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연극] ‘모범생들’ 움직임에서 내면 심리까지, 감정선을 이어나가며 점층적으로 축적한다

㈜이다엔터테인먼트, ㈜쇼플레이 제작 연극 ‘모범생들’ 10주년 기념공연이 6월 4일부터 8월 27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공연 중이다. 김태형 연출, 지이선 작가가 만든 이 작품은 2007년 초연 이후 640회 이상의 공연을 통해 7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10주년 기념 공연에는 그간 ‘모범생들’을 거쳐간 스페셜 게스트와 새로 합류한 배우들을 만날 수 있기에 다양한 조합으로 각기 매력을 발산하는 무대와 만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모범생들’ 캐스팅 : 이호영, 김대종, 홍승진, 홍우진, 김슬기, 김대현. 사진=오픈리뷰 제공
‘모범생들’ 캐스팅 : 이호영, 김대종, 홍승진, 홍우진, 김슬기, 김대현. 사진=오픈리뷰 제공

◇ 따라하기의 라포르, 은근히 경쟁하는 마임 배틀

‘모범생들’은 공연 초반 마임처럼 이어진다. 성인이 된 김명준(이호영, 윤나무, 강기둥, 김도빈, 문태유 분)과 박수환(김슬기, 정승원, 김지휘, 안세호, 안창용 분)은 고교 동창 서민영(홍우진, 김대현, 문성일, 강영석, 조풍래, 정휘 분)의 결혼식장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나란히 만난다.

명준과 수환, 두 사람의 움직임은 마치 마임 배틀처럼 보인다. 다른 동작이 아닌 서로 같거나 비슷한 동작을 한다. 두 사람 사이의 상호신뢰관계를 뜻하는 심리학 용어인 라포르(rapport)가 동작의 측면에서 볼 때는 따라하며 공감을 만든 후 따라하게 만든다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모범생들’의 이런 움직임은 라포르를 연상한다.

뮤지컬 같은 움직임과 분위기 속에서 강한 비트의 리드미컬한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이런 모습은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서 그 사람을 따라하기도 하고 그런 관계 속에서 따라하는 대상이 변하는 ‘모범생들’의 내용도 라포르라는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뻔한 행동 패턴들처럼 보일 수도 있는 마임 배틀은 이후 이어지는 수많은 대화 속 내면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며 깐죽거리는 모습 속에서의 은근한 경쟁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발끈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극 중 상대방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순간 흥분하게 만든다는 점이 눈에 띈다.

조명과 시계 초침 소리는 반복이 주는 암시와 연상 작용을 하는데, ‘모범생들’에서의 반복은 밋밋하게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점층적으로 강해지는 작은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에 감정을 축적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모범생들’ 캐스팅 : 이호영, 김대종, 홍승진, 홍우진, 김슬기, 김대현. 사진=오픈리뷰 제공
‘모범생들’ 캐스팅 : 이호영, 김대종, 홍승진, 홍우진, 김슬기, 김대현. 사진=오픈리뷰 제공

◇ 감정선을 이어나가기, 무대에서 완전히 퇴장하지도 않고 무대가 완전히 암전하지도 않는다

‘모범생들’은 책상 4개와 의자 4개을 주로 사용해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음향 효과를 통해 책상은 세면대가 되기도 한다. 크게 변하지 않는 무대가 지루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극 중 장면의 연결과 디테일이 감정선을 끊지 않고 이어나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준과 수환은 무대에서 아예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입구까지만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서 넥타이와 옷을 교복으로 바꿔 성인에서 과거 학생일 때로 돌아가는 장면 전환의 디테일을 구사했다.

복장이 변화하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살짝 노출했는데, 완전히 퇴장하지도 완전히 암전 되지도 않은 채 복장의 변경을 관객들이 알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무대 위 이어지는 감정선을 아예 끊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모범생들’은 가볍게 즐기기에는 다소 무거운 소재의 이야기이다. 제3자의 입장이 되면 몰입하기보다는 판단하게 될 수 있는데, ‘모범생들’은 관객들의 마음이 잠시라도 무대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해 후반부 몰아치는 감정까지 이어지게 만든다는 점이 돋보인다.

‘모범생들’ 캐스팅 : 이호영, 김대종, 홍승진, 홍우진, 김슬기, 김대현. 사진=오픈리뷰 제공
‘모범생들’ 캐스팅 : 이호영, 김대종, 홍승진, 홍우진, 김슬기, 김대현. 사진=오픈리뷰 제공

◇ 경쟁 사회의 단면을 과장해 그렸으나, 전혀 과장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아이러니

‘모범생들’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특목고 3학년의 이야기이다. 학생들은 모두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데 반 전체가 한 명이 작성한 답을 그대로 답안지에 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경쟁 사회의 단면을 특목고 3학년 교실로 한정해 과장해 표현했으나, 전혀 과장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사회가 경쟁 사회이고, 과도한 경쟁이 이뤄진다는 것을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범생들인가? 비열생들인가? 모범생의 양면성을 보여준 ‘모범생들’은 때론 1인극의 모노드라마처럼 펼쳐질 때도 있다. 긴장감과 몰입감은 등장인물 사이에 갈등이 고조될 때도 생기지만, 모노드라마처럼 한 명만 연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점도 주목된다.

관계성 속에서 불편함을 다루고 있는 ‘모범생들’의 공연장은 관객석의 간격이 넓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의 영향으로 관객들 사이에 심리적 거리도 가까울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경쟁 사회에 밀집돼 모여 사는 우리들의 실생활과 묘하게 연결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모범생들’에는 4명의 남자 배우만 등장한다. 경쟁 사회라는 소재는 남자 관객들에게 호기심을 더 유발할 것 같지만, 잘생겼거나 연기력 좋은 남자 배우들의 영향인지 관객석은 대부분 여자 관객들로 채워졌다. 이 또한 경쟁 사회의 실제적인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