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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서울독립영화제(06)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누구든 무기력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발행일 : 2017-11-09 17:45:42

이광국 감독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2017, SIFF2017) 특별초청 부문의 장편 영화이다.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탈출한 겨울날, 여자 친구 현지(류현경 분)의 집에서 얹혀살던 경유(이진욱 분)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여자 친구에게 버림을 받는다.

탈출한 호랑이의 행방은 사람들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주고, 대리운전을 하게 된 경유는 소설가가 된 옛 애인 유정(고현정 분)을 만난다. 인간관계 속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지 못하고, 정면 돌파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 동물원에서 탈출한 호랑이가 뜻하는 것을 무엇일까?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서 동물원에서 탈출한 호랑이는 구체적인 두려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막연한 두려움의 존재이다. 호랑이를 조심하라는 인사를 사람들은 나눈다.

탈출한 호랑이를 만나면 죽은 듯이 있어야 한다는 영화 속 방송 멘트처럼, 탈출한 호랑이는 사람들을 비겁하게 만드는 막연한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재능도 없는데 미련하게 붙잡고 있었던 글쓰기를 그만둔 경유에게는 글쓰기가 호랑이였을 수도 있고 글쓰기를 그만두는 것이 호랑이일 수도 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 자신감이 없는 사람의 선택, 날카로운 잣대를 대기보다는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기를 바라며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서 경유는 현재 자신감이 없다. 현지에게도 자신이 없었고, 오랜만에 만난 유정에게도 자신이 없다. 친구 부정(서현우 분)에게도 자신의 상황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대리운전 손님의 호통에 아무 말도 못한다.

감독은 연출 의도에서 “문득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비겁한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는 걸 느꼈습니다.”라며 “앞으로 그런 순간들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대면하고픈 희망이 이 이야기의 출발이 되었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감독은 다른 사람에 대한 비난이 아닌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이런 말을 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데, 대상이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너무 날카로운 잣대로 평가하기보다는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영화를 보면서 하게 된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경유의 행동은 답답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왜 당당하지 못한지 꾸짖을 수도 있고, 현재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왜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지 비난할 수도 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실제로 경유는 그런 것을 몰라서 저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사람이 위축되면 자신감 있는 선택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경유에 비해서 유정은 당당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유정 또한 마음의 허전함을 누구 못지않게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실제 삶에서의 개연성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유정은 꿈에서 호랑이가 다가오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었다고 말했는데, 위급한 순간이 되면 적극적인 방어의지, 도전의식이 생길 수도 있지만 한없이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본 관객은 크게 공감할 것이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 회피했던 순간들에 대한 직면, 위로를 전하는 감독의 희망적 메시지

감독은 두렵거나 비겁해서 회피했던 순간들을 영화의 등장인물을 통해서 직면하게 만든다. 감당하기 힘들어서 회피했던 순간들을 직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감당하기 힘들더라도 직면하는 순간, 다른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호랑이가 가장 무서운 존재인 것 같지만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겨울손님이 있다는 점이 경유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은 흥미롭다. 감독이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로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이 힐링하기를 바란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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