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일부터 7월 9일까지 대학로 여우별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기린의 뿔’에서 지적이면서도 강렬한 주인공 장옥정 역을 맡은 배우 강경헌은, 8월 5일 첫방송을 앞둔 OCN 토일드라마 ‘구해줘’에서 단아하면서도 냉철한 이지희가 돼 시청자들을 찾을 예정이다. 강경헌의 연기 인생은 이제부터가 더 기대된다.
이하 강경헌 배우와의 일문일답
◇ 처음처럼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강경헌! 그녀가 궁금하다!
- 강경헌 배우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좋은 배우, 좋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는 강경헌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나의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일들이 결국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어린 시절부터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두려움이 몰려와요. 똑바로 살아야 하는데...(웃음) 하지만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위안 삼아 스스로를 다독이죠. 지금은 너무나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좋은 배우는 아니었어도 괜찮은 배우였다,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도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경헌이란 배우가, 강경헌이란 사람이 곁에 있어서 괜찮았다.”
- 인간 강경헌과 연극배우 강경헌, 영화배우 강경헌, 드라마배우 강경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연극으로 처음 연기를 접했지만, 주로 드라마를 많이 하고 있고, 영화와 연극도 기회가 되는대로 하고 있어요. 전 어떤 장르가 더 좋다고 말 할 수는 없어요. 작업환경이 많이 다르고, 결과물도 많이 다르죠.
드라마는 장시간에(보통 16부에서 50부까지) 걸쳐 한 인물의 삶을 살아가며, 그때그때 나오는 대본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준비해서 카메라 앞에 서고, 극장에서 보는 것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집에서 보는 시청자들을 위해 좀 더 친절한 연기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봐요.
처음 드라마를 시작 할 때, 분노하는 장면에서는 인상을 쓰고 큰소리를 질러 달라는 등의 요구를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건, TV 드라마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이건 드라마라도 아침이냐, 저녁 일일이냐, 주말이냐, 미니냐, 종편이냐에 따라서도 요구하는 연기 패턴이 달라지죠.
또 배우 스스로 시청자들과 동시간대에 모니터를 하면서 연기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순발력이 많이 필요하고, 시청자들과 함께 만들어 간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물론 요즘은 사전제작이 많아져 조금은 다른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지만요).
- 영화나 연극에 대한 강배우님의 마음도 알려주세요.
드라마보다는 사전준비를 더 깊이 할 시간적 여유를 주고 감독님과 배우들 간에 좀 더 깊이 소통하고 고민하며 만들어 갈 수 있는 여유가 있잖아요. 또 관객들과 함께 극장에 앉아서 관람 할 수 있다는 묘한 즐거움이 있죠.
작은 떨림도 놓치지 않는 커다란 스크린과, 작은 숨소리까지 잡아내는 사운드, 2시간 동안 완벽하게 집중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극장에서 감상 할 수 있는 장르라 좀 더 섬세하고 디테일하면서도, 힘 있는 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극은 매일 같은 대본, 같은 대사를 끝없이 반복하고 끝없이 파헤치고 끝없이 뒤집어보며 연출자와 상대배우와 미친 듯이 토론하고 연구 하는 과정을 거쳐 약속을 정하고, 매번 무대 위에 올라, 매번 다른 컨디션으로 다른 분위기의 관객 앞에서 정해진 약속을 살아있게 하는 과정이죠. 육성으로 극장을 채워야 하고, 무대 위에 있는 동안 어떤 움직임도 배우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즐거움? 살 떨림이 있죠.
결국 전 이 세 가지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어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너무 슬플 것 입니다. 드라마, 영화, 연극을 모두 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 인간 강경헌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전 배우로서의 저와, 인간 강경헌의 삶이 많이 달라지지 않도록, 어디서나 제 모습 그대로 존재하도록 살기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평소 삶 속에서, 내가 배우라는 인식은 지워지지 않고 늘 존재하고 있지만, 일반 시청자들에게 연예인으로 비친다는 걸 자주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사실 일부러 잊으려고 하는 면도 있고요.
