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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난쟁이들’(2) 물거품이 돼 사라진다는 것은 도날드 위니콧이 말한 멸절의 공포이다

발행일 : 2017-12-05 18:21:27

11월 26일부터 내년 1월 28일까지 대학로 TOM(티오엠) 1관에서 공연 중인 2017 어른이 뮤지컬 ‘난쟁이들’에서 본지가 두 번째로 적용할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은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멸절(annihilation)’ 및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이다.

멸절은 자기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과 같은 공포인데, 어린아이가 엄마와의 관계 정립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멸절의 공포가 어른에게 다가올 경우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공포의 두려움을 알면서 더욱 생생하게 겪는 공포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멸절을 겪었고 충분히 건강하게 치유돼 재통합되지 않았다면, 어른이 돼 겪는 멸절의 공포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멸절의 공포까지도 소환할 수도 있다.

‘난쟁이들’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난쟁이들’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 대상관계이론, 도날드 위니콧의 멸절, 참 자기와 거짓 자기

엄마의 뱃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다가 태어난 아이에게 자아라는 개념은 아직 없다. 태어나기 전에 엄마와 자기는 하나의 존재였다고 느끼며, 태어난 후에도 엄마로부터 극도의 보살핌을 받기 때문에 자기가 엄마와 분리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아이는 자기를 인식하기 전에 상대인 엄마를 먼저 인식한다. 자아 이전에 대상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 절대적 의존성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감을 느끼던 아이는,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순간 스스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공포, 자기의 존재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 같은 극한의 공포인 멸절을 경험하게 된다.

‘난쟁이들’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난쟁이들’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멸절을 느끼는 이유는 아직 독립된 자기가 되기 이전에 정서적, 육체적으로 한 몸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와의 육체적인 분리를 인지하게 된 상태에서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 자아가 없는 상태에서의 계속 보호받고 있지 않다고 느껴지는 분리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여겨지는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경우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들게 되는데, 여기서 참과 거짓은 도덕적인 질서의 옳고 그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 기질을 충실히 따르느냐를 뜻하는 것이다.

‘난쟁이들’ 유연(인어공주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난쟁이들’ 유연(인어공주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참 자기가 기질적으로 타고난 내 본 모습이라고 하면, 거짓 자기는 참 자기가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원래의 나의 모습을 감추고 세상과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뜻한다.

◇ 인어공주가 3일 내에 왕자의 키스를 받지 못하면 물거품이 돼 사라진다는 것은 극도로 두려운 멸절의 공포이다

‘난쟁이들’ 이전의 이야기에서 인어공주(유연, 백은혜 분)는 물거품이 돼 사라진다. 왕자를 진심으로 사랑해 목소리를 버리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는, 다른 사람을 신부로 맞이한 왕자를 황금빛 단검으로 찌를 경우 다시 인어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끝내 왕자를 보호한 채 물거품이 돼 사라진다.

‘난쟁이들’ 백은혜(인어공주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난쟁이들’ 백은혜(인어공주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3일 내에 왕자의 키스를 받지 못하면 물거품이 된다는 것은 자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말 그대로 멸절의 두려움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갑자기 멸절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멸절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데, 갑자기 닥친 공포보다 공포가 엄습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순간이 더 두려운 것이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어른들이 더 다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부딪히는 순간의 공포를 미리 인지하고 몸이 극도로 경직되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어린아이가 겪는 멸절의 고통보다 인어공주가 겪은 멸절의 고통이 훨씬 더 인어공주 자기에게는 강렬했을 수 있다.

‘난쟁이들’ 윤석현(찰리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난쟁이들’ 윤석현(찰리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은 인어공주의 참 자기라고 볼 수 있다. 왕자를 만나기 위해 인어 공주는 목소리를 버리고 다리를 얻는데, 환경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추기 위한 거짓 자기의 모습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인어공주가 왕자를 죽여서 다시 인어로 돌아갔다면 참 자기를 회복할 수도 있었는데 인어공주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왕자를 죽일 경우 완벽한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있던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럴 경우 자기도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왕자를 훼손할 수 없었던 인어공주는 결국 자기를 훼손하게 된 것이다.

‘난쟁이들’ 조형균(찰리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난쟁이들’ 조형균(찰리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난쟁이들’에는 이전 동화의 이야기들과는 달리 참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긍정적으로 담고 있는데, 반복된 인어공주의 노래 ‘이 게 나야’는 참 자기에 대한 자기 각성의 노래라고 볼 수 있다.

◇ 난쟁이 찰리에게 닥친 물거품이 될 위기, 멸절의 시간이 다가온다면?

‘난쟁이들’에서 “물거품이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라고 동화 나라 평범한 난쟁이 찰리(윤석현, 조형균, 신주협 분)가 인어공주에게 한 질문은 자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멸절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난쟁이들’ 신주협(찰리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난쟁이들’ 신주협(찰리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유아가 겪는 멸절은 엄마와 자신이 하나라는 생각에 안전감을 누리다가 자신이 엄마와 떨어진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자기에게는 하나도 남은 게 없다고 느끼는 것인데, 찰리가 겪을 멸절의 공포는 공주를 만나 결혼할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지는 공포와 함께 자기의 육체 자체도 물거품이 사라지는 공포이다.

‘난쟁이들’에서 사용된 표현이 “3일 내에 키스를 하지 못하면”이 아니라 “3일 내에 키스를 받지 못하면”이라는 것을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능동적 인간상과 수동적 인간상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대상관계이론에서 바라보면 대상과의 관계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난쟁이들’에서 대상관계이론으로 많은 것이 설명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난쟁이들’ 신의정(백설공주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난쟁이들’ 신의정(백설공주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 상처 주기 싫었던 백설공주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착하게 사는 거짓 자기를 선택한다

‘난쟁이들’에 따르면 백설공주(최유하, 신의정 분)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기 싫어서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착하게 살았다. 백설공주의 참 자기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선택하며 사는 모습인데, 그럴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줘 관계성이 훼손될 수 있다.

훼손된 관계성은 참 자기 또한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백설공주는 참 자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온 것이다. 참 자기로 살지 않고 남들이 원하는 대로 거짓 자기가 돼 살았어도 행복을 얻지 못한 백설공주는 빅을 다시 만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본 모습을 찾아간다.

‘난쟁이들’ 최유하(백설공주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난쟁이들’ 최유하(백설공주 역). 사진=오픈리뷰 제공>

거짓 자기는 도덕적 개념의 표현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환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기질대로 살지 못하고 세상과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빅을 만난 후 백설공주의 행동에 많은 관객들이 불편함보다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는, 일탈에 대한 대리만족일 수도 있지만 참 자기를 찾아가는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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