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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2) 사랑과 공격성은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

발행일 : 2017-10-17 10:13:28

10월 13일부터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옥상 밭 고추는 왜(Ethics Vs. Morals)’는 세종문화회관 주최, 서울시극단 주관, 장우재 작, 김광보 연출로 만들어진 창작극이다.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301호 남자 현태(이창훈 분)에서 201호 여자 현자(고수희 분)로 이야기의 시점이 옮겨졌다가 시위대의 시야로 옮겨진 후 다시 시점의 변화를 두면서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절대선도 없고 절대악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과 공격성은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느끼게 만드는 이 작품을 반복 관람할 경우 그 깊이를 더욱 진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절대선도 없고 절대악도 없다, 관객은 최소한 1명에게는 감정이입을 할 수도 있고 결국 아무에게도 감정이입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현태는 정의롭고 인간애 넘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과도하게 흥분해 일을 망치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자신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일에 깊숙이 관여하기 때문에 옳은 일을 하면서도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현태의 304호 여자 광자에 대한 투사는 현태의 행동에 대해 명분을 주기보다는 걸림돌을 현태에게 걸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중, 삼중의 복잡한 감정과 관계는 현태를 마냥 좋은 사람으로만 볼 수는 없도록 만든다. 투사는 열등감, 죄의식, 공격성 등 자신이 견디기 힘든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림으로써 부정해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기제를 뜻한다.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현태의 눈에는 고추를 뽑는 것은 살인이다. 사람의 뿌리를 흔드는 것은 살인이라고 말하는 현태는 자신 내면의 분노를 현자에게 투사한 것이다. 이런 모습은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폭발하는 대상을 찾아서, 그 대상의 잘못을 빌미로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하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현태의 엄마 재란(백지원 분)이 “왜 니가 답답한 것을 세상에 풀어?”라고 현태를 나무라며 한 말은 일정부분 맞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연극 초반에 이기적인 절대악처럼 보였던 현자는, 현자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고수희의 연기력에 힘입어 이해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뀌게 된다.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결이 아니다. 실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현실에 깊숙이 들어간 훈훈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임과 동시에, 냉소주의적인 면, B급 정서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에서 작가와 연출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결이 아니기에 어떤 인물에게도 감정이입하지 못하는 관객들도 꽤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감정이입하지는 못하는 경우라도 최소한 1명 이상은 나를 불편하고 거북하게 만드는 인물로 느껴진다는 점은 주목된다.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내가 누군가에게 감정이입하지는 못하지만 실생활 속에서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지 않는 사람을 누군가에게 투사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인데, 작가와 감독은 누구의 편을 들기보다는 전부 다 까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똑같지는 않지만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Kingsman: The Secret Service)’, ‘킹스맨: 골든 서클(Kingsman: The Golden Circle)’의 정서와 묘하게 닮아 있다.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시점의 변화는 이 작품을 더욱 고차원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현태에서 현자로, 현자에서 시위대로, 다시 현태와 현자, 시위대로 시점의 변화, 입장의 변화가 이뤄지면서 ‘옥상 밭 고추는 왜’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고려하게 만든다. 현태와 시위대가 현자의 개를 훔치고, 현자는 자식을 잃은 것보다 더 큰 상실감과 절망감에 자존심을 버리고 개를 돌려달라고 현태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데, 현태를 지지하던 관객들은 순간 갈 곳을 잃어버린다.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진심 어린 사과가 정말 필요한가? 진심 어린 보상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현실에 살지 않고 환상을 좇는 현태의 모습은, 현태가 현자에게 사과하라고 하는 것의 색깔을 변질되도록 만드는 요소이다. 잃어버리는 것은 결핍, 상실을 의미하는데, 진심 어린 사과가 결핍과 상실을 채워줄 수 있을지, 진심 어린 보상이 이뤄져야 가능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어떡해야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말이 어떤 방법으로도 굴레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보면 섬뜩하게 여겨진다.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사랑과 공격성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사랑과 공격성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는 말을 실감 나게 만드는 작품이다. 약할수록 문제가 많을수록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고 공격성을 드러내게 되는데 현태와 현자 모두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둘 다 이런 모습이 있다.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내가 꿈꾸는 세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관계가 재정립될 수 있는데, 인정하지 않는 등장인물들, 인정하지 않는 관객들, 인정시키려고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제작진의 대립과 공존이 느껴진다. 제작진은 현태를 통해서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현자를 통해서도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그 말이 서로 모순되기도 하면서도 연결되기도 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남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자기 안의 부족함이 있기 때문인데, 현태와 현자의 이런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옥상 밭 고추는 왜’에서는 사랑과 공격성이 융합되는 모습을 찾기는 어려운데,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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