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소환, 추억정산 뮤지컬 ‘광화문 연가’가 12월 15일부터 2018년 1월 1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세종문화회관, CJ E&M 주최, CJ E&M, 서울시뮤지컬단 제작으로 이영훈 작사/작곡, 고선웅 작, 이지나 연출로 만들어졌다.
‘광화문 연가’는 초호화 라인업에 최고의 제작진, 초대형 극장 공연인데, 잘 만들었다는 느낌은 있지만 대작의 뮤지컬을 봤다는 뿌듯함은 크지 않다는 묘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기술적인 면도 중요하겠지만, 관객의 감정이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왜 몰입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지 알 수 있다.
◇ 주크박스 뮤지컬, 원곡의 정서에 완벽히 일치되지는 않는 이야기
‘광화문 연가’는 가수 이문세의 곡을 주로 작곡한 이영훈의 곡으로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Jukebox Musical)이다. 서곡은 경쾌하면서도 불안감을 자아내 양가감정을 느끼게 만들었고, 이런 이중적인 느낌은 공연 전체로 이어졌는데 고급스럽게 조화되기보다는 극 전체 정서의 색깔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하도록 만들었다.
첫 곡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은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소절을 나눠 불렀는데, 노래는 무척 잘 부르는데 영혼이 느껴지게 부르기보다는 예쁘게 들리는데 초점을 둔 것처럼 들렸다. 콘셉트를 의도적으로 그렇게 잡았을 수도 있지만, 이문세가 부를 때 내면의 정서와는 너무 동떨어져 주크박스 뮤지컬의 묘미가 효과적으로 나타나진 않았다.
시영(유미, 이하나 분)은 천방지축이고 씩씩하나, 소유욕이 강하고 다소 충동적인 캐릭터이다. 그렇지만, 다른 여자를 잊지 못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아픔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마음을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시영 역의 이하나는 넘버를 부를 때 그런 내적 감정을 담았는데, 이하나가 노래를 부를 때는 상황의 정서와 시영 캐릭터의 내적 정서, 원곡의 정서가 일치해 더욱 감동적이었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뮤지컬 넘버가 가진 절절함 대신 합창단의 노래 같은 절제된 부드러움을 선택한 것을 보면 공연의 콘셉트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공연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의 콘셉트와 초점은 무엇인지 잘 와닿지가 않는다. 정말 좋은 노래로 정말 잘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절절한 감동에 이르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 일관성 있게 끝까지 나아간 조명은 안무의 디테일과 통일성을 분산시켰다
‘광화문 연가’는 심플한 무대 장치가 인상적이었다. 흰색 의상이 준 깨끗한 이미지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집중력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안무는 라틴댄스의 스텝을 밟기도 하면서 경쾌함을 유지해 뮤지컬다운 즐거움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화려한 안무가 펼쳐질 때 분산된 조명은 무대를 어지럽게 만들고 안무의 디테일이 관객석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즐거움과 감동이 저하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광화문 연가’에서 조명의 콘셉트는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군무를 출 때의 통일된 매력을 분산시키며 얻으려 한 것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뮤지컬이 아닌 추상적인 무용 공연에서 따로 활약한 조명 같은 느낌은, 조명이 존재감을 발휘하기 위해 뛰어난 테크닉을 발휘했으나 ‘광화문 연가’의 정서를 해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촘촘하지 않은 이야기, 스토리텔링의 점핑으로 인한 감정의 점핑, 연결성 단절
“삶은 난제였으나 죽음은 축제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고선웅 특유의 날카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광화문 연가’는 월하(정성화, 차지연 분)를 등장시키면서 이야기가 이어지기보다는 툭툭 끊어지게 만들었다.
월하가 인위적으로 이야기를 점핑하게 만들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의 점핑으로 인한 감정의 점핑, 연결의 단절성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데, ‘광화문 연가’의 고선웅이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강철왕’의 고선웅과 같은 사람인지 의아할 정도이다.