그렇지 않음 “누가 날 알아보지 않을까, 지금 내 모습이 어떻게 비추어질까?”라는 염려로 인간 강경헌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 순간들이 너무나 슬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 강경헌을 배우로 만든 설렘, 연극의 매력에 빠진 초등학생 때의 경험
-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은 언제부터 가지고 있으셨나요?
‘배우 강경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배우나 연기자라는 단어를 알기도 전부터, 전 이 일을 꿈꿔왔어요. 스타나 연예인을 동경해서 시작된 꿈이 아니라, 그저 내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끄집어내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본능으로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고 표현을 해야 할까요?
내 속의 무언가를 끄집어내 자유롭도록 두는 일이, 그 아이가 낯을 너무 많이 가려서 나왔다가도 스치듯 지나쳐버리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그 아이를 더 자주, 혹은 원할 때마다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할 수 있는지 더 많은 연구와 경험이 필요하겠죠.
연기라는 것이, 음악이나 무용, 미술 등의 다른 예술 활동과는 달리 혼자서 훈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상대배우와 호흡을 맞춰야 하고, 봐주는 관객이나 찍어줄 카메라가 있어야 완성이 되는 일인지라, 집에서, 혹은 연습실에서 혼자 거울보고 벽보고 하는 연습으로는 너무나 부족하거든요. 결국은 선택받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어려움이, 설렘이 있죠.
- 연극에 관심을 가지고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1987년)때 오태석 선생님이 이끄시는 극단 ‘목화’에서 했던 ‘부자유친’(서울연극제 대통령상 수상)이란 작품을 통해 연극을 접하게 됐어요. 정진각 선생님, 한명구 선생님을 비롯해 당시 막내였던 성지루 선배님까지(지루오빠는 아직도 절 잘 챙겨주시고 계셔서 무척 감사하구요..^^),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는 연습실에서 처음 “연극이란 것이 이런 것 이구나”라며 알 수 없는 떨림과 매력을 갖게 됐던 것 같아요.
그때의 그 기억이 아직 내 안에 살아있는 것 같아요. 연극무대에 서고자 하는 갈망이 계속해서 꿈틀거리고 있는걸 보면요. 그동안 연극 ‘여보, 고마워’, ‘밑바닥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등의 작품을 참여하면서, 그나마 내안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 할 수 있었지만, 아직은 무대가 많이 그립고, 많이 서지 못 하는 것이 아쉬워요.
◇ 연극 ‘기린의 뿔’, 바로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는 강경헌의 매력 속으로
- 연극 ‘기린의 뿔’에서 장옥정 역으로 출연하고 계십니다. 어떤 작품이고, 장옥정의 어떤 면을 부각해 표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무대에 서고 싶은 열정이 터질 것 같은 상황에서 이 작품을 만났어요. 작품이 꽤나 어려울 것이라고 대본을 보자마자 느꼈죠. 김태수 작가님 특유의 문체가 사실 배우를 어렵게 하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웃음).
오기가 생겨서 토시 하나 바꾸지 않고도 관객들에게 완벽하게 전달하고 싶었죠. 사실 장옥정, 장희빈이라면 얼마나 다르게 그 인물을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연기를 하는 배우도, 극장을 찾는 관객에게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저에게 더 급한 일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사극을 여러 편 경험 했음에도 불구하고, 김태수 작가님의 작품을, 그냥 읽어내기도 힘든 이 글들을 어떻게 살아있는 말로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컸어요.
- 장옥정은 이해하기도 연기하기도 쉽지만은 않은 인물이잖아요.
전 장옥정이란 인물을 그저 독하게 혹은 요부의 모습으로만 보이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장옥정이란 인물을 알아가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고, 소설을 읽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칠수록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되어선 안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하지만 장르의 특성상 제한된 시간 안에, 주어진 상황과 대사로만은 제가 보여주고 싶은 장옥정을 담아내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분명했죠.
