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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 대상관계이론 페어베언 모델로 바라본 마츠코의 일생

발행일 : 2017-11-01 10:10:49

10월 27일부터 내년 1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박혜나, 아이비 분)는 다양한 삶을 살면서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었지만 이들 사이에는 연관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마츠코는 누구보다도 사랑을 꿈꾸며 갈구했지만 철저하게 버림받고, 또 다른 사랑을 만나 올인하지만 다시 혼자가 되는 일을 반복한다. 중학교 국어선생님, 마사지 걸, 미용사, 살인자, 누군가의 딸이며 누나이고, 언니이며 애인이고 이웃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여자였던 마츠코를 대상관계이론 중 로날드 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의 분열성 양태(split position) 모델에 입각해 살펴보기로 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 대상관계이론이란?

오스트리아의 생리학자이자, 정신병리학자,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이론은 그의 사후 세 가지 갈래로 발전했다. 무의식을 대상으로 하는 심층심리학(depth psychology)과는 달리 인간의 생래적 자아를 대상으로 하는 자아심리학(ego psychology), 무의식의 힘이 본능이 아닌 사회/문화적 관계에서 만들어진다는 신프로이트(neo-Freudians) 이론, 그리고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이다.

대상관계이론은 현재의 인간관계가 과거에 형성된 인간관계에서 영향을 받아 반복된다는 이론으로 현재의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 해결책을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대상관계이론은 인간 주체를 독립된 개인이 아닌 대상(외부 대상 혹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존재한다는 이론으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지만 독립적인 자아로서는 의미를 찾지 못한 마츠코를 분석하고 이해하는데 적합하다.

대상관계이론 중에서도 페어베언이 제시한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적 대상 모델인 분열성 양태 모델은, 다른 사람에 의존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혐오하고 거부하는 마츠코를 살펴보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 페어베언이 제시한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적 대상

페어베언은 완전한 고유의 자아는 본래 고유의 대상인 다른 사람과 완전하고 문제없는 관계를 리비도적 연결로 형성하고 있다고 봤다. 이런 리비도적 애정이 깨지거나 손상받을 경우, 자아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아와 대상을 견딜 수 있는 부분과 견딜 수 없는 부분으로 나눈다.

견딜 수 있는 부분인 ‘이상적 대상’은 ‘중심 자아’라고 불리는 자아의 일부분과 연결된다. 견딜 수 있는 관계가 내면화된 것처럼 견딜 수 없는 관계도 내면화되는데, 중요한 점은 이때 견딜 수 없는 관계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는 것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강하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나의 부분인 ‘리비도적 자아’는 나를 애타고 감질나게 만드는 타인의 부분인 ‘흥분시키는 대상’과 연결되며, 그런 의존적인 나에 대한 혐오와 거부는 나의 부분인 ‘반리비도적 자아’가 돼 상대방을 ‘거부적 대상’으로 대하게 된다.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는 모두 나의 일부분으로 같은 사람을 뜻하고,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적 대상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사람의 다른 면을 뜻한다. 원래의 자아와 대상이 나눠진 것이기 때문에 같은 결국 같은 사람의 다른 면이라고 보면 된다.

대상관계이론에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온전한 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신체의 한 부분 혹은 한 측면과 관계를 맺는다는 ‘부분 관계(partial object)’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 또한 마츠코의 대인관계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한 마츠코, 사랑의 결핍은 그녀가 일생 동안 사랑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마츠코는 담임을 맡고 있던 학교에서 절도 사건이 발생해 교직에서 해고를 당한다. 이때 진실을 밝히지 못한 작은 선택 때문에 마츠코는 파란만장한 일생을 겪게 된다. 그런데, 대상관계이론 중 페어베언의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적 대상 모델에 입각해 보면, 마츠코가 그렇게 한 것은 실수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마츠코가 교직에서 해고당할 때 마츠코에 관계된 3명의 남자가 있었다. 실제 절도를 했을 수도 누명을 쓰고 있었을 수도 있는 학생 류(강정우, 강동호, 전성우 분), 마츠코와 교제하기를 바랐던 동료 교사, 그리고 마츠코에게 이전에 나쁜 행동을 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마츠코에게 해고의 징계를 내린 교사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마츠코는 이 세 명에게 모두 의존적인 태도를 취한다.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류, 자신과 교제하자고 말했던 동료 교사, 그리고 나쁜 행동을 했던 상관 교사에게 마츠코는 모두 사랑받고 싶어 했고, 그 어떤 사람에게도 버림받는 것이 두려웠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이는 신체적 장애를 가진 동생에게 빼앗겼던 아버지의 사랑을 다른 남자에게서 찾으려는 마츠코의 선택으로, 이런 선택은 뮤지컬이 끝날 때까지 대상을 바꿔가며 진행된다. 마츠코가 팜 파탈이 아닌 가련한 대상으로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적 대상의 관점에서 바라본 마츠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가 원했던 첫 번째 사랑은 아버지로부터 받는 사랑이었다. 고유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는 아픈 동생 쿠미만을 위했고, 그런 점이 견디기 힘들었던 마츠코는 아버지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리비도적 자아가 형성됨과 동시에 그런 자아에 스스로 싫어하며 언제든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거부하는 반리비도적 자아를 형성한 것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마츠코는 누군가의 딸이며 누나이고, 언니이며 애인이고 이웃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여자’이고 ‘존재의 가치를 자신이 아닌 남에게서 찾는 여자’라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했던 사랑을 평생 갈구하는 리비도적 자아가 무척 강한 인물이라는 것을 뜻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마츠코는 남자에게 “날 사랑하잖아”라는 말을 하며 흥분시키는 대상에게 강한 리비도적 자아를 드러낸다. 다시 만난 류에게 “날 버리지 않을 거지?”라고 반복해 묻는 것도 자신의 리비도적 자아에 대해 상대가 흥분시키는 대상이라는 것을 반복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런 확인은 마츠코의 반리비도적 자아가 리비도적 자아를 억압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이다.

