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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비명자들2’ 사건성 트라우마와 인간관계 트라우마에 직면하다

발행일 : 2017-11-27 07:33:52

광진문화재단, 극단 고래 주최, 이해성 작/연출의 ‘비명자들2’가 11월 22일부터 30일까지 나루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고통 속에서 이성을 상실한 채 비명만을 질러대는 사람들인 비명자들의 비명은, 반경 4킬로미터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만든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는 ‘비명자들’을 소재로 만든 3부작 연극 중 두 번째 이야기로, 총 3편 중 제2편이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음악 감독 박석주의 라이브 연주와 안무가 박이표의 감각적인 움직임을 통해 영화적 서사로 시작한 이야기는, ‘비명자들1’이 전편인 프리퀄의 역할을, ‘비명자들3’이 후편인 시퀄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이 작품의 시놉시스를 보면 사건 위주의 재난 영화처럼 생각되는데, 트라우마를 포함해 극한의 고통을 담고 있는 심리극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트라우마의 고통이 어떤지 직간접적으로 겪어본 관객은 공연 내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 작품이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 사건성 트라우마와 인간관계 트라우마를 관객들에게 직면시키다

‘비명자들2’는 사전 정보 없이 관람하기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작품이다. ‘비명자들1’보다 ‘비명자들2’가 먼저 무대에 올려져서인지, 시작부터 공포와 경악의 질주가 이어진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트라우마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특정한 사건에 의해 발생하는 ‘쇼크 트라우마(shock trauma), 사건 트라우마(incident trauma)’와 반복된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대인관계 트라우마(interpersonal trauma)’이다.

특정 사건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성 트라우마보다 사회 속에서의 지속적인 관계성에서의 대인관계 트라우마가 더 위험하고 해결하기 어렵다. 사건성 트라우마는 사건에서 빠져나오면 해결할 수 있지만, 대인관계에서 받은 상처는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다만, 사건성 트라우마의 경우에도 교통사고와 같이 개인적인 영역에서 생긴 사건성 트라우마는 상대적으로 쉽게 해결될 수 있지만, 국가적인 대형 재난의 경우 사건성 트라우마가 사건성 트라우마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인간관계 트라우마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매우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에 나오는 사례는 왕따와 폭력, 빈부격차로 인한 갈등 등 지속적인 인간관계에서 도출된 인간관계 트라우마와, 명칭을 연극에서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5.18 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와 같이 국가 차원의 사건성 트라우마가 인간관계 트라우마로까지 이어진 트라우마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연극은 두 가지 트라우마에 모두 직면해 있기 때문에 관객이 자신도 모르게 방어기제를 발휘하더라도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무대 위의 이야기가 깊숙이 들어올 수 있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을, 파사라는 미명하에 죽이는 잘못된 명분을 만들다

‘비명자들2’는 파사(破邪)라는 비명자들 퇴치 의식을 통해 삶을 중단시킨다. 생체 기능이 정상적인 사람들에 대한 살인이 파사라는 용어로 미화되는 것이다. 물론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이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겪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삶을 종결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을 진정으로 위한다는 명분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에서 비명을 지르는 행위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롭기 때문에 도와달라는 신호이다. 극심한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최선을 그들은 하고 있는 것이다. 트라우마 생존자들이나 자해 환자도 의식적으로든, 의식 밖에서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연극은 이런 모습을 담고 있다. 영상으로 표현된 각자의 내레이션에는 어떻게 이런 고통을 참으며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심한 고통이 표현돼 있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 실제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은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비명자들2’보다 실제가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

‘비명자들2’에서 비명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움직이지조차 못하는 동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결은 충격에 의해 움직이지조차 못하는 것이다. 복부에 칼로 수십 번 찔리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것은 첫 번째 칼이 들어가는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에 멈춰버리는 동결이 일어나는 것이고, 성폭행을 당하는 삶이 아무런 소리도 지르지 못한 것 또한 동결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고 또 다른 비난을 받을 수 있는데, 피해자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다는 점은 안타깝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극도의 두려움과 동결이 같이 왔을 때 겪게 되는 것이 트라우마이다. 트라우마를 극도의 두려움과 고통으로만 바라볼 경우 그들의 행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동결 반응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고 자책하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실제로 트라우마로 시력, 청력이 변할 수 있는데, ‘비명자들2’에서 비명자들이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이유, 파사팀장이 다른 사람들보다 비명을 잘 참고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연극적 설정이 아니라 실제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살아있는 것들은 고통에 적응하지 못 한다.”라는 극 중 표현은 비명에 대한 청각적 반응에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 마음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좀비처럼 표현한 것은 매우 아쉽다

‘비명자들2’에는 고통과 쾌락의 신경 전달 통로가 같다는 이야기, 아무런 욕망이나 희망이 없이도 밥을 먹게 되는 모습, 고통의 전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 정신적 외상체계 등 실제적인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장기간 비명자에 노출된 과학자 7명이 자살했다는 극 중 대화가 있는데, 극 중에서 과학자는 실제로는 상담가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파사팀장의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울리면 파사팀원들 또한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는데, 비명자에게 느끼는 연민, 파사 후 해독과정은 실제로 상담가들에게 노출된 위험과 흡사하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에서 생명의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에 초점을 맞춘 것은 긍정적이지만, 트라우마로 마음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 비명자들을 좀비처럼 표현한 것은 매우 아쉽다. 트라우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고, 트라우마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비명자들2’ 공연사진. 사진=광진문화재단 제공>

극에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안무 동작이 아닌 상황에서 24명이 동시에 무대에 올라 연기를 펼치는 장면도 있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는 고통을 보면서 찢어지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데, 연극에 실제 임하는 배우와 스태프들의 마음의 고통도 매우 클 것으로 생각된다. 감정이입해서 무대를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트라우마의 시대에 누구든 그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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