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요한슨 연출의 뮤지컬 ‘햄릿’이 6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 관객을 찾았다. 2007 유니버설 초연에 이어 2008 극장용, 2009 씨어터 S, 2011 유니버설아트센터에 이어 이번에 디큐브아트센터에서 5월 19일에서 7월 23일까지 공연 중이다.
‘햄릿’은 다양한 장르로 제작돼 많은 배우들이 무대에 서기를 바라는 작품으로, 이번 뮤지컬 버전은 유럽 뮤지컬의 진수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작품 자체의 진지함에 록 스피릿을 장착해 뮤지컬 자체를 즐기는 관객들에게도 신선한 행복을 선사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 유럽 뮤지컬 스타일의 진수를 보여주다, 록의 역동성과 ‘햄릿’의 진지함이 만나다
‘햄릿’은 유럽 스타일 뮤지컬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군무를 출 때도 칼 군무를 추지 않고 각자 개성을 살린 안무를 펼치는데 조잡해 보이거나 어설퍼 보이기는커녕 정말 멋지게 보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배우와 무용수들이 안무를 틀리지 않게 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무대에서의 감성을 억제하지 않고 표출하기 때문인데, 유럽 뮤지컬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아마데우스’에서도 같은 스타일의 안무와 만날 수 있다.

뮤지컬 넘버를 록으로 부른다는 점도 시선을 잡는다. ‘햄릿’은 진지한 이야기로 노래로 표현되더라도 무거울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지만, 이번 버전의 넘버는 주로 록으로 이뤄져 뮤지컬적인, 무대공연 다운 역동성을 발휘했다.
제1부에서는 신나는 록 뮤지컬 위주로 진행되다가 인터미션 후 제2부에는 분노와 열정의 이야기로 펼쳐져 이완과 긴장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햄릿(이지훈, 신우, 서은광, 켄 분)의 어머니인 거투르트(전수미, 안유진 분) 또한 록 스타일의 넘버를 부르기도 한다는 점은 듣는 재미를 높인다.

오필리어(이정화, 최서연 분)은 다른 역과는 달리 샤랄라하고 포근한 스타일의 넘버를 부르는데, 오필리어에 대한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오필리어의 넘버는 ‘햄릿’의 결을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데, 헬레나(김유나 분)와 주고받는 넘버를 통해 자연스럽게 완충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 밖에서는 실제 천둥치며 비가 내리는 것처럼 느껴진 무대
‘햄릿’은 공연 시작 시 실제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음향효과를 만들었다. 7월 23일까지 공연은 지속되기 때문에 비 오는 날 관람한다면 관객들은 더욱 빠르게 무대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이 한 쪽으로 집중되지 않도록 해 다양한 인물의 정서를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무대 측면 2층은 마치 무대 위 발코니석 같은 느낌을 준 ‘햄릿’은 워낙 유명한 이야기로 고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설정을 통해 신들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파티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햄릿’ 초반부에서 뮤지컬 넘버와 안무는 뮤지컬적 밝음을 유지한다. 검은색과 빨간색의 이미지는 록 뮤지컬로 밝고 가벼워진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조명과 색감은 어두운 검은색 톤을 유지해 어두우면서도 진한 느낌을 주고, 의상 등의 빨간색은 열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피 흘린다는 상징처럼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햄릿의 광기, 햄릿을 능가하는 광기를 보여준 레어티스 역의 에녹
‘햄릿’은 두 개의 병행된 사랑 이야기가 포함된다. 거투르트와 클라우디우스(민영기, 김준현 분)의 사랑, 햄릿과 오필리어의 사랑이 전개된다. 햄릿의 광기와 분노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도 발산되지만 오필리어에 대한 사랑도 광기를 머금도 진행된다.
햄릿은 숙부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 유랑극단 내용을 재구성해 분노를 표출하는데, 분노의 타악리듬은 탭댄스로 이어진다. 탭댄스를 군무로 연습하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는데, 좀 더 많은 시간 분노의 탭댄스가 펼쳐졌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버지를 죽인 햄릿과 마지막 결투를 벌이는 레어티스(에녹, 김승대 분)는 ‘햄릿’에서 햄릿 이상의 광기를 발산하는데, 에녹은 억울함과 분노, 복수의 마음을 샤우팅 하는 뮤지컬 넘버로 표출했다.
고뇌에 쌓여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낭만적, 서정적 요소도 가진 햄릿과는 달리 레어티스는 진지하고 분노에 가득 차 있는데, 에녹의 움직임과 넘버를 보면 레어티스 역에 몰입해 분노를 표출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배우 내면의 분노를 레어티스에 투사하고 있다고 보이기도 한다.

역할을 하면서 광기가 생겼든 내재된 광기를 무대에서 승화했든 에녹의 분노는 극 마지막에 관객들을 ‘햄릿’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녹의 분노는 연기인가, 실제 분노인가 궁금해진다.
‘햄릿’에서 무덤지기는 죽음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희극적인 캐릭터로 손에 해골을 들고 1인 다역의 인형극을 보여주고 삽으로 기타 치는 흉내를 내기도 한다. “어차피 여기 있으면 다 똑같아”라는 무덤지기의 말은 셰익스피어의 철학으로 여겨진다.

커튼콜 때 무덤지기는 폴로니우스 역을 맡았던 이상준이 1인 2역을 했다는 것을 드러내자 관객들은 엄청난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햄릿’ 커튼콜은 그냥 인사도 아니고 그냥 넘버의 반복도 아닌 본 공연을 요약한 하이라이트식으로 진행돼 무척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