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오페라] ‘사랑의 묘약’ 노래와 연기, 진지함과 코믹함의 완벽한 조화

세계4대오페라축제 주최, 한이연합오페라단 주관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이 11월 3일부터 4일까지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공연됐다. 벨칸토 오페라의 아름다운 선율과 이야기가 가진 재미를 노래와 연기, 진지함과 코믹함의 완벽한 조화로 무대에서 구현했다는 점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은 자주 공연되는 작품으로 이전에 이미 관람한 관객들도 많았을 것인데, 이번 공연은 여러 번 반복해 관람한 관객과 처음 접하는 관객 모두를 만족할 만큼 예술성과 즐거움을 모두 살렸다는 점이 주목된다. ‘사랑의 묘약’이 세계4대오페라축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됐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랑의 묘약’ 공연사진. 사진=세계4대오페라축제 제공
‘사랑의 묘약’ 공연사진. 사진=세계4대오페라축제 제공

◇ 듣기는 편해도 부르기는 어려운 벨칸토 오페라, 한국어 아리아까지 시도해 고도의 작품성 발휘

벨칸토 오페라는 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의 3대 작곡가 시대에 확립된 전형적 이탈리아 오페라 양식을 뜻하는데, 인간의 목소리가 무한한 가능성을 발휘하도록 선율과 음역, 기교가 초고도로 발휘됐다.

벨칸토 오페라는 관객석에서 듣기는 무척 아름답지만 무대에서 부르기는 매우 어려운 오페라인데, 이번 ‘사랑의 묘약’은 일부 장면에서 한국어 아리아와 한국어 대사까지 시도하며 관객 참여의 재미와 예술성을 모두 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카마라(베이스 박종선, 이세영) 역의 박종선은 깊이가 있는 목소리로 아리아를 진지하게 부르면서도 재미있는 동작을 통해 연기력을 발휘했는데, 일부 아리아와 대사를 한국어로 구사할 때도 이탈리아어로 표현하던 정서에서 점핑이 일어나지 않게 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이번 공연에서는 웃찾사의 인기 개그맨 정재형이 둘카마라의 조수로 출연했는데, 본인이 모든 웃음을 책임지려하지 않고, 성악가 박종선의 코믹한 연기가 살아날 수 있도록 멋지게 백업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낸다.

‘사랑의 묘약’ 공연사진. 사진=세계4대오페라축제 제공
‘사랑의 묘약’ 공연사진. 사진=세계4대오페라축제 제공

◇ 당당함이 주는 호기심 +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주는 힘

‘사랑의 묘약’에는 아디나(소프라노 정꽃님, 홍은지 분)의 아리아를 통해 이졸데와 트리스탄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등장인물과 관객들에게 교육 효과를 줌과 동시에 트리스탄이 사랑의 묘약을 마신 후 매정했던 이졸데가 트리스탄을 사랑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묘약’ 스토리텔링의 개연성을 추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내가 믿는 사람이 내게 믿음을 줬을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경험해 본 사람은 사랑의 묘약이 플라세보효과처럼 실제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표현된 ‘사랑의 묘약’을 보면서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디나는 자신을 모른척한 네모리노(테너 배은환, 정제윤 분)에게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진다. 이성에게 매력으로 어필하는 경우보다 궁금하게 만들어 어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19세기 이탈리아에서도 현재와 똑같았다는 것을 주목할 만하다.

술을 마신 네모리노는 허세작렬한 어설픈 바람둥이처럼 변신하는데, 이는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 인기 있는 캐릭터의 특징과도 일치한다. 심오한 심리전을 벨칸토 오페라에서도 같은 형태로 찾을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맑은 목소리로 아리아를 감미롭게 부른 배은환은 술 취한 연기를 할 때 과하지 않은 움직임 속에 실제 취한 것처럼 느껴지도록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제하면서도 몸으로 표현할 것을 다 표현한 배은환의 연기력을 볼 수 있었다. 벨꼬레(바리톤 석상근, 김민성 분), 쟌넷타(소프라노 황보라, 정선희 분) 역의 성악가들 역시 연기력이 뒷받침된 아리아 실력을 펼쳤다.

‘사랑의 묘약’ 공연사진. 사진=세계4대오페라축제 제공
‘사랑의 묘약’ 공연사진. 사진=세계4대오페라축제 제공

◇ 관객과 주고받은 공감의 디테일, 오페라 전용극장이 아닌 곳에서의 공연의 묘미를 찾다

이번 ‘사랑의 묘약’은 포도주(와인)가 아닌 소주를 사용해 관객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주병을 바닥을 팔꿈치로 치고, 손가락으로 소주병의 목을 치는 동작에서 시작한 디테일은 관객들의 웃음과 환호를 유발했는데, 자막의 소주 사진 또한 이런 재미를 높였다.

‘사랑의 묘약’은 마치 마당놀이의 한 장면처럼 사랑의 묘약을 들고 등장인물들이 관객석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있었는데, 감정선의 단절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던 시간 전후의 설정과 연결은, 관객 이벤트를 통해 참여하게 만들면서도 이야기가 끊기지 않게 했다는 점은 무척 의미 있게 여겨졌다.

무대 뒷면의 영상은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도 줬는데, 과하지 않은 영상은 편하게 무대를 바라볼 수도 있고 서정적으로 무대를 바라볼 수도 있게 만들었다.

커튼콜에서 마지막에 무대 인사를 한 한이연합오페라단 배원정 단장, 최영선 지휘자 등의 스태프들은 주요 등장인물들보다 훨씬 겸손하게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세계4대오페라축제와 한이연합오페라단의 과감하면서도 겸손함과 디테일이 무대에서 공연한 성악가들과 오페라를 멋지게 기억할 수 있도록 여운을 남겼다는 점은 이번 축제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