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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판’(2) 대상관계이론, 멜라니 클라인의 ‘투사적 동일시’로 바라본 감동의 이유

발행일 : 2017-12-13 00:33:27

2017 정동극장 창작ing 뮤지컬 ‘판’이 정동극장, CJ문화재단 주최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정동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대상관계이론 중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뮤지컬 속에서 전기수들의 낭독을 듣는 청중들이 왜 크게 감동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 대상관계이론, 멜라니 클라인의 투사적 동일시

투사(projection)는 자기가 스스로 견디기 힘든 내면의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것을 외부 세계에 있는 것으로 돌리려는 것을 뜻한다. 주로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 수치심 등이 투사된다.

타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을 때 그런 자기를 감당하기조차 힘든 경우, 타인이 자기에게 적개심을 품고 자기를 볼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투사의 한 예이다.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대상관계이론 학자인 멜라니 클라인이 말한 투사적 동일시는 내가 투사한 대상이 내가 마음을 투사한 상태로 머물지 않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도록 상대방을 조정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는 내가 적개심을 품고 있지만 타인이 자기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 투사라면,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의 투사가 진짜가 되도록 자기도 모른 채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적개심을 품도록 유도하는 것을 뜻한다.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 투사적 동일시의 종류 :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 힘 투사적 동일시, 성적 투사적 동일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

투사적 동일시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대표적인 네 가지 형태로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 힘 투사적 동일시, 성적 투사적 동일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가 있다.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는 의식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너 없이는 살 수가 없어”라는 마음을 상대에게 전가해 상대방이 나를 도와주도록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힘 투사적 동일시는 “너는 나 없이는 살 수가 없어”라는 메시지를 통해 상대방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하는 것이다.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를 불완전하다고 보며, 힘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방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성적 투사적 동일시는 나도 모르게 표현하는 유혹적인 행동을 통해 상대방을 완벽하게 성적으로 각성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성적 투사적 동일시를 당한 상대방은 자기도 모르게 투사적 동일시를 행한 사람을 유혹한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의 헌신과 공로를 상대방이 인지하게 해, 상대가 자기에게 빚진 마음으로 늘 미안해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많은 자기희생의 행동을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를 행할 가능성이 높다.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 ‘판’에서 전기수는 책을 단순히 낭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자기의 마음을 투사한다

조선 후기 시대에 직업적으로 책을 읽어주던 낭독가를 전기수라고 한다. ‘판’에서 전기수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단순히 대리로 읽어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는 것 자체가 공연이 되도록 감정이입해서 소설 속의 연기 또한 펼친다.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은 전기수가 낭독을 통해 이야기의 내용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낭독하는 자기의 마음을 투사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기수의 낭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크게 감동하는 것은 전기수가 단순히 투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강렬하게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춘섬(최은실 분)의 매설방(이야기방)에서 전기수의 낭독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도 청중으로 참여한다. 일종의 리딩공연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무대공연이 이뤄지기 전의 리딩공연이 아니라 소설을 읽어주는 리딩공연이기 때문에 현대적 개념과는 다른 면이 있다.

판소리는 북을 치는 고수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소리꾼(창자) 혼자서 대사와 내용을 모두 소화하는 극한의 예술이다. ‘판’에서 전기수의 역할을 보면 판소리의 소리꾼의 역할과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 ‘판’에서 달수와 호태는 서로 정반대인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와 힘 투사적 동일시를 동시에 교차해서 사용한다

‘판’에서 양반 출신의 달수(김지철 분)는 우연히 본 이덕(유주혜 분)을 따라가다가, 당시 자기보다 낮은 신분에 있던 호태(김지훈 분)의 금지된 이야기에 빠지게 되고, 호태에게 ‘낭독의 기술’을 전수받기를 원한다.

처음에 호태는 “너는 나 없이는 전기수가 될 수 없어”라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낭독의 기술을 가진 힘으로 양반집 도련님인 달수를 통제하려 한다. 호태가 달수에게 행한 힘 투사적 동일시에 대해 처음에 달수는 거부하지만, 낭독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낭독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계급의 차이를 넘어 서로 반말을 하기로 결정한 달수는 호태의 모범적인 문하생처럼 행동하고 호태가 자기를 보살피도록 만드는데 이는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판’의 후반부로 가면서 달수의 낭독 실력이 급등하고, 관가에 잡혀가면서 양반이라는 지위가 무언가 힘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달수는 호태에게 힘 투사적 동일시를 쓰고, 호태는 달수의 힘을 빌려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며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 전기수의 염정소설을 듣는 청중들은 성적 투사적 동일시에 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판’에서 남녀 간의 사랑, 즉 애정에 관한 염정소설을 전기수가 읽을 때 뮤지컬 속 청중들은 민망해하거나 거부감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처음부터 대놓고 원했던 것처럼 더욱 강렬하게 반응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호태와 달수를 비롯한 전기수는 염정소설을 읽을 때 말의 뉘앙스, 움직임의 디테일 등을 통해 청중들을 성적으로 확실하게 각성시킨 것이다. 일대일의 상황이 아닌 집단의 일원으로 있기 때문에 청중들이 집단으로 성적 투사적 동일시에 걸리는데 내적으로 저항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달수는 처음에 호태가 왜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은지 궁금해했는데, 전기수로서의 뛰어난 능력이 멋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호태로부터 성적 투사적 동일시에 걸린 청중들이 호태를 매력적으로 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 ‘판’에서의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판’에서 전기수들은 전기수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못지않게 자기들이 소설을 널리 퍼뜨려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데 얼마나 큰 헌신과 공로를 했는지 인정받기를 원한다. 전기수들이 모였을 때 자기들의 그런 마음을 서로 공유하면서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야기판을 벌일 때 얼마의 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힘 투사적 동일시의 측면에서 대입할 수도 있지만,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판’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전기수들은 그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손해를 보는 희생을 했는지를 어필함으로써 산받이(최영석 분)가 미안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이제는 제대로 돈을 주지 않으면 판을 벌리지 않겠다는 것은 힘을 사용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지속적인 희생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다.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가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행동의 의도를 상대방이 인지하게 될 경우 효과는 약해지는데,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을 조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의도 또한 감춰져 더욱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판’에서 힘, 의존, 성적 유혹, 환심사기 등을 등장인물들이 의도적으로 하기보다는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행했기 때문에 더욱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멜라니 클라인의 관점에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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