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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인터뷰] 명창 허애선! 제18회 공주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 명창부문 대상 수상자

발행일 : 2017-07-25 15:33:05

한 사람이 북을 치고 한 사람이 소리를 한다. 소소한 우리 주변의 애달픈 이야기로부터 청춘남녀간의 절절한 사랑, 배꼽을 쥐게 하는 해학과 바다를 가르고 산을 울리는 영웅들 이야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서민들의 난장에서, 양반들의 사랑방에서, 지금은 거대한 극장의 무대에서... 북잽이와 소리꾼의 단출한 무대에서 대규모 오케스트라, 현란한 조명과 무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소리는 그렇게 장소와 무대를 바꿔가며 시간에 따라서 풍성해졌다.

그러나 역시 싸움의 백미는 황야에서 펼쳐지는 1:1 대결 아닌가? 판소리 명창대회는 어쩌면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와의 처절한 1:1 싸움이다. 모든 판소리 명창들과 소리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오늘은 제18회 공주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중견 소리꾼 허애선 명창을 만났다.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이하 허애선 명창과의 일문일답

◇ 제18회 공주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 명창부문 대상 허애선

- 안녕하세요? 축하드립니다. 날씨도 무더운데 수고하셨습니다. 이번 제18회 공주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에서 부르신 곡이 무엇인가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하나도 안 더웠어요(웃음). 예선은 제비뽑기 방식으로 노래 곡목이 정해지는데 저는 ‘심청가’ 행선전야 대목을 뽑았고 본선에서는 ‘춘향가’의 십장가를 불렀어요.

- 박동진 판소리 대회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올해가 18회 째 행사이고요. 박동진 선생님은 한국에서 최초로 완창무대를 하신 분이에요. 판소리 다섯바탕뿐만 아니라 ‘예수전’ 등 창작 판소리 공연도 하신, 실험정신이 투철한 분이시죠. 이번에 공주에 내려가면서 운전기사분이 얘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선생님 그냥 타세요.”라고 말씀을 드려도 꼭 버스요금을 내셨대요. 그 분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공주로 내려가신 후 며칠 있다 돌아가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돌아가신지 벌써 14년이 되셨네요.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 늦게 시작한 판소리, 허애선 명창이 그 매력에 빠진 이유는?

- 고향이 진도시죠? 굉장히 늦게 판소리를 시작하셨던데요.

네, 고 2학년 2학기 때 일거에요. 늦었죠. 당시에도 초등학교, 아니 그전부터 시작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른바 꼬마 명창들. 무슨 배짱으로 시작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엄마를 따라가서 처음에 민요를 배웠는데, 그 가락이 머릿속을 빙빙 떠나지를 않는 거예요. 옛날 시골엔 부엌에서 불을 땠잖아요? 부지깽이로 토닥토닥 재미있었어요. 이게 내 길이다. 그런 게 있었어요.

- 그런데 늦게 배우면 여러모로 불리했을 터인데요.

네, 중앙대학교 한국음악과에 지원했는데, 나중에 심사위원이셨던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세련된 소리가 아니고 촌스러운 소리. 촌스러웠죠, 당연히. 유일하게 그런 원시적인 소리를 하는 게 저였데요. 늦게 배운 결점이 장점으로 보인 거죠. 그래서 저는 지금도 소리를 진솔하게 하려고 노력해요.

- 상당히 중요한 말이네요. 예술이란 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치유하는데 의미가 있는 건데, 그래도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뭐가 제일 힘들었나요?

음감. 절대 음감은 타고 나는 거라고 하는데 저도 많이 늦었잖아요? 제 동료들, 꼬마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친구들, 너무 잘하는 거예요. 거기에 비해 아, 나는 너무 부족하구나. 그래도 그 친구들하고 같이 있는 게 즐거웠고, 그래서 연습하고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 국립창극단에 들어간 허애선 명창, 판소리와 창극의 의미는?

- 대학시절에는 어땠나요? 졸업하고 국립창극단에 들어가셨죠?

