 보이도록 만드는데 확장된 높이 공간이 큰 역할을 했다.

원형으로 회전하는 무대는 일방향 회전이 아닌 양방향 회전도 이뤄졌으며, 회전하는 무대 자체를 무대 뒤편으로 옮기기도 했고, 무대를 2층으로 나눠 색다른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러시아 문자로 만든 무대 벽면은 상징적 의미와 함께 마치 공간 이동해 러시아에 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웅장함은 보통 화려함과 연결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보리스 고두노프’는 마치 흑백 영화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러시아적 색채를 전달하면서 관객이 감동받아 흥분하게 만들기보다는 그 웅장함 속에 겸손해져 감정 폭발을 억제하고 사색에 잠기게 만든 작곡가 무소륵스키가 이번 공연을 봤으면 아마도 자신의 음악에 정말 잘 어울리는 무대 장치에 감동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최신포토뉴스

위방향 화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