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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국악] 서울돈화문국악당 ‘적로’ 시대의 아픔에 훌쩍거리게 되다

발행일 : 2017-11-03 13:37:32

2017 서울돈화문국악당 브랜드공연 ‘적로’(부제 : 이슬의 노래)가 11월 3일부터 24일까지 공연된다. 김정승 예술감독, 배삼식 극작, 최우정 작곡, 정영두 연출로 만들어진 음악극으로 일제강점기 전설적인 대금 명인 박종기, 김계선을 재조명하고 있다.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는 박종기 명인의 대를 잇는 그의 고손자 박명규(대금)를 비롯해 한림(아쟁), 김준수(타악), 이승훈(클라리넷), 황경은(건반)의 라이브 연주로 진행된다. 박종기와 기생 산월 역은 소리꾼과 가객(정가) 출신으로 최근 배우로 활발히 활약하고 있는 안이호와 하윤주가 맡았고, 김계선 역에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신예 정윤형이 노래와 연기를 소화한다.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 몰입된 진지함이 주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 안이호

‘적로’에서 실존 인물인 박종기(1879~1941)는 대금산조를 김계선(1891~1943)은 대금정악을 개척한 대금 명인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편집을 할 수 없는 무대 공연에서 명인인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영광스러우면서도 매우 부담될 것이다.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소리극, 음악극, 영화에서도 활약하는 안이호는 ‘수궁가’ 완창(2012)을 비롯해 많은 작품에 참여하면서 판소리로 상을 많이 받은 소리꾼이다. ‘적로’에서 안이호는 몰입된 진지함이 주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그의 진지함 속에는 웃음이 있었고, 그의 웃음 속에도 진지함이 있었다.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실제 박종기와 김계선은 두 살 차이였는데, 안이호는 김계선 역의 정윤형과 호흡을 맞출 때도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도록 콘셉트와 디테일을 펼쳤다는 점이 주목된다. 산조가 가진 질주하는 정서와 마음을 아우르는 포용력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연기를 안이호는 보여줬다.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안이호는 정윤형과 감칠맛 나는 대화와 노래를 통해 호흡을 맞췄는데, 씨름으로 전이돼 표현한 음악 배틀 연기에서 실제 같은 생생함을 보여줬다는 점도 주목된다. 슬로모션 같은 움직임도 있었지만 씨름 연기가 끝난 후 숨을 몰아쉴 정도로 연기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안이호가 소리뿐만 아니라 연기로도 대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안이호는 2일 전막 공연 프레스콜에서의 소감을 밝히면서 관객들이 눈 껌뻑이는 소리, 귀를 여닫는 소리, 훌쩍거리는 소리를 소중하게 여기며 무대를 채우겠다고 말했는데, 소리와 연기를 하면서도 관객들과 소통하고 에너지를 주고받는 모습은 그의 가능성에 더욱 확신을 갖도록 만들었다.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 움직임 자체에서 풍류와 해학이 묻어나는 정윤형

한양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젊은 소리꾼 정윤형은 두 살부터 국악 신동으로 불리며 두각을 나타내 각종 대회를 섭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윤형의 움직임 자체에서 풍류와 해학이 묻어났는데, 심오한 표정 연기를 하지 않을 때도 그런 분위기를 전달한다는 것은 아직도 국악 신동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정윤형은 판소리 실력 못지않게 과감하고 디테일 살아있는 연기를 보여줬는데, 판소리로도 기대가 되지만 창극에서 더욱 큰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윤형이 노래를 전혀 부르지 않는 연극 무대에서 한 번의 경험을 쌓는다면 창극과 음악극에서 관객들의 마음속으로 더욱 깊숙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학교 내 무대이든 아마추어 연극 무대이든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험을 한다면, 그의 노래에 대한 전달력을 크게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 맑은 소리의 살아있는 감성, 눈물 연기가 심금을 울린 하윤주

권주가로 만가를 부르는 기생 산월 역은 주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하윤주가 맡았다. ‘적로’에서 하윤주는 차분하게 앉아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추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맑은 목소리 속에 살아있는 감성을 전달했다.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안이호, 정윤형, 두 소리꾼 사이에서 정가를 부르면서도 다른 장르의 노래와 잘 어울리도록 조율했는데, 단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두 사람의 표정과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분위기를 맞췄다는 점은 하윤주의 절제된 연기에 호평을 보내게 된다.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에서 하윤주, 안이호, 정윤형은 모두 절제된 음악과 연기를 선보였는데, 절제하지 않고 노래하며 움직인다면 어떤 흥겨움과 감동을 선사할지 호기심과 기대가 생긴다.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적로’ 공연사진. 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김정승 예술감독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사람들이 혹시라도 가질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비루함, 억울함을 진혼하고 싶다며 ‘적로’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김정승은 최우정 작곡가, 정영두 연출가와 함께 프레스콜에 참석해 작품을 만든 도전 의식과 추진력을 표출하면서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유연성과 흡입력을 보여줬는데, 공연을 하면서 그리고 재공연이 이뤄지면서 ‘적로’가 서울돈화문국악당의 더욱 발전된 고정 레퍼토리 브랜드공연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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