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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연극열전 2017 ‘킬 미 나우’ 공연이 끝나기 전까지 울음을 참아야 한다

발행일 : 2017-05-07 18:09:48

연극열전의 2017 ‘킬 미 나우(Kill Me Now)’가 4월 25일부터 7월 16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 중이다. 작년 초연에 이어 1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관객들을 찾은 이 작품은 표현하기도 쉽지 않고 반응하기에도 어려운 주제들을 진지하면서도 친절하게 풀어낸다.

‘킬 미 나우’의 관객들은 느끼는 게 많아도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고, 표현하지 않고 지나치기에는 가슴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주체하지 못할 수 있는데, 작품을 제작한 연극열전 또한 대놓고 홍보를 할 수도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킬 미 나우’는 관객, 배우와 스태프, 제작사 모두 같은 정서를 공유하게 되는 작품이다.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 인터미션도 없는 공연, 커튼콜까지 마음 놓고 울 수도 없다. 아니, 마음 놓고 울어서는 안 된다.

‘킬 미 나우’는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체 장애를 가진 아들 조이 스터디(윤나무, 신성민 분)과 촉망받던 작가의 삶을 포기하고 아들을 위해 헌신하지만 자신에게 닥친 병을 알지 못했던 아빠 제이크 스터디(이석준, 이승준 분)뿐만 아니라, 두 사람을 웃게 만드는 고모 트와일라 스터디(이지현, 신은정 분), 제이크에게 삶의 위로와 안식을 주는 로빈 다토나(이진희, 정운선 분), 그리고 조이에게 평범하게 대하는 친구 라우디 에이커스(오정택, 문성일 분) 역시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특별하게 살길 바란다. 평범하지만 지겨운 일상이 아닌 뭔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삶을 모두 꿈꾼다. 그렇지만,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은 평범한 일상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손잡고 산책하는 것, 비싸지 않은 음식점에서도 마음껏 웃으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것, 일이 고되더라도 내가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 큰 돈이 들지 않고 큰 결심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의 평범한 행복이 ‘킬 미 나우’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부러운 판타지이다.

‘킬 미 나우’는 슬픈 이야기이다. ‘킬 미 나우’는 아픈 이야기이다. 그러나, 관객은 함부로 슬퍼하거나 아파해서는 안 된다. 진정 그들이 얼마나 슬프고 아픈지 더 이상 표현하지 않는 커튼콜까지 울음을 참아야 한다. 실제로 관객들 중에는 울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내 감정이 아무리 북받쳐오더라도 다른 사람의 슬픔과 아픔 앞에서 함부로 내 감정을 발산해 해소하거나 내가 앞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안 된다는 것을 ‘킬 미 나우’는 느끼게 만들어준다.

공연시간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우리가 이런 공감과 배려를 주변에 전달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세상을 같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된다. 130분이라는 짧지만은 않은 러닝타임 동안 ‘킬 미 나우’가 인터미션 없이 펼쳐진 것처럼, 우리도 우리 주변을 끝까지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가 더욱 정화될 수 있을 것이다.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 윤나무를 보면 마음이 아프고, 이승준을 보면 울음이 난다

윤나무는 작년에 이어 다시 조이 역을 맡았다. 실제의 조이 못지않게 무대 위의 조이 또한 쉽지 않다. 조이 역은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면서도 관객들이 알아듣고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대사 전달력을 유지해야 한다.

표정과 대사를 하면서도 전동 휠체어를 계속 운전해야 한다. 과하게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많이 생략해 쉽게 표현해서도 안 된다. 다른 작품에서도 조이와 비슷한 역할을 한 적이 있는 윤나무를 ‘킬 미 나우’ 무대에서 보면 조이를 보며 마음 아프기보다는 윤나무를 보며 마음 아프다는 생각까지 든다.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이승준은 제이크 역으로 올해 ‘킬 미 나우’에 새로 합류했는데, 이승준이라는 존재감을 발휘하지 않으면서 제이크 그 자체가 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들을 헌신적으로 챙겨야 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작가로도 다시 촉망받고 싶지만, 자신에게 병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승준은 슬픔과 아픔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이승준을 보고 있으면 절대 먼저 울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소리 내서 울지 못하는 슬픔은 아마도 나의 슬픔이 아닌 그의 슬픔이라고 생각된다.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 보고 싶어, 내 눈에는 자기밖에 안 보여

‘킬 미 나우’에서 고모 트와일라는 싫으면 싫단 말은 하는데 힘들 때 힘들다는 말은 못한다. 싫을 때 싫다는 말을 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많은 트와일라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그녀가 하는 희생에 대해 사람들은 관심이 없으며, 그녀가 힘들 때도 그녀를 위로하지 않는다.

현대를 사는 여자들 중에는 트와일라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싫은 거 싫다고 표현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은 세상의 트와일라들의 슬픔과 아픔, 고통과 희생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격려나 위로를 보내지도 않는다.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로빈은 제이크에게 “보고 싶어, 전화할 수 있을 때 전화해”라고 전화 음성 메시지를 남기며, 병이 심각해진 제이크를 보고 “내 눈에는 자기밖에 안 보여”라고 말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죽어간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붙어서 간병을 할 수도 위로도 제대로 해줄 수도 없다.

‘킬 미 나우’에서 로빈의 아픔은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비하면 감정의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로빈의 슬픔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작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의 슬픔과 아픔, 이 아픔은 어쩌면 병의 고통을 이겨야 하는 제이크의 아픔보다 작다고 말할 수만은 없을 수도 있다.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킬 미 나우’ 공연사진. 사진=연극열전 제공>

‘킬 미 나우’에서 라우디 역을 맡은 문성일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보여준다. 공감하면서도 슬픔에 깊게 빠져들어 증폭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문성일이 라우디가 아닌 제이크나 조이를 맡았으면 어땠을까? 또 다른 색깔의 멋진 제이크와 조이를 우리는 만날 수 있는 기쁨을 누림과 동시에, 문성일의 라우디를 그리워해야 하는 슬픔에 빠졌을 수도 있다.

평범한 일상이 주는 행복은 어쩌면 죽기 직전에나 그 가치를 깨닫게 될 수도 있다. ‘킬 미 나우’라고 조이가 외칠 때 ‘힐 미 나우’라고 들리는 것처럼, ‘킬 미 나우’는 평범한 일상의 향유가 얼만 행복한 것인지 눈물 나게 알려주며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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