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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글로리아오페라단 ‘마농 레스코’ 푸치니의 우울함은 품격 있는 무대 속으로

발행일 : 2017-06-13 12:21:24

글로리아오페라단, 루까시립극장, 푸치니재단이 주최한 오페라 ‘마농 레스코(MANON LESCAUT)’가 6월 9일부터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됐다. 이 작품은 젊은 작곡가였던 자코모 푸치니(G. Puccini)에게 ‘천재 작곡가’라는 명성을 얻게 한 오페라로 알려져 있다.

글로리아오페라단 창단 26주년 기념으로 열린 이번 공연은 국내 최초로 푸치니 박물관에 소장된 친필 서류와 공연사진, 영상, 서적 등 다양한 유품들이 함께 전시됐고, 1893년 12월 21일 이탈리아 노라바코챠시립극장 공연 때 소프라노 체지라 페라니가 입었던 마농 레스코 공연 의상도 함께 전시돼 세기를 넘어선 오페라의 향기를 전달했다는 점도 주목됐다.

‘마농 레스코’ 공연사진.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마농 레스코’ 공연사진.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 한 폭의 회화를 보는 듯한 품격 있는 무대, 정적인 정서로 몰입하게 만든 시간

‘마농 레스코’는 밝고 경쾌한 서곡으로 시작했다. 밝은 느낌의 영화를 보게 될 것 같은 상상은 마치 초원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게 만들었는데, 실제 제1막이 시작된 무대는 나무 넝쿨을 상징하는 무대 소품과 나무 의자 등 자연에 친화적이거나 자연에 가깝다는 뉘앙스를 전달했다.

조명과 조화를 이룬 의상은 선명한 색감을 보여줬는데,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회화를 보는 듯한 품격이 느껴졌다. 공연 초반 무대는 동적이기보다는 정적으로 진행됐는데, 빛을 잘 표현한 유화나 색감이 좋은 수채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마농 레스코’ 공연사진.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마농 레스코’ 공연사진.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무대 뒤편 구름이 흘러가는 영상이 펼쳐질 때도 동적인 움직임이라기보다는 내면의 감정이 서서히 지나가는 듯하게 여겨졌다. 작곡가 푸치니의 정서는 역동적이라기보다 머물러 심취해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마농 레스코’의 무대는 작곡가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여자 캐릭터를 우울하게 만드는 푸치니, 감정이입하면 무언가 독특한 여운이 남는다

푸치니는 ‘마농 레스코’를 통해 ‘베르디를 계승할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라는 극찬을 얻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치니가 만든 이탈리아의 전통적 음률과 서정적인 리듬은 정말 아름답고 감미롭다.

‘마농 레스코’ 공연사진.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마농 레스코’ 공연사진.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무대와 스토리텔링에서 잠시 벗어나 눈을 감고 음악만 들으면 ‘마농 레스코’의 음악은 진짜 감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코 발데리의 지휘로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 메트오페라합창단, 윈드발레단이 함께 한 이번 공연 또한 푸치니의 서정성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면 푸치니의 작품들은 여자 캐릭터를 우울하게 만들고, 동양 여자들을 비하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농 레스코’ 공연사진.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마농 레스코’ 공연사진.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절세 미녀인 중국의 투란도트 공주는 무척 똑똑하고 도도한 것 같지만 결국 칼라프 왕자에게 굴욕을 당하고, 오페라 ‘나비 부인’에서 일본의 나비 부인은 미국으로 돌아간 해군 중위 핀커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무기력함을 보여준다.

오페라 ‘라 보엠’은 파리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여주인공 미미와 시인 로돌프가 만드는 정서는 카타르시스에 머물지 않고 우울함의 극한까지 몰아간다.

‘마농 레스코’ 무대인사.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마농 레스코’ 무대인사.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마농 레스코’에서 마농 레스코(소프라노 Daria Masiero, Maria Tomassi 분)는 가난한 귀족 청년 데 그뤼(테너 Dario Di Vietri, 이형석 분)에게 충실한 마음을 가지지도 않고, 사치와 향락을 위해 선택한 늙은 부호 제론트(베이스 이진수, 이준석 분) 또한 존중하지 않는다. 마농 레스코는 결국 두 남자에게 모두 배신감을 느끼게 만드는 캐릭터이다. 푸치니는 오페라에서 여자 캐릭터를 본받고 싶지 않고 우울하게 만드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글로리아오페라단의 ‘마농 레스코’에서 장미 넝쿨이 들어있는 구조물은 여자의 반부츠를 연상하게 만드는데, 아름다움과 허영을 동시에 표현하면서도 정적인 상태를 유지해 우울한 정서를 유지한 푸치니를 무대 위에서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농 레스코’ 무대인사.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마농 레스코’ 무대인사.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 상대방의 사랑을 받아야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인가? 나의 사랑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인가?

‘마농 레스코’는 사랑하면서 감내해야 하는 것, 선택하면서 감내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감각적으로만 즐기기에는 깊은 사색이 필요하다.

‘마농 레스코’는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가?”라는 부분에 대해 무척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상대방이 자신을 아직도 사랑하는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이 더 이상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가는 부차적인 사랑의 이유처럼 들리기도 한다.

‘마농 레스코’ 무대인사.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마농 레스코’ 무대인사. 사진=글로리아오페라단 제공>

‘마농 레스코’에서의 이런 비적극성 혹은 수동적 태도는 어쩌면 푸치니의 내면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무대에 커튼이 설치된 시간에 무대 왼쪽 커튼이 바람에 작게 흔들리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는데, 이 또한 푸치니의 내면일 수도 있다고 추측된다. 베르디나 모차르트였으면 광풍이 불어 커튼이 흔들렸을 것이고 흔들린 시간은 함축적으로 표현됐을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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