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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대학살의 신’ 유치찬란한 설전은 마치 우리들의 이야기 같다

발행일 : 2017-06-28 14:29:40

싸움 구경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는 과정을 통해 위선과 가식으로 뒤범벅된 인간의 민낯을 까발리는 연극 ‘대학살의 신’이 6월 24일부터 7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대학살의 신’의 부제는 ‘매너 있는 두 부부의, 매너 없는 썰전!’이다. 부제에 포함된 ‘매너’라는 단어가 첫 번째로 쓰였을 때는 ‘(보이는) 매너’이고, 두 번째로 쓰였을 때는 ‘(더 깊은 내면의) 매너’라고 해석하면 더욱 와 닿는 공연이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은 제목만 보면 엄청 험악할 것 같은 공연이지만, 실제 관람하면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뮤지컬 배우’에서 ‘뮤지컬’을 뺐을 때도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준 남경주와 최정원,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송일국, 다른 세 명의 배우와 ‘대학살의 신’을 모두 빛나게 만든 이지하가 펼치는 고품격 코미디는 연극이란 장르의 즐거움을 오롯이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 ‘대학살의 신’의 분위기와 뉘앙스를 만든 디테일의 섬세함

‘대학살의 신’은 공연 시작 전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공연장에 먼저 들린다. 소음, 떠드는 소리를 음향 효과로 사용했다는 점이 인상적인데, 공연 전 과도한 침묵으로 인한 긴장감을 줄이고 공연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공연을 마지막 장면까지 관람한 후, 공연 시작 전 음향 효과를 떠올리면 이 작품이 일관된 흐름으로 진행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첫 장면에서 남경주, 이지하, 송일국은 모두 다리를 꼬고 앉았는데, 최정원은 가지런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다리를 펴고 꼬는 것은 그 당시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와 연결해 생각할 수 있는데, 대사가 무척 중요한 연극인 ‘대학살의 신’에서 이런 디테일한 움직임은 대사를 더욱 찰지게 만든다는 점이 주목된다.

◇ 가해자의 부모는 피해자의 부모 앞에서 피해자가 된다. 한동안 피해자였던 어른들은 어느 순간 다시 가해자가 된다.

‘대학살의 신’에서 11살의 두 소년 브뤼노와 페르디낭은 놀이터에서 싸우게 되는데, 브뤼노는 페르디앙에게 맞아 이빨 두 개가 부러진다. 가해자인 페르디앙의 부모 알렝(남경주 분)과 아네뜨(최정원 분)은 피해자 브뤼노의 부모 미셸(송일국 분), 베로니끄(이지하 분)을 만나 그들의 언어폭력 앞에서 피해자가 된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한 번 바뀌기 시작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극 중 여러 차례 작은 반전을 가져오는데, 칭찬하는 듯하면서 비꼬는 이야기들에 관객들은 큰 호응을 보였다. 실제로 우리가 대화를 할 때 진심으로 대하기보다는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시간과 경험이 꽤 있기 때문에 관객들이 크게 공감한 것으로 생각된다.

각자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하면서 꼬리를 무는 주제의 변화에 따라 편이 바뀌는 아이디어도 신선하다. 인과관계의 모순이 불편하기보다는 무척 재미있게 여겨져 웃음 뒤 여운을 남긴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 2층 계단이 설치된 무대 장치, 한 각도로만 자리 잡지 않은 구조물들

‘대학살의 신’ 무대에는 2층 계단이 설치된 구조물이 있다. 그런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하부에 송일국이 잠시 앉기는 했지만, 계단으로서의 기능을 특별히 발휘하고 있지는 않는다.

어딘가 오르거나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공간에서, 바뀌는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들을 반복하는 네 명의 등장인물들이 각각 바라보는 곳이 어딜까 생각하면, 한 각도로만 자리 잡지 않은 구조물들의 다양성이 연관돼 생각된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에서 네 배우의 술 취한 연기는 정말 일품이다. 작품 자체와 다른 배우들의 대사를 모두 찰지게 살린 이지하의 술 취한 연기가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을 때, 최정원은 카타르시스를 진하게 남기며 관객들의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는 술 취한 연기를 보여준다.

‘대학살의 신’에서의 유치찬란한 설전은 마치 우리들의 일상을 보는 것 같이 생각된다. 교양과 매너가 넘치는 것 같지만 내면에는 치사하고 쪼잔한 면이 자리 잡고 있는 우리들의 민낯을 대신 보고 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노래 부르지 않는 최정원, 연기로만 승부하는 남경주, 점점 자신의 캐릭터를 부각하는 송일국이 출연한다는 화제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대학살의 신’은 웃고 즐기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연극이다. 실제로 연극을 보면 그 모든 조율은 이지하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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