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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앤ANNE’(2) 앤의 상상력은 생존을 위한 자기상담

발행일 : 2018-01-07 01:14:59

1월 3일부터 2월 4일까지 드림아트센터 2관 더블케이씨어터에서 앙코르 공연 중인 극단걸판의 ‘앤ANNE’에서 앤의 내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독특한 캐릭터로만 보였던 앤으로부터 우리의 한 단면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앤의 마음에 깊숙하게 공감하면 그녀가 가진 슬픔을 더욱 느끼게 될 것이고, 어느새 흐르는 눈물 속에 내 마음의 정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테디셀러가 가진 힘이자, 극단걸판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구현한 힘이다.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 부모님과 빨강색 머리카락 빼고는 모두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앤

‘앤ANNE’에서 앤은 상상력이 무척 뛰어난 아이이다. 부모님과 빨강색 머리카락 빼고는 모두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공연을 보면 앤에게는 크게 두 가지 콤플렉스가 있는데, 여자로 태어난 것과 빨강머리로 태어난 것이다. 상상이 잘 안 되는 항목과 콤플렉스 모두 부모 및 어린 시절과 연결돼 있다.

앤의 상상은 현실에 대한 회피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자기상담을 통한 자기위안이라고 볼 수도 있다. 상담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상상은 자기 내부의 이야기를 스스로 들어주는 자기상담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든 인정받지 못하는 나의 존재 자체가 내 상상력 속에서는 인정받는 것이다.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앤은 쉽게 견디기 힘든 자기의 현실에 직면함과 동시에 거기에 경직돼 동결반응을 보이며 멈춰있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앤의 상상력은 태어난 기질의 발휘일 수도 있고, 생존을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앤ANNE’에서 앤의 상상력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본인의 자식도 앤처럼 상상력이 풍부한 창의적인 아이이면서도 긍정적이길 바랄 수 있다. 이런 시야는 앤의 상상력이 타고난 기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어쩌면 생존을 위해 앤의 상상력은 커졌을 수도 있다.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앤ANNE’에서 앤은 자기가 가끔 다른 사람이라고 상상한다. 상상 속에서 복제품, 아바타, 분신을 만들어 내 자기와 똑같은 행동을 하게 만들고 대화하기도 하고, 자기가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것만 보면 앤은 현재의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자기의 이름이 ‘ANN’이 아니라 ‘ANNE’이라는 것을 항상 확인해주는 것을 보면 자아의 정체성이 강한 것이다. 앤의 상상은 회피가 아닌 직면을 위한 수단의 선택이라고 생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 앤이 만든 또 다른 자아! 자아분열이라기보다는 부분을 자기복제한 것 같은 느낌!

‘앤ANNE’에서 앤은 책장 유리문 안에 자기와 꼭 닮은 여자애가 있다고 말하면서, 비올레타 등의 이름 지어준다. 새로운 이름을 붙이며 의미를 부여하는데, 같은 대상을 마음속에 그대로 계속 데리고 다니지 않고 다른 집에 입양될 때마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다.

그전에 있던 마음속 다른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은 점도 의미 있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입양됐던 집을 떠나면서 그때 가졌던 아픔과 사랑, 아쉬움을 모두 놓고 오겠다는, 자기도 인지하지 못하는 내면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새로운 집에 적응하려면 그전의 모든 관계를 가져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앤은 감각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어린 앤이 이런 성숙된 인간관계를 깨우칠 수밖에 없던 것을 공감하면 관객들은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앤ANNE’에서 앤은 내가 눈물을 흘리자 그 아이도 눈물을 흘리고, 내가 소리 내 울자 그 아이도 소리 내 운다고 표현했다. 나와 똑같은 여자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앤은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소속감, 안전감 결핍은 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현대인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다.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길까? 다 빨강머리 때문이다.”라고 앤은 말한다. 자기를 혼자 있게 만든 생물학적 부모와 그간 자기를 버렸던 입양됐던 집의 예전 부모를 모두 훼손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자기를 훼손하고 싶지도 않았던 앤은 모든 잘못을 빨강머리에게 돌린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훼손했을 때 자기에게 남는 게 없다는 두려움은, 부모가 물려준 일부와 자신의 일부인 빨강머리의 의미와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승화된 것이다. 앤이 정말 잘 버티고 싶어서 내린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은 일반적으로 자아분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앤ANNE’에서 앤은 회피보다는 직면을 선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견디기 힘든 자기의 일부분을 자기복제해 스스로 바라보면서 위로하고 치유한다고 볼 수 있다.

앤은 그냥 막연히 긍정적인 게 아니라 감각적으로 자기의 내면을 바라보고 치유할 수 있는 자기상담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 앤을 사랑으로 포용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스스로 생존의 치유법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내적 아픔을 겪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다.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 다이애나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앤ANNE’에서 앤은 또래의 친구로 만난 다이애나와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쌓인다. 이제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인데 친구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됐을 때의 두려움은, 자기의 모습을 반영해 준 자기대상(self object)을 잃게 되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앤은 그 애의 칭찬을 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에서 다이애나가 앤의 자기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기대상은 자기의 모습을 비춰 확인하게 만드는 대상을 뜻한다. 앤은 스스로 칭찬을 받을 때보다 다이애나의 칭찬을 받을 때 비로소 자기의 가치를 제대로 확인하고 안전감을 얻는 것이다.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앤ANNE’ 콘셉트사진. 사진=MARK923 제공>

앤을 입양한 매슈와 마릴라가 앤을 칭찬하며 사랑하기는 하지만, 앤에게 그것이 결정적인 포인트는 아닌 것이다. 자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자기의 모습은 다이애나를 통해서 확인받는 것이다.

앤의 내면을 바라보면 앤 안에 수많은 우리의 일부가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모를 여의거나 부모에게 버림받아 몸 붙일 곳이 없는 아이가 되는 것은 자기의 선택이 아니다. 어떤 누구도 고아로 자라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앤처럼 긍정적일 수 있을까 나의 내면을 바라보게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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