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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국립오페라단 ‘리골레토’(3) 김보혜, 김향은 “내게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나는 최선을 다한다”

발행일 : 2017-10-21 00:54:02

국립오페라단의 ‘리골레토(Rigoletto)’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0월 19일부터 22일까지 공연 중이다. 청부 살인이라는 험악한 소재, 여자 납치 및 강간,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이 의미는 많이 희석됐지만 척추 장애인(꼽추)에 대한 비하 등 막장 드라마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지만, 사회비판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며 인간 내면의 추악한 감정과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동시에 담고 있기에 어떤 오페라보다도 감동적인 작품이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몰입한 관객은 일반적으로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해 관람하는데 ‘리골레토’에서 감정이입이 가능한 인물은 리골레토(바리톤 데비드 체코니, 다비데 다미아니 분), 질다(소프라노 캐슬린 김, 제시카 누초 분), 만토바 공작(테너 정호윤, 신상근 분)일 것이고, 좀 더 범위를 넓힌다면 스파라푸칠레(베이스 김대영 분)와 막달레나(메조소프라노 양계화 분)일 것이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관객들은 당연히 주요 등장인물들에 초점을 맞춰 공연을 관람할 것인데, 이번 공연에서 질다의 유모 조반나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향은과 체프라노 백작부인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보혜의 연기를 보면 마치 “내게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나는 최선을 다한다.”라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소외됐으나 관심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소외된 채 존재감도 크게 발휘 못하는 사람도 있다

흔히 소외된 사람은 모두 잊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소외됐으나 관심받는 사람과 소외돼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실제 우리 주변에는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보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더 많을 수 있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에서 리골레토와 질다는 분명히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리골레토와 질다에게는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자신의 스토리가 있다. 반면에 조반나와 체프라노 백작부인은 특별한 스토리텔링도 없다. 이런 점은 우리 삶의 모습과도 묘하게 닮아있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와 질다는 소외됐다기보다는 차별과 무시를 당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설령 차별과 무시를 당하기는 하지만 주목받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권 안에 있지만,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리골레토’ 안에서도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김보혜와 김향은은 그런 역할을 맡아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정말 현실감 있는 행동을 보여준 메조소프라노 김향은

‘리골레토’에서 질다의 2층 방으로 찾아온 아버지 리골레토가 질다와 이야기를 나눌 때 조반나 역의 김향은은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에 서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손거울로 화장을 고치기도 하면서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조반나는 질다의 정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라고 볼 수는 없고, 질다와 리골레토가 2중창의 아리아를 부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김향은은 별 연기 없이 계단에 서 있었어도 큰 무리가 없었는데, 관객들의 주목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도 디테일한 연기를 통해 내면을 표현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저런 상황이라면 실제로 조반나는 담배라도 피우고 싶었을 것이고, 그리고 나서도 계속 기다리는 시간에 화장이라도 고치고 싶었을 것이다. 연기가 아닌 실제라면 그렇게 했을 행동을 관객들의 주목을 받지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표현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성악가가 아닌 연기자인 것처럼 몰입된 연기를 소화한 메조소프라노 김보혜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디테일한 연기를 소화한 김향은에 칭찬을 보내면서 드는 생각은 그래도 김향은은 관객들의 시선 근처에는 있었다는 것이다. 질다의 2층 방 건너편 건물 어둠 속 2층에는 체프라노 백작부인인 김보혜가 있었다. 신경 써서 바라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김보혜는 의자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는 가끔씩 반복하면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전화를 하기도 했다. 고개를 뒤로 젖히며 앉아 있기도 했는데, 마치 술병을 들고 술을 마시다가 잠시 잠든 사람처럼 움직였으며, 그러다가 잠깐 깨서 병째로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잠이 드는 연기를 펼쳤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중요한 점은 이런 디테일한 연기를 펼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 상황이었고, 게다가 이렇게 디테일한 연기를 펼쳐도 관객들은 반대편 2층에 김보혜가 있었다는 것조차 채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나 혼자 있겠다.” 또는 “다른 것에는 관심 없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김보혜의 움직임은 혼술의 시대, 혼밥의 시대, 혼자서 하는 게 이상하지 않고 그냥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시대의 모습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관객들의 스포트라이트를 전혀 받지 못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이런 연기를 펼쳤다는 것이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질다를 납치하러 온 갱스터들이 구조물을 타고 올라왔을 때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뒤로 젖힌 채 기대서 앉아있음으로써 체프라노 백작부인의 내면과 정서의 디테일을 김보혜가 따라갔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상대가 없이 하는 연기, 관객들조차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연기, 아리아를 부르며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을 때도 연기만 하는 연기를 인상적으로 소화한 김보혜를 보면 프로의식이 느껴진다.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골레토’에서는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쓰러져 잠들어 있는 연기를 실감 나게 펼치기도 했다. 오페라에서 주연이 빛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조단역 성악가의 가창력과 연기력, 연기자와 무용수의 몰입된 조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국립오페라단의 ‘리골레토’는 보여준다. 리뷰를 마치면서, 커튼콜 때 더 열렬히 박수를 쳤어야 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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