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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수면의 과학’(2) 로날드 페어베언의 ‘분열성 양태’로 바라본 남자의 집착

발행일 : 2018-01-02 06:31:41

미셸 공드리 감독의 ‘수면의 과학(La Science des reves, The Science Of Sleep)’에서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는 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의 ‘피터팬 증후군(Peter Pan syndrome, Peter Pan complex)’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 스테판과 스테파니(샤를로뜨 갱스부르 분)의 관계에서의 남자의 집착은 대상관계이론 심리학자 로날드 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의 ‘분열성 양태(split position)’ 모델로 살펴보면 더욱 명확하게 관계성이 드러난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 로날드 페어베언의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적 대상

페어베언 분열성 양태 모델의 핵심은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적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수면의 과학’에서 스테판은 스테파니를 만나고 싶은 완벽한 대상으로 여기면서 의존하게 되는데, 그런 자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관심이 없는 척하면서도 끊임없이 남자의 집착을 보여주는데, 이는 페어베언 모델로 해석이 가능하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분열성 양태 모델에서 완전한 고유의 자아는 본래 고유의 대상인 다른 사람과 완전하고 문제없는 관계를 리비도적 연결로 형성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이런 리비도적 연결이 침해받을 경우, 자아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아와 대상을 각각 견딜 수 있는 부분과 견딜 수 없는 부분으로 나눈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자아는 견딜 수 있는 부분인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로 분리되는데, 이는 각각 대상이 되는 타인의 부분인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적 대상’과 대응돼 연결된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강하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나의 부분인 ‘리비도적 자아’는 나를 애타고 감질나게 만드는 타인의 부분인 ‘흥분시키는 대상’과 연결되며, 그런 의존적인 나에 대한 혐오와 거부는 나의 부분인 ‘반리비도적 자아’가 돼 상대방을 ‘거부적 대상’으로 대하게 된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는 모두 내 안에 있는 나의 일부분이고,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적 대상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사람의 안에 있는 다른 면을 뜻한다. 원래의 자아와 대상이 나눠진 것이기 때문에 같은 결국 같은 사람의 다른 면이라고 볼 수 있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 스테판의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

‘수면의 과학’에서 스테판은 스테파니를 처음에는 완벽한 대상으로 여기다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상상을 하게 된다. 스테파니를 좋아하는 순수한 자기의 모습을 스테파니 또한 좋아한다고 상상하다가도, 스테판은 그렇게 집착하는 자신을 거부해 스테파니를 좋아하지 않거나 관심 없는 듯 행동하기도 한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분열성 양태 모델에서 자아가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로 나뉘는 것은 의식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현재 상황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선택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상대를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적 대상으로 나누는 것 또한 의식하고 하는 것은 아니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일반적으로 이런 분열성 양태는 행동으로 드러나는데, ‘수면의 과학’에서 흥미로운 점은 스테판이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주로 스테판의 상상력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집착과 상상력이 결합해 스테파니를 완벽한 여자로 만들었다가 자기를 좋아하는 면도 있고 자기를 싫어하는 면도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내가 누군가를 극도로 좋아하는데 상대는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경우, 그 사람에게 집착하는 일방적인 나의 마음에 대한 스스로의 반감이 생길 수 있고 그런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볼 경우 상대가 미워질 수가 있는데, 이것이 반리비도적 자아와 거부적 대상의 관계가 된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사랑이냐 집착이냐의 차이는 일방향이나 양방향이냐에 의해 나눠지기도 하지만, 서로 비슷한 방향성에서 강도의 차이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맺을 경우 사랑이 될 수 있지만,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맺지 못하면 집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에서 ‘남자의 집착’에 대해 관객은 성향에 따라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관객은 어떤 장면에서는 스테판이 이해가 가다가도 어떤 장면에서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스테판의 행동과 상상이 쉽게 용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그 자체의 잘잘못을 떠나 스테판을 이해하려고 할 때 분열성 양태 모델을 적용하면 스테판의 변덕이 생존을 위한 내면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관객은 성향에 따라 믿고 인정하기 힘들 수도 있는데, 계속 마음이 바뀌는 스테판은 스스로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살면서 나 또한 양쪽 마음이 순식간에 변하고 다시 변한다는 것을 경험해 본 관객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 일관성 없는 나의 행동과 마음에 또다시 스스로 상처 입을 수도 있지만,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의 영향이라고 너그럽게 자기를 포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수면의 과학’ 스틸사진.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상대방이 예뻤다가 미웠다가를 반복하는 것은 상대가 진짜 계속 변화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의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에 의해 상대의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적 대상을 계속 번갈아가며 끌어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냉정하게 따졌을 때 ‘수면의 과학’에서 스테파니는 별로 변한 적이 없었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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