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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1987’ 아직 현재 진행형인 트라우마, 시대의 아픔 속 개인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발행일 : 2017-12-20 11:53:06

장준환 감독의 ‘1987(1987:When the Day Comes)’은 1987년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턱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사망 발표와 시위 참여 중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사건은 6월 항쟁과 6·29 선언의 도화선이 됐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은 15세 관람가이다. 1987년 당시 15세에 인근이었고 현재는 15세가 잘 기억나지 않는 나이인 필자에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냥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가슴을 긁고 가는 듯한 아픔에 눈물을 흘리게 만든 작품이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3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때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영화를 찍으면서 몰입해 감정이입한 배우들이 겪었을 트라우마 또한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고문을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 고문을 받는 역할을 하는 사람 모두 촬영하면서 시대의 아픔을 직면했을 것인데, 고문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한 조반장을 소화한 박희순이 느꼈을 마음이, 아픈 시대가 아직 현실로 이어지는 우리의 현주소일 수 있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 시대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가면 아름답게 기억될 수도 있지만, 시대의 아픔 속 개인의 아픔은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약간 떨어져서 다소 객관적인 시야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보면, 시대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가면 아름답게 기억될 수도 있다. 그때 그 시절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기틀이 마련됐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도 있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러나, 개인으로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시대의 아픔 속에 개인의 아픔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고 결국 그 트라우마는 본인과 가족, 그리고 가족 같은 사람에게만 남을 수 있다. 사회는 책임지지 않고 결국 희생자의 몫으로만 남을 수 있는 것이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 박종철이 아닌 한병용에 집중된 고문 장면, 장준환 감독의 세심한 선택

‘1987’에는 고문 장면이 나오는데, 박종철(여진구 분)보다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분)의 고문 장면이 더 많이 더 자세하게 나온다. 교도관이지만 길거리에서 검문에 곧잘 걸리는 한병용을 관객에게 가깝게 가도록 만든 후, 실제 고문 장면은 한병용에게 집중함으로써 역사의 아픔을 역사적 사건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직접적인 충격을 완화하면서 결국을 충격을 더 세게 느끼게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종철로 직접 표현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충격을 완화해, 관객들로 하여금 방어기제를 줄이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으로 더 공감이 되도록 만들어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진하게 전달한 것이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 조반장에 대한 분노감, 결국 이것 또한 우리의 아픔

‘1987’에서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 떠안은 조반장은 왜 고문했는지 밝히려는 조사 과정에서 자신 또한 고문을 당한다. 조반장이 고문을 당할 때 처음에 당해도 싸다는 생각을 잠시 한 관객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함무라비 법전을 내민 것처럼, 똑같이 당해봐야 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역시 또 다른 폭력의 연속일 수 있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손으로 때려잡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머릿속을 빙빙 돌아요.”라고 영화에서 조반장은 말하는데, 그냥 다 같은 가해자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가해자인지 가해자의 대리인인지,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이 있는지 없는지를 나눠 생각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 사건성 트라우마와 대인관계 트라우마

트라우마는 크게 특정한 사건에 의해 발생하는 ‘쇼크 트라우마(shock trauma), 사건 트라우마(incident trauma)’와 반복된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대인관계 트라우마(interpersonal trauma)’가 있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자동차 사고, 비행기 사고같이 예기치 못한 특정 상황이 발생하면 사건성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는데, 그 상황을 극복해 빠져나오면 트라우마 또한 극복될 수 있다. 대인관계 트라우마는 반복되고 지속적인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트라우마로 관계성이 작용하기 때문에 더욱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이다. 왕따를 당했을 때 겪는 트라우마가 대인관계 트라우마이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의 트라우마는 발생 측면에서 볼 때 고문이라는 특정 상황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성 트라우마이다. 그런데, 사건에만 머물지 않고 지속적인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트라우마로 커져 결국 대인관계 트라우마가 된다. ‘1987’은 사건성 트라우마와 대인관계 트라우마가 엮어져 있기 때문에 강도와 아픔의 지속성 측면에서 더욱 힘들게 다가오는 것이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 배우들이 겪을 수 있는 트라우마, 피해자 역뿐만 아니라 가해자 역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를 비롯한 모든 예술작품에서 배우는 완벽하게 등장인물이 돼 몰입하고 감정이입하기를 은연중에 그리고 노골적으로 강요받을 수 있다. 물론 배우 자신도 연기를 위해 누구보다도 자신이 앞장서서 캐릭터를 구현하려고 한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렇지만, 영화가 끝난 후, 역할이 끝난 후, 등장인물과 하나 됐던 배우가 원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는 것은 온전히 배우의 몫이라고 당연히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를 함께 한 배우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유해진, 박희순, 강동원처럼 피해자 역할을 한 배우뿐만 아니라 김윤석(박처장 역)처럼 가해자 역할을 한 배우, 하정우(최검사 역), 김태리(연희 역), 이희준(윤기자 역)처럼 가까운 주변인의 역할을 한 배우들에게 모두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들의 연기에는 관심이 지대하지만 그들이 겪을 수 있는 트라우마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은, 실제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시야와 별로 다를 것이 없게 보이기도 한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윤석이 소화한 박처장은 “내 식구들이 죽어나가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 못했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어릴 적 겪었던 지옥에 대해 말한다.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견딜 수 없는 공포를 겪으면서 동결 반응을 보인 것인데, 만약 박처장의 동결이 어린 시절에 제대로 치유받을 수 있었다면 목적을 위해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로 크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 스틸사진.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은 개봉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 관객들이 각 개인의 정치적인 시야로 볼 경우 이 영화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상대를 이해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을 별개로 놓고 영화를 바라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1987년에서 30년이 지난 오늘, 사회와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라고 여기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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