네, 대학교 때 정말 여러 가지 했어요. 연극, 창극, 민요동아리 등. 이때 경험이 창극단 생활에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대학졸업하고 인천에서 강습활동도 하고 그러다가 창극단 오디션을 보고 들어갔어요.

- 창극단에서도 춘향 역, 심청 역 등 주요 배역을 많이 하셨죠?

네, 창극에서 심청, 춘향, 홍보 처, 창극 ‘산불’의 사월이, 실험창극 ‘리틀맘 수정’의 수정 역 등 다양한 역할을 했어요. 창극은 소리뿐 아니라 연기적 요소가 중요한데 굉장히 흥미로웠고 특히 훌륭하신 국내외 연출자들과 함께 작업하며 느낀 게 많았어요. 연기는 물론이고 연습자세, 연기 외적인 부분 등등 느낀 게 많았죠.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 창극하고 전통 판소리하고는 다른 점이 있는데, 선생님의 앞으로의 소리 방향과도 관련 있나요?

네. 저는 앞으로 완창 무대를 많이 가지려 해요. 좀 더 소리에 집중해서 다섯바탕 완창과 창작 무대, 소극장 무대도 자주 하려 합니다. 인천 장애인 공연단과 함께 공연한 적이 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제가 소리를 하니까 저는 소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이번 10월에는 국립극장에서 ‘심청가’ 완창 발표회를 합니다. 2014년에 ‘춘향가’ 완창에 이은 두 번째 완창 무대입니다.

- 어느 선생님을 사사하셨나요? 가장 닮고 싶은 롤 모델은 어떤 분이신가요?

성우향 선생님이십니다. 제 판소리 첫 스승님이신 돌아가신 성우향 선생님을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어요. 선생님은 생활 자체가 소리에요. 그 뒤로 안숙선 선생님, 신영희 선생님, 윤진철 선생님께 배우고 있는데요. 이분들 모두 설명이 필요 없는 당대 최고의 가객, 레전드이시잖아요. 무엇보다 개성도 각각 뚜렷하시고요. 저도 선생님들께 부지런히 배워서 완성된 소리, 저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소리를 하는 소리꾼이 되고 싶어요.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 허애선 명창의 꿈

- 사람마다 색깔이 있잖아요? 성문이라고 해서 목소리에도 각자 자기만의 특징이 있는데 선생님 소리의 특징이랄까, 앞으로 이런 소리를 하겠다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글쎄요. 어떤 분은 제 목소리가 맑고 섬세하다, 남도특유의 한과 정서, 감정표현을 잘한다고 하시는데 성우향 선생님도 제자들 합동 공연 때 애절한 부분은 저한테 맡기셨어요.

개인적으로는 맑고 단단한 통성과 정확한 대사전달,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면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소리를 하고 싶어요. 세계적 디바 아델의 노래를 들으면 반주가 없어도 노래가 정말 듣기 좋거든요. 조상현, 성우향 선생님을 비롯해서 여러 선생님들 소리도 그래요. 소리만 들어도 완벽해요. 저도 그런 소리를 하고 싶어요.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 1996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서 20여 년 동안 창극단 주요 배역을 연기했고 2009년도 남도민요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 이번에는 판소리로 대통령상을 받으셨는데, 수상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일단 숙제를 마친 기분, 홀가분하고요. 모든 발길을 인도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가족들, 선생님들, 응원해준 친구들, 국악 식구들 모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이번 주신 상은 소리공부에 더욱 매진하라는 격려라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가르쳐주신 선생님들, 가족들한테 미안한 점이 많아요. 사람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완성되어 간다고 하잖아요? 화가는 그림으로, 운동선수는 운동으로. 저는 소리꾼이니 소리로 저를 완성시키고 싶어요. 그러려면 더욱 열심히 해야죠. 미뤘던 학위도 시작하고 싶고, 우선 10월에 있을 완창 준비를 철저히 해야죠. 내년에는 ‘홍보가’ 완창, 매년 한 차례씩 완창무대를 가질 계획입니다. 고맙습니다.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명창 허애선. 사진=허애선 제공>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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