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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서울독립영화제(09) ‘카운터스’ 전직 야쿠자가 혐오주의자들에게 날리는 카운터펀치

발행일 : 2017-11-11 13:27:39

이일하 감독의 ‘카운터스’는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2017, SIFF2017) 본선경쟁 부문의 장편 영화이다. 혐오에 대한 거부, 혐오에 대한 저항, 혐오에 대한 혐오, 폭력에 대한 거부, 폭력에 대한 저항, 폭력에 대한 폭력. ‘카운터스’는 영화 속 내용처럼 관점에 따라 극명하게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작품이다.

오늘만 살아가던 야쿠자 다카하시는 헤이트 스피치(혐오 데모)를 목격하고, 데모에서 차별과 혐오의 조장을 느낀다. 그는 야쿠자를 그만두고 혐오 데모를 저지하는 카운터스 편에 서게 된다.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볼 것인가? 한일 관계의 특수성에서 볼 것인가?

‘카운터스’는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과 그를 저지하는 세력의 이야기로 보편적인 시야로 볼 수도 있지만, 한국과 일본의 특수성이라는 입장을 배제하고 볼 수는 없기에 같은 관객이라도 객관적 시야와 주관적 시야를 오가며 관람하게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본의 시야 중 일부는, 혐오 데모는 일본에 대한 애국심의 발로이고, 카운터스는 역적 행위라고 여긴다. 또 다른 일부는, 차별과 혐오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행동한다.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에 대해 기본적으로 싫어하는 마음과 무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반대로 일본에 대해 동경하는 세력도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주된 정서와 반대 정서가 모두 존재한다.

‘카운터스’를 보면서 혐오주의자들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카운터스가 일본에 대한 반대세력이고 한국에 맹목적으로 우호적인 세력이라고 여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영화에서 보여주는 카운터스는 결론적으로 한국인을 위한 행동과 선택을 하고 있지만, 한국인을 위하기 위해 일본 시위대에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혐오주의자들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의를 찾기 위한 행동을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에서 일본 혐오 극렬 시위가 벌어진다면, 그들은 다시 한국에 와서 혐오 거부 카운터스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카운터스의 활동이 우리 입장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혐오주의자, 차별주의자들에 대항해 자신들의, 어쩌면 일본의 정의를 찾으려고 하는 선택과 노력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 전직 야쿠자의 변신, 강한 악의 반대는 착한 선이 아닌 강한 선이다?

영화를 보면 카운터스는 혐오주의자와 차별주의자에 대한 거부주의자이다. 강한 혐오와 강한 차별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발휘하는 것이다. 단순히 선과 악의 개념으로 바라볼 경우 카운터스의 선택과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고, 그런 오해는 카운터스 입장에서 볼 때 성향이 다른 또 다른 혐오주의자, 또 다른 차별주의자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일본의 극우주의자가 애국자이고 카운터스가 반애국주의자가 아니라, 카운터스가 진정한 일본의 애국주의자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혐오주의자가 사회의 메인이 된 일본보다 카운터스가 사회의 메인이 된 일본이 세계 속에서 훨씬 더 강력한 일본이 될 것이라는 예상에서 추측할 수 있다.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전직 야쿠자 다카하시가 카운터스가 됐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오늘의 폭력에 초점을 맞춰 살던 사람이, 내일의 정의를 위하여 오늘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카하시같이 영향력 있는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 혐오주의, 차별주의는 일본만의 문제인가?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혐오주의에 우리가 분노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과 외국 출신 귀화자들은 우리도 일본과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도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무시와 혐오가 매우 강한데, 이런 면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이다.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이를 바라보는 시야는 인간의 존엄성보다는 자국민의 이익과 자존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전 세계적인 현실이다. 다 같이 사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고 남 이야기하듯이 하면서도, 우리는 실제로 많은 경우 배타적으로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

‘카운터스’에서 카운터스의 활동을 보면서 일본의 혐오주의자, 차별주의자에게 대항해준다는 것을 좋아하는데 머물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 존중, 평등주의, 함께 사는 가치의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영화 속 주인공은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혐오를 없앤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카운터스가 다수가 아니기에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혐오에 저항해 없앨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생각되기는 한다. 그런데, 이런 폭력은 상대방에게 또 다른 명분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

‘카운터스’를 관람하면서 감정적으로 흥분할 수 있는데, 영화가 끝난 후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주의라는 기본적인 가치에서 되돌이켜 생각하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더 많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카운터스’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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