그러다보니 좀 더 파워풀하고 역동적으로 표현해 주기를 바라는 요구와, 좀 더 섬세하게 느끼고 전달하고자 하는 저의 의도가 공존하도록 노력하는 과정이 가장 힘든 일이었어요. ‘기린의 뿔’에서 강경헌이 연기하려는 장옥정은, 미색뿐만 아니라, 지략적으로도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 ‘기린의 뿔’에서 훌륭한 배우들과 멋진 케미를 선보이신다고 대학로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KBS 선배인 정의갑 선배의 추천으로 이 작품을 하게 됐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멋진 배우가 되어 가는 모습에 많은 자극을 받았고,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었어요. 특히나 화술과 발성이 누구보다 뛰어난 의갑 선배가 부럽기도 하고 많이 배우기도 했어요.
숙종 역의 조춘호 후배는 웬만하면 열정에서는 뒤지지 않는 저보다도 더 열정적인 모습으로 절 자극했지요. 공식 연습시간이 시작하기 전부터 나와서, 연습이 끝나고도 몇 시간씩 더 연습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경쟁하듯 했던 것 같아요(웃음).
또, 움직임의 대가로 알려진 이영일 연출님을 만나서 감정에 따른 움직임의 포인트와, 템포에 대한 감을 좀 더 디테일하게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함께하는 배우 한 명 한 명이 모두 능력자들이라 함께 만들어 가는 시간들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이런 시간들이 쌓이고 지나가면서 공연을 올리고, 공연이 끝나고 관객 분들이 흡족해 하며 눈에서 하트를 만들어 날려주시는 모습을 보면, 오랜 과정 속에서 힘들었던 모든 순간들이 기쁨의 순간으로 남게 되는 것 같아요.
◇ 지나간 시절 나를 만든 시간들, 앞으로 나를 만들 시간들
- 고등학교 때 쎈(scene)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곳이고, 쎈을 거쳐 간 배우들은 누가 있는지?
YWCA에 속한 쎈은 고등학생들이 모인 연합서클이에요. 고등학교 시절 학교공연(정의여고) 준비 중에, 도와주시러 오셨던 선생님의 추천으로 들어갔던 쎈은, 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처음 경험 할 수 있는 곳이라 그랬는지 정말 행복한 시간들이었어요.
학기 중에는 주로 주말에 모였고, 방학동안에는 거의 매일 만나서 하루 종일 즉흥극만 했던 적도 있었어요. 쎈은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고요, 쎈 출신 배우로는 김영민, 장혁진, 서주성, 지일주 배우 등이 있습니다.
- OCN 토일드라마 ‘구해줘’에 출연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드라마이고,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 원작만화와 비교하면 어떤 재미를 줄 수 있는 드라마인지, 강배우님의 어떤 면을 봐야 할지 미리 살짝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드라마 특성상 많은 이야기를 하기가 아직 조심스럽습니다. 좋은 작품이니 꼭 본방 사수해 시청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구해줘’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배우 강경헌의 꿈, 관객/시청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에는 배우로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제 삶의 전체가 불행하게 될 것 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제 스스로가 강경헌이란 사람을 배우가 아닌 다른 면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배우라는 직업 외에도, 다른 면에서도 얼마든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 존재자체로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 아니, 존재자체로 충분한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야 결국 내가 행복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돼요. 그래서 우습게도 저의 가장 큰 꿈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꿈이에요. 꿈은 너무 거창하고 전 너무나 게으르고...
제가 배우로서 누군가의 인생을 진실하게 살아낼 때, 관객들과 깊이 있게 소통하고, 그들과 함께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을 때, 아니 그냥 스쳐 지나가는 시간 중에 미소 한번 짖게 해 줄 수 있을 때, 제가 꿈꾸는 배우로서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가지로 많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사랑의 눈으로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