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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안네 프랑크’ 극한의 공포가 일상화된 긴장 속, 비언어적 움직임으로 표현된 내면

발행일 : 2018-01-01 21:27:13

씨어터오 주최, 씨어터오컴퍼니, 극단 제자백가, 극단 배관공, 한국영상대학교 제작, 주혜자 연출의 ‘안네 프랑크’가 2017년 12월 20일(수)부터 2018년 1월 7일(일)까지 정동 세실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13살 소녀 안네가 은신처에 숨어 살며 2년 뒤 나치에게 발각돼 끌려가기 전까지 쓴 ‘안네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이번 작품은, 대사를 없앤 비언어극으로 제작돼 인물들이 그 당시에 말도 못하고 숨죽인 채 느꼈던 공포의 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안네 프랑크’ 공연사진. 사진=세실극장, 씨어터오 제공 <‘안네 프랑크’ 공연사진. 사진=세실극장, 씨어터오 제공>

◇ 죽음의 공포가 부근에 있는데 특별히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의 막막함과 무기력함

‘안네 프랑크’에서 누군가 넘어졌을 때 안쓰럽게 생각하는 듯 잠깐 멈춰 있다가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모르겠는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현재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것을 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나 지금이나 모두 누군가에게 극도의 아픔과 공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냥 가십거리처럼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극한의 공포가 일상화된 긴장이 움직임으로만 표현되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가 부근에 있는데 특별히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의 막막함과 무기력함이 실감 나게 전달된다.

‘안네 프랑크’ 공연사진. 사진=세실극장, 씨어터오 제공 <‘안네 프랑크’ 공연사진. 사진=세실극장, 씨어터오 제공>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을 겪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안네 프랑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극중에서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는 장면은 날씨가 여러 번 바뀔 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고, 우산을 보호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비로 상징되는 외부로부터 보호가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시간이 계속 교차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안네 프랑크’ 공연사진. 사진=세실극장, 씨어터오 제공 <‘안네 프랑크’ 공연사진. 사진=세실극장, 씨어터오 제공>

◇ 비언어극인 무언극이지만 무음극은 아닌 이야기, 비행기 소리, 대포 소리, 총 소리...

‘안네 프랑크’ 비언어극인 무언극이지만 무음극은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비언어적 소리를 만들기는 하지만 무언극이기 때문에 마임극 같은 요소, 무용 공연 같은 요소가 많이 포함돼 있다.

추상적이나 지나치게 상징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언어의 결핍을 통해 상상력 자극된다는 장점이 있다. 자극적인 상황을 절제해서 볼 수 있고, 언어가 제거됐기 때문에 관객에 따라서 더 몰입해서 느낄 수도 있다. 공연 중에 배우들이 관객석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있는데, 얼굴에 땀이 범벅된 배우들을 보면 대사가 없이 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를 알 수 있다.

죽음의 공간, 죽음의 시간에서의 비행기 소리, 대포 소리, 총 소리는 대사로 인해 해소될 수 있는 긴장을 더욱 배가하는 역할을 하는데, 관객들은 망치질하는 소리가 총소리처럼 들리는 트라우마를 간접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안네 프랑크’ 공연사진. 사진=세실극장, 씨어터오 제공 <‘안네 프랑크’ 공연사진. 사진=세실극장, 씨어터오 제공>

◇ 키티와 안네, 내면의 반영

‘안네의 일기’는 ‘키티’라고 안네가 이름 붙인 노트에 쓴 편지 형식의 기록이다. ‘안네 프랑크’에서는 키티로 상징되는 빨간색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배우가 안네 역의 배우와 거울처럼 서로를 반영하기도 하고, 키티가 안네 뒤에 숨기도 한다.

침묵해야 했던 안네와 그 침묵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키티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말살을 겪고 있는 당시의 내면을 서로 표현해준다고 볼 수 있다. 극을 보면 키티만 안네를 표현해주는 게 아니라 안네 또한 키티를 표현해 내면의 상호작용을 키워간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안네 프랑크’에서 배우들은 절규하는 몸짓으로 울먹이며 마무리한다. 커튼콜의 인사 시간에도 위로, 포용, 안전, 보호라는 단어가 여운처럼 남는다.

‘안네 프랑크’ 공연사진. 사진=세실극장, 씨어터오 제공 <‘안네 프랑크’ 공연사진. 사진=세실극장, 씨어터오 제공>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안네 프랑크’는 세실극장에서의 마지막 공연이 됐다. 42년 역사를 지닌 의미 있는 장소에서 더 이상 연극을 하는 배우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할 말이 정말 많았기에 오히려 말을 아낀 ‘안네 프랑크’처럼 우리나라 연극의 역사를 수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세실극장은 이제 더 이상 연극의 언어를 들을 수 없는 무언극의 장소가 되고, 결국 서서히 잊힐 수 있다. 시간이 정해진 역사의 현장에 방문해 세실극장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함께 하는 관객이 되는 것은 어떨까?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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