마츠코는 “사랑 따윈, 남자 따윈 굿바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랑이 이래? 이건 사랑이 아냐.”라고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마츠코의 마음이 변해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갈구하는 그 시간에도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 반복되는 마츠코의 행동과 선택, 마츠코의 아픔을 치유할 만한 진정한 사랑은 없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는 사랑을 원하고, 누구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많이 준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사랑 때문에 가장 많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작가 지망생 야메가, 야메가의 친구 오카노, 동거했던 기둥서방 오노데라, 이발사 시마즈, 야쿠자가 돼 다시 만난 류 모두에게 마츠코는 처음에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 또 사랑받기를 원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그런데, 상대가 자신에게 마음이 약간이라도 떠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아낸 순간 오히려 마츠코가 상대방을 밀어내기 시작하거나 헤어질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었는데, 이는 단순히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반리비도적 자아가 더 커져 리비도적 자아를 억압하면서 상대방에게서 거부적 대상을 끌어냈던 것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마츠코는 모두 다른 상황에서 각각 다른 사랑을 했는데, 페어베언의 모델에 입각해 보면 일관적인 행동과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쇼(김찬호, 정원영, 정욱진 분)는 마츠코의 진짜 모습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고, 극 중에서도 명확하게 어떤 모습이 진짜라고 명시하지는 않는데, 페어베언 모델로 볼 경우 마츠코의 진짜 모습은 온전히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인 것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현재의 인간관계가 과거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받고 반복된다는 대상관계이론에 입각해 보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가 상처받고 있을 때 아버지가 마츠코를 찾아가 사랑으로 감싸줬으면 그때부터는 마츠코가 남자와 사랑을 할 때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지의 여부보다는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랑을 했을 수 있다.

마츠코가 만난 남자들은 마츠코를 속였거나 이용했거나 아니면 떠났는데, 진정한 사랑으로 마츠코를 감싸 안은 사람이 있었으면 마츠코는 혐오스러운 종말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아버지에 대한 결핍은 아버지로부터 충족할 수도 있지만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해주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충족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츠코가 온전한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할 수 있다.

어둠 속에 자신을 물들인 마츠코의 일생과는 달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암전이 없이 진행됐다. 마치 영화의 롱테이크처럼 이어진 연출은, 마츠코의 아픔과 슬픔에서 관객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가 동시에 형성된다는 점과도 뉘앙스적으로 연결되는 면이 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 대상관계이론으로 볼 때, 마츠코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쇼일 수 있다

이전 리뷰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쇼는 마츠코에 대해 의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추적하기도 하고, 때로는 관조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감정이입해 공감하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투사하기도 하는데, 이모가 자신의 그림자가 된다고 표현한 것에서 마츠코에 대한 쇼의 투사를 확인할 수 있다.

쇼는 극 마지막에 마츠코와 관련된 사람들이 마츠코에 대해 한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마츠코와 눈빛이 똑같기에 어쩌면 마츠코를 이해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메구미(이영미, 정다희 분)로부터 들은 쇼는 실제로 마츠코를 쫓아가며 그녀를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포용하기를 시작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연습사진.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대상관계이론으로 보면, 마츠코가 살아 있었을 때 쇼를 만났으면 쇼는 나이 어린 조카이기는 하지만, 마츠코를 이해하며 포용하고 감싸 안아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는 심리적 아버지가 돼 마츠코를 치유했을 수도 있다.

쇼에게 묻고 싶다. 마츠코가 죽기 전에 만났다면 어떻게 했을 것이냐고? 또 하나 쇼에게 묻고 싶다. 마츠코와 눈빛이 같다는 것은 같은 정서를 가졌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본인의 삶은 어떻게 선택하겠냐고?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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