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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부산국제영화제(4) ‘호르몬의 역사’ 아버지의 폭력성을 잠재우고 싶은 것인가?

발행일 : 2017-09-30 18:51:19

박종현 감독의 ‘호르몬의 역사(The History of Hormone)’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2017 BIFF) 와이드 앵글 한국단편 경쟁 섹션에서 월드 프리미어(World Premiere)로 상영되는 단편 영화이다.

영화에서 여자가 되고 싶은 고등학생 기호(유경상 분)는 학교에서 학생주임인 아빠(박철민 분)의 눈을 피해 여성 호르몬제를 구하고, 오랜 계획을 실행한다. 성 소수자를 소재로 한 구태의연한 영화로 예상할 수 있지만, 단편 영화 다운 반전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호르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호르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아버지의 폭력적인 가학성을 잠재우고 싶은 욕망

기호가 여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단순히 성 정체성을 찾아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폭력성에서 벗어나고 싶고, 자신도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찾아낸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현상에 대한 영화로 예상할 수도 있지만, 인간 내면의 심리, 잠재적인 폭력성에 대한 저항의지가 심리학적으로 표현돼 무척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 초반의 폭력성을 너무 길게 끌고 가지 않은 것 또한 반전 후 감정을 쌓아가기 위한 훌륭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호르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호르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아빠에게 맞고도 가만히 있는 순종적인 엄마, 캐릭터를 대비하기 위함이긴 하지만 꼭 그렇게 표현했어야 하는가?

‘호르몬의 역사’에서의 갈등은 기호의 내적, 외적 갈등과 아빠와 엄마(차미경 분)의 갈등이 공존한다. 영화 전반부 아빠 캐릭터와 엄마 캐릭터를 극명하게 대비하기 위한 설정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꼭 그렇게 표현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실제로 가정 내 폭력은 엄마가 잘못해서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아빠의 폭력성이 알코올 섭취와 맞물려 일어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호르몬의 역사’에서 엄마를 당당하게 표현했어도 스토리텔링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르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호르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그런데 ‘호르몬의 역사’에서는 엄마가 잘못해서 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게 설정됐는데, 영화 제목이 주는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관심 분산을 막았어야 한다는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 가학적인 모습의 박철민, 유순한 모습으로 반전을 보여줄 때도 잘 어울리는 박철민

‘호르몬의 역사’에서 박철민은 초반에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후반부에 유경상의 노력과 마법에 의해 유순하고 부드러운 여성적인 모습으로 반전 매력을 보여준다.

‘호르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호르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흥미로운 점은 바뀌었다는 느낌도 물론 있지만, 둘 다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박철민은 주고 있다는 것이다. 박철민은 실사 영화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더빙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는데, 주어진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그 안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펼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호르몬의 역사’는 장편 영화로 확장해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단편 영화에 살을 붙여 늘린다고 장편 영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장편으로 스토리를 기획해야 가능한 것이 일반적인데, ‘호르몬의 역사’의 소재는 코믹한 재미와 의미 있는 메시지 전달을 동시에 할 수 있기 때문에 확장할 경우 지금보다 더 풍성한 이야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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