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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발레] 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 2017 대한민국발레축제 참가작

발행일 : 2017-06-30 12:34:54

국립발레단 제170회 정기공연 ‘스파르타쿠스(SPARTACUS)’가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됐다. 2017 대한민국발레축제 참가작이기도 한 이번 작품은 음악 아람 하차투리안, 안무 유리 그리가로비치, 무대와 의상 사이몬 바르살라즈, 조명 미하일 서칼로프가 함께 했다.

◇ 조명이 먼저 만든 분위기, 부드러움과 유연성이 강조된 안무

‘스파르타쿠스’의 막이 오르면 조명이 먼저 공연의 분위기를 만든 후, 중간 막이 오르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좌우측 상단과 무대 정면의 조명은, 첫 군무에서 무용수들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를 2개 혹은 3개를 만들면서 입체적으로 시작했다. 차별화된 그림자와 함께 움직이는 모습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층보다는, 2층 혹은 3층에서 더욱 역동적으로 보였다.

제1막의 안무는 부드러움과 유연성이 강조된 동작이 많았는데, ‘스파르타쿠스’라는 공연의 특성상 절도 있는 동작, 칼 군무의 안무였으면 더욱 멋있는 안무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스파르타쿠스’.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스파르타쿠스’.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공연 초반 남자 무용수의 독무는 힘과 절도를 표현한 안무였는데, 배경음악은 안무 스타일과 일치되지 않게 느껴졌다. 만약 안무와 음악을 직선적으로 매치했다면 관람하기에 더욱 편했을 것이다. 독무가 끝난 후 관객석에서 전체적으로 박수와 환호가 나오지 않고, 특정 코드를 공감하는 일부 관객만 박수를 쳤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특정 발레 작품에서 안무가 가진 의미를 별도로 배우지 않은 순수한 관객의 경우 일반적이지 않은 안무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기존 안무 버전이 있더라도 관객의 감성 코드에 맞춰 재안무가 이뤄졌다면 ‘스파르타쿠스’의 순간순간을 모두 몰입해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 조명과 섞여버린 의상, 무용수들의 동작은 디테일이 아닌 뉘앙스로만 전달되다

‘스파르타쿠스’는 특히 제1막에서 무대 바닥에 주황색 내지는 노란색의 조명을 전체적으로 비췄는데, 무용수들의 의상색, 살색과 비슷해 어둠 속에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무용수와 주변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비슷한 톤을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근접한 색감은 동작의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무대의 뉘앙스만 전달하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국립발레단의 수준 있는 무용수들의 동작을 디테일까지 느끼려면 공부하듯이 일부러 집중해야 했는데, 이는 확인은 할지라도 감동은 줄어들게 만들었다.

‘스파르타쿠스’.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스파르타쿠스’.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저런 멋진 안무를 펼치고 중간 마무리를 했으면 큰 호응이 관객석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관객의 입장에서 전달되는 감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연은 관객들을 멋쩍게 만들기도 했다.

제1막이 끝난 후 인터미션 전에 관객들은 국립발레단의 작품다운 큰 환호를 보냈는데, ‘스파르타쿠스’의 전체적인 연출에서 관객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주요 안무마다 이런 호응이 일어났을 것이고, 관객들은 더욱 행복해졌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무척 아쉬움이 남는다. 같은 동작도 멋진 디테일로 표현하는 국립발레단의 매력은 이번 공연에서 대부분 관객석까지 전달되지는 않았다.

◇ 비슷하지만 각자 개성을 살린 의상, 잠식당한 개성의 표현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국립발레단 제170회 정기공연 ‘스파르타쿠스(SPARTACUS)’에서 조명을 단순하게 사용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세련된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용수들의 의상이 각자 개성을 가진다는 것은 칼 군무를 추지 않더라도 각자 무용수들의 감성과 개성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조명에 잠식당한 의상은 각 무용수들의 개성과 동작의 디테일 또한 잠식했다.

‘스파르타쿠스’.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스파르타쿠스’.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그렇게 되니, 군무는 매우 어수선해 보였는데, 이럴 경우 안무가 정박자의 칼 군무였을 경우 관객의 호응을 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용수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최고 수준인 국립발레단의 작품이, 명확한 콘셉트와 조율 없이 진행돼 관객들에게 행복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시간을 현저하게 줄였다는 점은 무척 아쉽다.

국립발레단은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데는 무척 신경 썼지만, 예술의 상대이자 공연의 일부인 관객들에 대한 배려, 관객들의 정서와 감정선에 대한 배려는 매우 부족했다는 것이 ‘스파르타쿠스’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발레단과 수준 높은 관객들이 함께 한 시간이 최고의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 감정선을 끊는 무대 전환, 이어지는 공연이 아닌 갈라 콘서트 같은 느낌의 연출

발레는 무용수들의 손과 발을 길고 크게 사용해 어떤 장르의 무용보다도 아름답고 화려하며 또한 바라보는 관객의 내면의 감정 또한 길게 이어가도록 만들 수 있는 장르이다.

‘스파르타쿠스’.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스파르타쿠스’.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그래서 일반적인 발레 공연의 경우 독무와 커플무, 군무를 마친 후 관객들의 환호를 공유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아닌 경우 춤이 끊기기보다는 이어져서 관객들의 감정선 또한 끝까지 이어지게 만든다. 무용수들이 안무를 하지 않고 관객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시간은, 감정선을 끊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축적된 감정을 발산하며 더 키우는 시간이다.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는 커플무나 군무에 이어지는 독무의 경우 무대 중간막이 내려오면서 공간을 단절한다. 물론 다음 군무를 위해 무용수들이 중간막 뒤에 대기하기 위한 목적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런 목적은 다른 방법의 등퇴장으로도 충분히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굳이 감정선을 끊어가며 단절된 느낌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 관객들이 박수를 치는 것을 잘라버리며 자신의 연주만 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발레 또는 오페라가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공연과 다른 점은 관객들이 감동받아 흥분해 박수 치고 환호한다면 관객들에게 충분히 그 시간을 선사하면서 무대에 있는 아티스트는 그 시간에 고마움의 인사를 관객들에게 한다는 것이다.

‘스파르타쿠스’.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스파르타쿠스’.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그런데, 이번 ‘스파르타쿠스’ 지휘자는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있더라고 바로 다음 연주를 시작해 관객과 성악가 모두의 마음을 훼손했다. 커플무를 멋지게 소화한 무용수들은 관객들에게 인사할 시간조차 가지지 못했다. 곡 자체를 그렇게 지휘하고 연주하기로 사전에 연습했더라도 그렇게 실행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데, 만약 사전에 그런 상황을 설정했더라면 노골적으로 관객들의 마음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스파르타쿠스’는 전체적인 조율 없이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스태프들이 각자 맡은 파트만 열심히 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각각을 보면 모두 훌륭하겠지만, 관객들이 흥분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어느 정도 감동을 받으려는 순간, 다음 연주를 감행해 관객의 감동을 끊는 독특한 설정은 인상적으로까지 느껴졌다.

관객의 감정이입 차단이 절대 불가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을 때 제작진은 관객들이 몰입해 감정이입하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배려를 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혹시 ‘스파르타쿠스’가 지탄의 대상이었다는 깊은 뜻이 있어서, 관객이 몰입하지 않도록 주의 깊게 배려했던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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