◇ 관객은 어디에 감정이입해야 할 것인가? 명우와 수아가 주인공인지? 월하가 주인공인지?
‘광화문 연가’는 명우와 수아의 이야기 같지만, 전지전능한 월하가 너무 많이 개입돼 명우와 수아는 조연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명우, 수아의 경우 중년 명우(안재욱, 이건명, 이경준 분), 젊은 명우(허도영, 김성규, 박강현 분), 중년 수아(이연경, 임강희 분), 젊은 수아(홍은주, 린지 분)로 나눠지지만 월하는 계속 무대 위에 오르며 월하의 솔로곡이 너무 많아서 이야기의 초점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중곤도 중년 중곤(박성훈 분)과 젊은 중곤(김범준 분)으로 나눠진다.
다른 등장인물의 경우 뮤지컬 넘버는 그 시간 인물의 감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월하의 넘버는 그냥 노래 잘 부르는 정성화, 차지연의 개인기 같다고 생각된다. 솔로곡 분량이 많은 정성화와 차지연이 더욱 노래를 잘 부를수록, 명우와 수아의 캐릭터는 더 희미해지게 설정된 점은 안타까운 아이러니이다.
‘광화문 연가’에서 관객은 누구에게 감정이입해야 할 것인가? 정성화 혹은 차지연이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르기 때문에 월하에게 감정이입해야 하나? 이 작품이 화려함을 그냥 나열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관객이 누구에게 감정이입해 몰입해야 할지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주크박스 뮤지컬이 아니라 갈라콘서트에 스토리텔링을 구겨 넣은 느낌을 주는데, 풀 버전의 공연이 아니라 화려한 무대의 갈라콘에 스토리를 약간 넣은 느낌이다.
월하의 인위적인 개입은 감정선의 연결을 뚝뚝 끊는다. 월하의 노래는 어떤 정서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일까? 월하를 정성화와 차지연의 남녀 라인업으로 했다는 점은 무척 신선하나, 주인공 이상의 주인공으로 만든 점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 진지함이 아닌 진지함을 흉내 낸 느낌을 주는 시위 장면
‘광화문 연가’에서는 시위 장면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진지함이 아닌 진지함을 흉내 낸 느낌으로, 실제 관람할 경우 무언가 많이 생략되거나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변질됐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냥 가볍게 서정적으로 갔어도 좋았을 것이고, 역사의 아픔을 다루려면 희화화하지 말고 진지하게 담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희화화하지 않았다고 반박할 수도 있는데, 그럼 무엇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었고 무엇이 전달됐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 관객이 감정이입해 수아를 제대로 그리워할 수 없도록 만든다. 시영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관객 마음의 죄책감!
수아를 잊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라는 극중 언급이 나오긴 하지만, 명우는 수아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하면서 현재 시영의 존재는 무시한다. 죽음을 앞둔 순간 지나간 추억은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현재 자신을 위한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는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우의 캐릭터를 그렇게 설정했기 때문에, 관객은 극중 명우처럼 수아를 그리워만 할 수는 없다. ‘광화문 연가’에서 명우는 시영에게 별로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시영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관객 마음의 죄책감을 제작진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명우에게 남은 시간이 1분이라는 것은 그들의 1분이 인간사의 1분과 다르다고 말했다 치더라도 관객의 감정이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긍정적이지 않은 설정이다. 끊어지고 점핑하는 스토리텔링을 볼 때 1분 안에 이 모든 게 이뤄진다는 것은 억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공연 시간을 고려해 남은 시간이 2시간이라고 했으면 더 현실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광화문 연가’는 재공연을 할 경우 관객의 감정이입이라는 측면을 고려해 시나리오 콘셉트부터 재검토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만드는 안타까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씨제이이엔엠과 서울시뮤지컬단의 고차원적인 예술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필자의 편협한 시야 때문일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